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어디에서 이 시를 처음 봤는지는 기억하진 못한다. 근데도 그때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한 첫느낌은 잊을 수 없다. 시인은 단순하고 짧은 시어 몇 개로 이 세상을, 이 우주를 모두 표현해냈다.
이 그림책은 이 시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시와 그림책의 만남, 이 조합은 과연 어떤 단상으로 내게 다가올까.
그림책 표지에는 널따란 그늘을 마련해주는 대추나무 아래에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누렇게 익은 논 앞에 앉아 있다. 아이가 메고 있는 학교 가방을 보니 이 시대의 시간은 아마도 20년도 더 훨씬 이전으로 보인다. 아이가 하교하는 길에 논에서 일하던 아빠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두런두런 얘기하는 듯한 둘의 뒷모습이 참 따스하다.
대추나무가 분명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엄마 아빠 남매로 이루어진 여기 한 가족의 일상에 눈을 못 떼겠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금도 이런 집이 있을까 하는, 아마도 난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하는 이른바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었던 것처럼 대추 한 알을 이루기 위해 모진 시간을 보내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 옆에서 농부 아버지가 네 계절 동안 구슬땀을 흘리는 장면 또한 볼 수 있다.
이 가족의 터전은 논이다. 그리고 그들을 품어주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항상 묵묵히 그 자리에 서있다.
앗, 자세히 보니 이 가족에게는 식구가 더 있었다. 하양이 까망이 강아지 두 마리가 있다. 또한 이 가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신스틸러가 있는데, 바로 자전거. 자가용보다 이 곳에서는 아빠 허리를 꼭 붙잡고 타야 하는 자전거가 더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봄이다. 꽃을 쫓는 벌만큼이나 농사짓는 아빠가 더욱 바빠지는 계절이다. 저 멀리서 아빠는 논을 일구고 있고, 엄마와 딸은 아마도 봄나물을 뜯나 보다. 개구쟁이 아들은 강아지와 공을 차며 놀고 있다. 펼쳐진 그림 프레임에 가족은 모두 함께 존재한다.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대추나무를 기둥으로 가족은 참으로 끈끈해 보인다.
모내기철이다. 아빠가 이앙기로 모를 심으면 엄마는 빈 곳을 찾아 허리 굽혀 모를 메꾼다. 아이들의 학교는 얼마나 멀리 있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오래 걸어온 것일까? 그래도 같이 만나 함께 올 수 있는 형제가 있으니 참 다행이다. 강아지들은 또 이들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껏해야 한나절 정도의 이별, 그럼에도 서로는 만남이라는 기쁨으로 마냥 행복해 보인다. 강아지들도 아이들처럼 까르르 웃으며 달리는 듯하다.
"아빠, 새참 드세요." 논에서 피를 뽑고 있던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만 저기서 자기가 지켜야 할 세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엄마의 오늘 새참은 무엇일까? 아빠의 고단함을 잠시 잊히게 할 시원한 막걸리라도 들어 있을까? 가족은 대추나무 아래에 도란도란 앉을 것이고, 아이들은 방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댈 것만 같다.
노동의 신성함. 가끔 농번기 철이 오면 밭에서 작은 일손이나마 보태기는 하지만 그것을 혹시나 매일 하라고 하면 난 버티지 못할 거 같다. 항상 하는 일이니 당신은 괜찮다며 연신 말씀하시는 시부모님들의 노고가 이 그림책에서도 톡톡히 녹아 있다. 그 진한 땀방울로 우리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
아빠는 천둥 번개도 마다치 않는다. 이불속으로 잠을 청했지만 심상치 않은 빗줄기 소리에 부랴부랴 빗속을 헤치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으리라. 벼가 쓰러지면 세워야 하고, 물이 차면 빼내야 하는 것이 농부의 일이다. 씨를 뿌렸다 해서 그냥 열매가 맺어지는 건 아니다.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결국 하늘은 눈부신 햇살을 다시 뿌려준다.
혼자서 벼가 익지는 않는다. 대추도 당연히 혼자서 둥글어지지 않았다. 까맣게 흙물이 든 아빠 손, 그 손에 들려있는 빨간 대추 한 알이 그래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 땡볕, 초승달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우주 같은 대추가 어찌 하찮게 보이겠는가.
겨울이 왔다. 눈이 내린다. 아이들은 신이 나 달음박질하고, 엄마는 감기 들라 아이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려 한다. 아빠 자전거 뒤에는 큼직한 짐이 실려 있다. 무엇을 팔러 나가는 걸까? 아니면 맛있는 것을 사 오는 길일까?
논은 하얗게 눈으로 이불을 덮었고, 대추나무도 찬란했던 시절을 보내고 앙상하지만 기운찬 줄기만 남아 있다. 그 위로 소복이 하얀 옷을 입었다. 기나긴 노동을 마친 쉼이라는 모두의 모습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은 다시 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으며, 이유 없는 현상도 없다. 자연은 때때로 가혹하여 인간을 무력하게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연으로 인해 다시 힘을 얻기도 한다.
스스로를 작다 하찮다 생각하지 말자. 여전히 그렇게 생각된다면 아직 당신은 태풍도 천둥도 벼락도 맞는 중인가 보다. 그러니 조금은 더 버텨보자. 탱탱하고 달큼하게 익은 대추 한 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