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빨강 머리 앤도 결국엔 자기 머리 색을 좋아했을까?

: 빨강 머리 토리

by 윌버와 샬롯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오래전 TV 만화 주제가에서마저 앤의 콤플렉스가 여실히 드러난다. 빨강 머리 앤도 본인의 머리 색깔에 불만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대가 그랬던 건지 현재로선 그 모든 것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요소인데 그 시절 앤에게는 감추고 싶은 것이었나 보다. 외모를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과 사랑스러움이라는 매력을 가진 앤인데도 시대가 요구하는 미인상에서는 스스로가 결격임을 자인했으니, 여기 그림책 주인공 토리는 오죽했을까.


안녕? 나는 토리야. 친구들은 나를 빨강 머리라고 놀려. 게다가 어젯밤에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 글쎄, 머리카락이 마구마구 자라는 거야.


이제는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왔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먼 얘기인가 보다. 아이가 보는 여러 그림책에서는 여전히 다름으로 소외되고 고민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림책 결론은 물론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단지 그 행복한 결말로 가기 위한 과정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 주목하고 싶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극복이냐, 타인으로 인한 깨달음이냐,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귀결된다.



날카로운 가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멋진 모습으로 거듭나는 「고슴도치 엑스」가 그 전자가 되고, 친구로 인해 자신의 장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는 후자가 된다. 어떤 방식이 더 좋고 그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깨달음과 극복의 순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빨강 머리 토리」를 보고 나서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 존재 가치는 남이 알아줘야 비로소 그 이유가 되는 걸까?


남들과 다른 빨강 머리로 놀림을 받던 토리는 의기소침해 있다. 어느 날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머리 모양이 시시각각 변하는 날벼락을 맞게 된다. 그래도 토리는 용감한 아이 같다. 그런 와중에도 학교를 가니까. 비록 얼굴은 일그러지고 고개는 땅으로 꺼져 있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폭풍을 회피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괴롭지만 뚜벅뚜벅 토리는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 묵묵함이 토리에게 광명의 날을 맞이하게 한 걸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함의 승리일까.


주변인은 이제 토리의 별다름을 핫한 트렌드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루 동안 토리의 부재는 토리로 인해 다채로왔던 일상을 다시 단조로운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타인은 그때서야 깨달았나 보다. 안 보이고 나서야 그제야 보이는 토리만의 특별함을 말이다.


그런데 아침에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어. 엄마야! 맙소사! 꿈이 아니었던 거야.


선생님도 친구들도 토리처럼 머리 모양을 신기하게 변신해 학교에 온 것을 보고 토리는 데굴데굴 깔깔 웃는다. 더 이상 이상한 것이 아닌 존재가 되어 토리는 안도한 것일까. 난 좀 아쉬웠다. 남들이 알아주기 이전에 좀 더 일찍 토리가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러나 토리는 아이일 뿐이다. 아니, 아이가 아니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이상일 뿐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보는 흔해 빠진 여러 히어로도 처음부터 자기를 자랑스러워했던 건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갈등하며 온갖 수모를 겪고 나서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지 않던가.


그래도 난 소망한다. 머리카락이 빨갛든, 주근깨가 많든, 통통하든, 자기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 누가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 한 번뿐인 삶이지 않은가. 내가 어떻든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스스로를 사랑했으면 한다. 누구의 인정으로 인해 자기 가치가 올라갔다 생각한다면 그 가치의 유효기간은 잠깐이지 않을까. 타인의 인정은 오래가지 않는 한낱 모래성일 뿐이니까. 내가 나를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진짜다. 나 스스로를 사랑해 주는 것, 그것이 먼저이며 기본이다. 그 후 타인의 인정까지 더해진다면 어찌 더욱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빨강 머리 앤도 결국 자기 머리 색을 좋아하게 되었으리라. 어린 앤은 고아라는 결핍으로 주근깨도 빨강 머리도 부끄러워하고 흑발의 친구 다이애나를 동경했다. 그러나 아저씨 아주머니와 이룬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게 된 앤은 마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니 머리 색깔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주근깨와 빨강 머리는 앤으로 인해 그 당시 인싸 아이템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림책 「빨강이 어때서」는 같은 빨강을 지녔지만 토리와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을 전면으로 내세운 그림책 표지에서부터 둘의 표정은 다르다. 처음부터 자기를 잃지 않고 사랑하며 지켜내는 빨강이가 오늘 다시 생각났다.


비록 빨강이처럼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토리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칭찬하고 싶다. 힘든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토리는 대단하니까. 그랬기에 좋은 날도 맞이할 수 있었다. 변덕스러운 타인이 토리를 다시 이상한 눈으로 보게 되더라도 예전 그 용기를 혹은 빨강이를 토리가 다시 떠올렸으면 좋겠다.


"나는 나라서 아름다운 거야. 괜찮아. 모두 다 괜찮아."


keyword
이전 06화놀라운 사춘기 소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