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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존재 이유를 찾는 그대에게

: 작은 배추

by 윌버와 샬롯

언제쯤이면 난 나를 알 수 있게 될까. 책을 읽는 것도, 어줍지 않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결국은 나를 좀 더 알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 그것들로 위로도, 가끔은 삶의 달음을 얻기도 했다.


읽고 있는 책은 수두룩 쌓이고, 끄적인 글도 웬만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나를 모르겠다. 이 세상에 어떤 소명을 위해 태어났는지, 언제쯤이면 어떤 벽에도 하지 않는 마음의 평화가 오는 건지 내겐 여전히 물음표다. 없이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죽을 때까지 평생 감내해야만 할 간이 짊어진 운명인 까.



마음 틈틈이 요동치는 내게도 이 그림책에 있는 감나무가 한 그루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고, 앞으로 닥칠 불투명한 미래를 훤히 꿰고 있는 감나무. 그로 인해 미지의 세계를 조금은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는 여기 작은 배추가 자못 부럽기도 다.


언덕 위에 오도카니 선 감나무가 옆에 있는 밭을 보고 말했습니다. "흠, 올해는 배추를 심었구나." 어느 날, 감나무 밑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저만큼 떨어지게 된 떡잎 하나. 다행스럽게도 떡잎 하나는 감나무 밑에 자리 잡게 된다. 그것도 세상 이치를 훤히 알고 있는 감나무. 나무는 아무것도 모르는 떡잎에게 궁금해하는하나하나씩을 인자하게 알려준다.


자신이 누구인지차도 모르는 떡잎에게 너는 배추임을, 다 자라 또 어디로 가는지도 말해준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누군가가 명쾌하게 답을 준다는 것은 참 마음을 안도하게 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때론 무척 필요하다. 인생에서 멘토 같은 존재가 한 사람 정도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배추란다. 꼬마 배추." 감나무가 말했습니다. "아, 안녕! 그런데 넌 누구야?" "나는 감나무야."


오도카니 떨어져 자란 떡잎 하나는 다른 배추보다 작게 자란다. 그래서 다른 배추가 가는 일상적 행보를 따르지 못한다. 튼실히 자란 배추들은 트럭에 실려 채소 가게로 가게 되지만 작은 배추는 그렇지 못했다. 여느 배추처럼 지푸라기 머리띠를 메고 응차 응차 열심히 크기를 바랐지만 결국 따라가지 못한다. 른 배추와 같이 트럭에 실려가길 기대했던 작은 배추는 그렇지 못한 실에 실망하 않았을까.


"다들 어디 가는 거야?" 작은 배추가 몸을 쭉 뻗어 트럭을 건너보았습니다. "채소 가게로 가지."


좀 작은가? 그래, 넌 여기서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워 나비랑 놀려무나.


상품 가치가 없는 작은 배추. 채소 가게로 데려다 줄 트럭 아저씨는 다른 큰 배추는 모두 싣고 작은 배추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난다. 데려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저씨는 작은 배추에게 봄을 기다려보라고 다독인다.


봄을 기다리라는 . 말이 쉽지, 그 후에 작은 배추가 맞이할 나날은 너무나 애처롭다. 텅 비어있는 넓은 밭 혼자 있게 된 작은 배추는 도무지 봄이며 꽃이며 나비가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 본 적도 없고 뭔지도 모르는 것을 작정 기다리라니,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은 배추가 눈물이 난 건 당연하다.


느긋하게 한숨 자. 봄이 오면 깨워 줄게.


혼자 남겨졌지만 감나무가 있기에 혼자가 아닌 작은 배추. 감나무에게 작은 배추는 봄이 뭔지, 꽃이 뭔지, 나비는 무엇인지 듣게 된다. 작은 배추는 다시 안심하게 되고 힘을 내본다. 모두가 가지 않는 길이었지만 단단한 감나무가 옆에 있어 작은 배추는 그 길고 긴 차가운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봄이 온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감내한 작은 배추는 이제 더 이상 작은 배추가 아니다. 꽃이 왕관처럼 피어난다. 나비가 날아와서 인사도 해주니 혼자도 아니다. 여전히 감나무는 꽃을 피운 배추 옆에서 흐뭇하게 함께 고 있다.



그건 작은 배추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던 걸까. 작은 배추는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평범치 않은 다른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작은 배추가 만약 채소 가게로 갈지 말지를 타자에서가 아닌 자의로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떤 삶이 그에게 더 의미 있고 행복한 걸까.


한번 상상해 본다.


세상 구경하며 부릉부릉 트럭을 타고 도시에 있는 채소 가게로 가게 된 작은 배추. 어쩌면 신명 나는 가게 주인을 만날지도 모른다. 작은 배추는 신선하고 정갈하게 진열이 되어 알뜰하고 솜씨 좋은 누군가에게 팔려간다. 감칠맛 나는 김장김치가 되거나 맛깔나게 무쳐진 겉절이가 되어 맛있게 먹어주는 어느 한 사람의 몸을 튼튼하게 해 줄 수도 있다.


아니면 여기 작은 배추처럼 넓은 밭을 지키며 자연과 오래도록 벗이 된다. 차가운 바람과 눈서리도 맞게 되지만 끝끝내 봄을 맞이해 유채꽃 마냥 노랗고 예쁜 꽃을 피울 것이다. 나비도, 감나무도, 산책하는 어느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작은 배추는 마음까지 환하게 비추며 그들을 기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갖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주어진 삶과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면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그 기준의 판단은 덧없다. 나름의 행복과 기쁨이 어느 방향에서나 존재함을 난 믿는다.


혹여 선택의 갈림길이나 어떤 시작에 앞서 망설이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감나무 하나쯤은 분명 있을 것이다. 용기를 주고 지켜주는 어떤 그 무엇. 결국 어떤 길이든 무엇으로든 우리도 작은 배추처럼 꽃을 피울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운을 내고 기다려보. 봄은 기어이 올 거니까.


실제 배추꽃 모습이 어떤지 궁금했다. 정말 유채꽃과 비슷하다. 나물처럼 데쳐서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다솜농원 블로그)


이미 커버린 내게도 감나무가 필요하듯 우리 아이에게 감나무 같은 마가 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언제나 꿋꿋이 작은 배추 위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감나무가 유난히 내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아직 내 아이에게 그런 존재로는 한없이 부족함을 스스로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내게도 감나무가 필요하다며 어린애 마냥 떼 부리며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읽고 쓰고 슬퍼하고 고뇌하고 다시 좌절하는 날도 많겠지만, 그러다가 언젠가는 나도 너른 들판에서 예쁜 꽃을 피울 하나의 떡잎을 포근히 감싸줄 저 감나무 같은 사람이 조금은 되어 있지 않을 소망해 본다.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며 그렇게 한 그루 감나무에게로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더 다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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