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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버와 샬롯 Apr 26. 2021

너도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야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말. 적재적소에 촌철살인 같은 말을 진중하게 던지는 것.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실상은 순발력이 한참 부족한 나는 언제나  템포가 늦다. 억울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말의 힘이 발휘되어야 하는데도 황망하게만 있다가 순간을 놓친다. '그때 이 말을 했었어하는데...'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할 수도 있을 송곳 같은 말이 뒤늦게 입 속에서 종일 맴돌기만  날이 수두룩하다.


돌이켜 보면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서 남는 아쉬움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남는 잔상이 더 나를 오래도록 괴롭게 했던 것 같다. 말을 잘해서 기분이 좋았던 적보다 말을 많이 해서 후회했던 적이 더 많았던 것처럼. 마저 내뱉지 못한 성난 말은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가 정화되어 감정이 희석되지만 입술에서 공기 중으로 이미 날아가버린 말은 나든 남이든 누군가에게는 가슴 깊이 박혀 상흔이 되어 있기도 다.


코르넬리아 토프의 <침묵이라는 무기>에서는 말과 침묵의 비율을 1:3이면 적당하다고 조언한다.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에서는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용쓰기보다 묵언수행하는 엄마로 살고자 했다. 말의 최소화 전략'이라는 나름의 육아 비법을 전한다. 은유 작가처럼 나도 아이에게 침묵이 최선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줍지 않은 조언이나 충고 결국에는 상처 주는 폭언으로, 대화는 전쟁으로 끝나지 않던가. 말,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 명품이 되는 씨간장처럼 저절로 숙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불혹이 훨씬 넘은 내게는 여전히 조심하고 애써서 해야 하는 숙제다.


아침마다 나를 둘러싸는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어요.


말을 쉽게 해서 탈이었지, '말하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주변의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 섬세한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림책으로 오늘 배운다.


말을 더듬는 아이가 아침을 맞이한다. 아이는 자기를 둘러싼 소리를 온몸으로 마주하지만 말을 할 수는 없다. 창밖을 보며 주변의 낱말을 되새기는 아이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세상에 말은 참 많은데 아이는 웅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학교에서는 발표도 힘들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남들과 다른 것은 어디에서도 눈에 띄기 마련이니 학교 가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달의 드-는 마법처럼 내 입술을 지워 버려요.


그렇다면 우리 집 아이도 학교 가는 마음이 여기 아이처럼 그렇게 불편했을까?


네가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해.


 아이도 어릴 때부터 집 이외의 장소에서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공공장소에서 아이 의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없어 주변 사람이 되물어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학교 상담에서는 말을 잘 안 하는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라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상담가기 싫어졌다. 변화 계기를 아이에게 마련해주길 학교에 기대도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방관자들의 비슷한 소리를 계속 듣기에도 지쳐만 갔다.


부산하게 떠들지 않아도 좋다. 그저 해야만 하는 자리에서는 분명하게 자기표현을 해주기를 바랐다.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아이가 난 너무 답답했다. 아니 아까웠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많은 긍정적인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숨기만 했으니. 구를 자연스럽게 사귀기도 힘들었고 학교에서 자잘한 손해를 감수하는 아이가 안타까웠다. 나아질까 싶어 아이는 원하지 않는 스피치 수업에 억지로 보내기도 했었다.


"언니, ㅇㅇ가 그래도 친구들이랑 얘기도 하고 같이 다닌다고 우리 애들이 그러더라고요."


같은 학년 엄마가 정작 나는 알지 못하는 우리 아이의 학교 모습을 전해준다. 능동적이지 않은 아이가 혼자 외롭게 학교를 다니지나 않을까 새 학년을 맞을 때마다 노심초사다. 그러니 아이 옆에 누군가 있다는 말은 내겐 더할 나위 없는 기쁜 소식이다. 내 전전긍긍 이제야 아이는 응답한 걸까.


아니다. 내 조바심은 아이를 더 불안하게 했을 뿐 쓸데없다. 나아질 거라 머리기다린다 했지만 '네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부정하며 가슴에는 항상 천둥이 치고 있었. 아이에 대한 내 믿음은 그렇게 얄팍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천천히 자라고 있었거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갔어요.


그림책 속 아이의 아빠는 상처 받은 아이에게 다짜고짜 묻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을 뿐이다. 조용한 강가로 데려가 바위와 물벌레들을 함께 살펴본다. 물끄러미 강을 보며 눈물짓는 아이에게 어깨를 감싸며 아빠는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강물은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치지만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흐른다. 아빠가 말해주는 자기에 대해 아이는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남과는 다른 자기를 인정하고 좀 더 담담히 세상의 단어들과 마주할 힘이 아이에게 생겼다. 그렇다 해서 아이에게 세상이 더 쉬워졌을까. 아니, 앞으로도 아이는 힘든 순간순간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자전적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풀어낸 작가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라는 자기인지와 존중으로 빛나는 성장을 보여준다.


아빠는 말했어요. 내가 강물처럼 말한다고.


반짝이는 강에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나 눈부시다. 당당한 강물처럼 아이도 꼿꼿하게 서 있다. 아이는 마치 몰리 뱅의 그림책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에서 화를 삭이기 위해 숲 속으로 달려가는 소피처럼 보였다. 소피는 너도밤나무 위로 올라가 들바람을 느끼고 일렁이는 결을 바라봤다. 나약한 인간에게 고요와 포효가 공존하는 자연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존재인가. 그러기에 자연은 언제나 옳다.


기다린다면서도 왜 안되느냐 다그치기만 했지 '너도 강물처럼 말한단다'라는 그림책 속 아빠처럼 귀중한 말을 난 아이에게 해주지 못했다. 그런 말주변이 내게도 언젠가 생기게나 될까? 화사한 벚꽃이나 진분홍으로 만개한 철쭉을 보면 아이에게 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비록 아이에게 깨달음을 주는 멋진 말 해줄 수 없지만 적어도 자연으로는 이끌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제는 내 맘처럼 아이가 따라주지 않는 시기다. 울고 싶을 때는 소피처럼 한바탕 펑펑 울어버리고 훌훌 털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로 성장하길 간절히 기도나 할 수밖에.


살면서 똑 떨어지게 1:3이라는 비율을 지키며 말과 침묵을 조율할 수도 아예 을 닫고 살 자신도 난 없지만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버리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오늘 다시 해본다. 아이가 겪게 될 삶의 풍파는 어쨌든 아이의 몫. 그저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는 엄마만이라도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아이를 지그시 보며 되뇐다. '너도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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