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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Jul 05. 2020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내가 건네는 안녕

몇 해 전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낮은 목소리로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받고 퇴근 후 급히 집으로 갔다. 아빠는 항암 주사를 맞는 중이어서 가실 수 없었다. 언니는 아이들 때문에 다음날 내려오기로 했다. 대충 짐을 꾸려 한밤중에 엄마와 단둘이 청주로 향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운전을 했고, 엄마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가 흐느꼈다가 안정을 찾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아빠를 잃은 엄마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엄마를 빨리 할아버지 곁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입관을 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가족들과 할아버지가 다니시던 성당의 신자들이 기도를 하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입관실에 뒤엉켰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씩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식어가는 시신 앞에서 모든 가족들이 눈물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엄마는 할아버지의 감은 눈과 평온한 얼굴을 매만졌다. 영원한 작별이었지만 허락된 시간은 짧디 짧았다.



그때는 내게도 아빠와의 이별을 처음으로 생각한 시기였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몸속에 암세포가 생겼다. 아빠의 몸 상태가 한동안 좋지 않은 채로 회복되지 않는 탓에 다음 달 예약된 종합검진에 앞서 가까운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그리고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검사 중인 아빠의 대장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징그러운 무언가가 아빠의 몸속에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십오 분이면 끝날 거라던 검사는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땀이 흥건한 의사가 검사를 마치고 나왔고 나는 아빠가 회복실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의사를 만났다. "암이에요"라고 건조하게 말하는 의사는 너무나 이성적이어서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는 얘기에 아찔해졌다. 회복실에서 나온 아빠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아빠는 수술하면 살 수는 있는 거냐고 담담히 물었다. 아빠를 집에 모시고 오는 길에도, 아빠의 입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무서웠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아빠를 집 앞에 먼저 내려주고 지하주차장에서 나는 곧바로 내리지 못하고 펑펑 울어버렸다. 준비 없이 맞닥뜨린 이 상황에 마음이 속수무책 무너졌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외할아버지의 죽음이 더 슬펐는지 모른다.



외할머니가 먼저 치매를 앓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곁에서 할머니를 보살폈다. 식사를 챙기고, 빨래를 하고, 할머니를 씻기는 것까지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폐가 좋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자 요양보호사를 불러 돌보다가 보호사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할머니 할아버지를 각각 요양원과 병원으로 모셨다. 할머니보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셨고 결국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는 지금도 종종 할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고 했다. 가끔 꿈에도 나오는데 빨리 오라고 하신다고. 원체 잠이 없는 할머니는 점점 더 주무시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고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꾸 꿈에 나오기 때문일까.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는 큰이모가 일하고 계신다. 요즘은 면회를 제한하고 있어 곁에 있는 이모가 자주 사진을 찍어 보낸다. 엄마는 이모가 보내준 할머니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슬픈 얼굴을 짓는다. 엄마의 그 슬픈 눈을 보며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엄마를 바라보는 엄마의 그 얼굴을 조금 더 오래도록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 전엔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엄마가 말했다. 어떤 그리움일까. 이별하는 일. 그리워하는 일. 남편을. 부모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영원한 이별은, 죽음은, 점점 작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만큼 작아져 결국 보이지 않게 되는 거라고. 점이 되어가는 할머니가 조금만 더 천천히 작아졌으면 좋겠다.
 


부모님과 십 분 거리에 살고 있지만 매일같이 전화해 막내딸의 안부를 확인하는 잘 지내, 라는 엄마의 일상적 한마디가 오늘따라 더 따뜻했고 조금은 슬펐다. 어쩐지 우리는 항상 헤어짐을 염두에 두는 것만 같아서. 내가 건네는 안녕은 조금 더 다정함이 묻어나는 인사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퇴근길에 집에 들러 저녁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도, 행복하게 지내라는 엄마의 말에도, 내가 듣기 싫어하는 얼른 결혼이나 하라는 핀잔에도 나는 조금 더 다정한 대답을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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