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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Apr 19. 2020

두 달만에 만보를 걷다

: 하루 한 컷 만보 클럽, 푸른수목원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커튼을 젖혀요. 그리고 반투명 베란다 미닫이 문을 엽니다. 그러면 짜잔. 창 밖으로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나무들이 저를 반깁니다.


그래요. 오늘은 완벽한 날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지만 차지 않았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습니다. 공기 질까지 좋음 상태였으니까요.


오늘, 가까운 수목원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가을 다녀오고 거의 6개월 만의 방문입니다. 집과 가까운 곳임에도 공개적으로 어디를 다녀왔다 말하는 게 아직은 조심스럽니다. 사회적 거리를 어쩐지 소홀히 한건 아닌지 솔직히 살짝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오늘 날씨는 외면할 수 없었어요. 이 따스한 공기를 좀 맞보고 싶었거든요.


처음에 가려던 다른 가까운 수목원은 여전히 휴장인 상태였습니다. 또 다른 곳을 혹시나 하고 문의해보니 방문이 가능하다해서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기 전에 다녀오고 싶었거든요.



오늘은 하늘을 자꾸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자꾸 사진으로 남기도 싶었고요. 사막을 헤매다 만난 오아시스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이 포근한 봄을 맞봤습니다. 창문을 살짝 열고 수목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마저 행복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코스모스 한창이었는데 오늘은 수선화가 만발입니다. 튤립 철이 이미 지난 건지 안보이더라고요.



수선화가 요즘 대세 꽃인가 봅니다. 마치 색종이로 접은 꽃처럼 너무 선명하고 완벽했어요.


마침 저녁 뉴스에서는 신안군에서 수선화 축제가 취소됐다는 소식 들어요. 아쉽게나마 온라인으로 대신 꽃을 감상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화면 보이는 수선화 가득한 너른 들판이 장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역 주민들이 많이 애쓰셨을 텐데 화면으로밖에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더라고요.


신안만큼의 넓은 수선화 밭을 오늘 수목원에서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 제 눈으로 본 것이 더 예뻤던 건 어쩔 수 없네요. 은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거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봐줘야 더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요즘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좀체 밖을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가끔 생기면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며 걸었습니다. 온 김에 조금이라걷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예전처럼 만보를 채우기에는 항상 역부족이었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던 날.


한적한 길만 따라 수목원을 걸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날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순간. 앞으로는 이과 같은 날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흠칫 놀랐습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됨이 마음 아픕니다.



수목원을 걷고, 이름 모를 꽃을 보고, 그것을 탐미하는 벌을 보고, 하늘을 또다시 올려보고, 맨 얼굴에 햇살을 맞고, 머리칼을 날리게 하는 바람을 눈감고 느낍니다.


문방구에서 아이의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노트를 사고, 늦은 오후임에도 약국에서 여유롭게 마스크를 구매합니다.


이렇게 두 달만에 만보를 걸어봤습니다. 발바닥이 좀 욱신거렸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걷는다는 건 이렇게 항상 옳은데, 소소한 이 외출마저도 자꾸 누군가에게는 미안해지네요. 언제쯤이면 이런 죄책감 없이 움직일 수 있 될까요.


어서 모두, 함께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고대합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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