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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인간관계에 대해서

: 네가 있어 난 행복해!

by 윌버와 샬롯

장을 볼 때 스마트폰 계산기를 종종 이용한다. 여러 상품 중에 비슷한 품질이라면 어떤 것이 더 저렴한지 꼼꼼히 따져 본다. 계산기에 보이는 숫자는 선택의 고민을 조금 수월하게 한다. 더불어 오늘도 손해 없는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며 부하기까지 한다.


작은 물건 하나를 구입할 때도 하나하나 재는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사람일까. 소비할 때와 같이 합리적인 인간관계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처럼 어떤 것도 손해보지 않는 그런 관계가 과연 합리적인 걸까.


여기, 곰과 산쥐의 하루 일상을 한 번 들여다보자. 어쩌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쥐야, 나도 불어 보고 싶어. 우리, 바꿀래? 네 피리랑 내 방석이랑 바꾸자!


따뜻한 방석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곰은 산쥐가 부는 피리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다. 산쥐처럼 불어보고 싶은 마음에 곰은 자기 방석과 피리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맞교환은 성사된다. 교환으로 산쥐는 따뜻한 방석에서 쉴 수 있었고, 곰은 피리를 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곰은 생각처럼 피리를 잘 불지 못한다. 리가 몸과 맞지 않아 산쥐처럼 멋들어진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곰이 부는 시끄러운 피리 소리에 산쥐는 다른 제안을 한다. 피리를 자기한테 주면 대신 자기가 멋진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우리, 이렇게 하자. 나는 피리를 잘 부니까 네 피리를 주면 내가 멋진 노래를 들려줄게.


산쥐는 그 뒤로도 곰에게 여러 제안을 한다. 그러나 첫 번째 맞교환과는 전혀 다른, 어찌 보면 곰에게는 하나도 얻을 게 없어 보이는 그런 제안들 말이다. 곰은 뭔가 미심쩍으면서도 산쥐의 말을 모두 받아들인다.


피리와 방석을 바꾸자는 곰의 처음 제안 빼고 그 뒤로 산쥐의 수 연발이다. 곰에게 준 피리마저도 결국 자기 것이 되는 등 어느 하나 손해보지 않는 산쥐가 얄밉게 느껴졌다.


사람 사이에서도 꼭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누군가가 똑 떠오르는 그럼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나마저도 피할 수 없는, 어느 하나 절대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렇다면 유형의 무언가를 계속 서로에게 주고받아야만 관계라는 것은 유지되는 걸까. 곰과 산쥐의 관계도 처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곰아, 우리 같이 세상 구경을 해 볼래? 어디로 가면 좋을지 내가 길을 가르쳐 줄게.


뭔가 고 있는 느낌은 계속 들었지만 그렇다 해서 곰이 이후에 불행해진 것은 아니다. 산쥐가 들려주는 피리 소리가 좋았고, 그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도 추게 된다. 춤을 못 춘다는 산쥐를 데리고서(그마저도 실은 산쥐의 요청이었지만) 곰은 더욱 신나게 춤을 춘다. 곰 머리 위에 앉아 세상 구경을 가보자는 산쥐의 제안도 곰은 순순히 함께 해준다. 자발적인 행동은 비록 아니었지만 그래도 곰은 산쥐와 함께 한 순간이 즐거웠다.


그러다 곰은 깨닫는다.


나는 방석이 있었어. 하지만 방석이 왜 필요하지?
나는 두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죽이 있잖아. 그리고 피리는 왜 갖고 싶어 했지?
나는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잖아. 또 행운의 조약돌이 왜 필요해?
나는 이미 늘 행복한데.

친구야, 받아. 선물이야. 내 행운의 조약돌을 줄게. 나는 선물하면 기분이 좋거든. 그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는 곰. 곰은 순수하게 친구를 기쁘게 해주는 그 자체의 기쁨을 알게 됐다.


곰의 깨달음은 산쥐에게 마저 전염된다. 여태 자기가 했던 약삭빠른 행동에 머쓱해진 걸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곰이 준 순수한 선물에 당황한 걸까. 당장 줄 게 없었던 산쥐는 에게 걸맞은 선물을 그제야 주게 된다. 뻔한 속임수에도 미워할 수 없는 산쥐의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된다. 산쥐와 곰이 나눈 진심 어린 대화는 이 그림책의 백미다.


그래, 선물하면 기분이 좋지.
자, 받아. 나는 냇물에 비친 달빛을 선물할게.

그럼 나는 향긋한 꽃향기를 선물할게.

그럼 나는 '쏴아아' 시원한 바람 소리를 선물할게.

내일 아침에 해가 뜨고 온 세상이 빛나기 시작하면
우리, 서로에게 빨간색을 선물하자! 초록색도!
또 노란색이랑 하늘색도!

그런데 만약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그럼 다른 선물이 생각날 거야.


캬아, 마치 이건 연인들끼리나 말할 수 있는 달콤한 연서 같다. '그럼 다른 선물이 생각날 거야'라는 곰의 마지막 대사에서 감동이 몰려왔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분명 길은 있을 거라는 곰의 푸근한 말 한마디가 이 책의 마무리를 참 따스하게 했다.


강가에서 달빛을 바라보며 나란히 기대어 앉아 있는 산쥐와 곰의 뒷모습이 참 정겹게 보인다. 이제 둘은 진짜 친구가 된 것이다.


나는 갑자기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다시 써봤다. 내가 만든 숨어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원래는 산쥐가 곰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구실이 없으니 피리를 만들기 시작했죠. 딱따구리 도움까지 받아가며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분명 그래 보여요. 그러고 나서 쿨쿨 잠자고 있던 곰 옆에서 굳이 연주를 하지요. 이미 산쥐는 곰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더랬죠. 역시나 예상대로 곰은 벌떡 일어나요. 산쥐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죠.


이 이야기는 아마도 곰과 구가 되고 싶었던 산쥐의 큰 그림이 아니었까. 어쩌면 산쥐는 처음부터 곰의 따뜻한 심성을 알고 있었을 것 같다. 물건으로 인해 인연은 시작지만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


산쥐가 곰의 진심을 깨달아 다행이다. 그래서 옆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계속 필요에 의한 관계였다면 둘은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것을 진심으로 선물해주는 서로를 알아보았기에 그 둘은 한 차원 높은 우정이라는 이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림책 말미에 그림으로만 보여주는 이후의 곰과 산쥐가 함께하는 소소하지만 정겨운 일상이 흐뭇하게 한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따스하고 넉넉한 그들의 관계가 부럽기까지 하다.


합리적인 인간관계란 무엇일까. 인간관계에 있어 '합리'라는 말 자체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어느 것도 바라지 않지만 어느 순간 많은 것을 서로 주고 있는 관계.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리는 그런 사이를 진정 원지 않는가.


나도 기 곰처럼 푸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래서 곰이 산쥐에게 한 것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곰과 같은 친구가 한 명 정도 꼭 내게 그리고 꼭 우리 아이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들었다.


참, 이 책에 등장하는 카메오 딱따구리도 결코 지나치지 말기 바란다. 끝에 킥킥 웃음 짓게 하는 작은 장면이 하나 있으니 꼭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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