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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너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어

: 이보다 멋진 선물은 없어

by 윌버와 샬롯

대형 마트에 갔다가 추석 선물 세트 코너에서 멈춰 섰다. 아, 또 때가 왔구나. 빈 손으로 나서기엔 두 손이 난처한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품목마다 진열대가 즐비하다. 한 바퀴 돌아보고선 예정에 없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눈에 띈 김에 그중 적당한 것을 골라 구매했다. 적당하다는 것의 기준은 지불할 예산 한도와 선물 받을 사람과의 친분 정도를 고려한다. 친절하게도 바로 택배로 보내준다고까지 하니 당장 무겁게 가져가지 않아도 되어 구매 결정이 더욱 빠를 수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선물은 어렵다.


연초부터 여러 종류의 축하 선물을 준비했었다. 양가에 각각 백일, 입학, 졸업과 같은 생애 특별한 전환기 이벤트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친척마다 일일이 생일은 못 챙기더라도 누군가의 고모이기도, 이모이기도, 큰엄마이기도 한 나로선 최소한 그런 날은 지나칠 수 없다.


하루 반나절은 꼬박 가성비와 더불어 가심비까지 좋을 쇼핑을 위해 다리가 좀 아플 정도로 돌아다녔다. 선물을 받을 당사자가 만족할는지는 모르겠다. 쇼핑의 효과는 공 들인 시간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 직감으로 다가오는 그것이 정답일 텐데 언제나 그게 쉽지가 않다. 축하의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솔직히 의무감이 더해진 도리를 한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기도 하니까.


무치는 얼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어. 얼은 무치의 가장 친한 친구야


여기 무치도 선물 때문에 고민이 많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친구 얼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뭐가 필요하고 없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참 고르기가 편할 텐데 말이다. 취향의 문제이지 당최 요즘 시대에 물질의 절대 빈곤이 예전 같지는 않지 않은가. 그러니 비위에 딱 맞게 선물을 준비하기는 너무 힘든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터는 어린아이를 제하고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현금이 가장 편하고 확실한 선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기도 하지만 돈봉투를 건네는 손이 가끔은 너무 편하고 뻔함에 안절부절못할 때도 있다. "뭘 이런 걸 다 주고 그래." 서로 빈말인 줄 알면서 받는 사람도 아닌 척하는 어색한 말과 손사래를 우리는 너무나 흔하게 겪는다.


무슨 선물이 좋을까?


선물을 주고 즉각적으로 뿌듯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이가 좀 더 어렸을 때, 그러니까 산타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무렵, 성탄 아침에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선물을 찾아 뜯어보며 환호성을 쳤다.


우아!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이걸 갖고 싶어 한 걸 어떻게 알았지?


'응. 네가 노래 부르는 걸 엄마가 들었기 때문이야'라고 속으로 말하지만 엄마도 참 기쁜 순간이긴 했다. 아이가 원하는 걸 제대로 찾아 준비했다는 것, 그리고 당사자가 참 좋아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여지없이 확인할 수 있었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이해관계가 하나 없는 주고받는 순수한 마음, 단지 그 마음만으로 말이다.


이 그림책은 거대하게 보자면 무소유에 관해 말하고 있다. 모자랄 것 없는 풍족한 시절이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요즘 사람을 꼬집고 있기도 하다.


무치와 얼처럼 좋아하는 이와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축복임은 당연하다. 서로 사랑하고 생각해주는 그 마음이 기본임은 물론이다.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는 친구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찾아주려 애쓰는 무치가 사랑스럽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무치처럼 "내가 선물이야"하며 내게 큰 빈 상자를 선물해준다면 난 참 머쓱할 것 같다. 아주 가끔은 작은 거라도 나를 위해 고심하여 고른 선물을 받고 싶긴 하다. 결코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내게 쓸모가 있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나를 생각하며 골랐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잠시라도 시간을 내줬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느 정도의 결핍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풍족하게 뭘 사주며 키우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아이가 크게 필요한 것이 별로 없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아이가 크니 아이 스스로 원하는 것도 많아지고 부모 된 입장으로 해주고 싶은 것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이것도 사주고 싶고, 저걸 시키면 아이 성장에 너무 좋을 것 같은데." 부모라면 항상 고민하는 이런 푸념에 지인은 대꾸한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해줄 게 한도 끝도 없어." 결국 언제나 우리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가난한 부부가 머리카락과 시계를 팔아 서로 선물을 준비한다는 오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 떠오른다. 그들만큼 서로에게 안타까운 선물을 한 이가 또 있을까. 그런 엇갈림만 없다면 거기에 피 땀 눈물까지 가미된 선물은 정말 금상첨화가 아닐까.


아무리 요즘 트렌드가 미니멀리즘이라지만 그래도 가끔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주기도 받기도 해 보며 살아보자. 그래야 조금은 무료한 이 일상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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