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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그녀의 이야기

: 꽃할머니

by 윌버와 샬롯
이 책은 1940년 무렵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웃어 보려고 해도 웃을 일이 없어.
뭐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이 있어?
좀 삐죽 웃으면 되지.


아무리 세상 사는 게 힘들다고 해도 어쩌다가 가끔은 웃을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할머니는 웃을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꽃할머니는 꽃누르미를 하신다.


뻔히 어떤 주제의 책임을 알고 폈음에도 책이 잘 덮어지지 않았다. 깊은 슬픔은 책의 두께와는 상관이 없나 보다. 이 얇은 그림책 한 권에서마저 가슴이 무척 아렸다. 웃을 일이 없다는 할머니의 감정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도 꽃할머니는 언니와 함께 나물을 캐러 나갔다.
꽃할머니와 언니는 이유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울면서 끌려갔다.
그날 이후 꽃할머니는 언니를 다시 보지 못했다.


집에 있다가 끌려간 것도 아니고 나물을 캐다 끌려갔다니. 꽃할머니는 어떤 이별의 말도 남기지 못하고 가족과 느닷없이 헤어지게 된다. 겨우 열두세 살의 평범한 어느 날의 일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이럴 때 써야 하는 걸까. 꽃할머니는 같이 끌려간 피붙이 언니랑도 헤어지게 된다. 정말 이럴 수는 없다.


관리인이 한 칸에 한 명씩 여자들을 집어넣었다.
꽃할머니는 그 일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꽃할머니가 처한 상황은 함축된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음에도 모든 것이 상상되어 버린다. 정말 어떻게 견뎌 냈을까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그때의 그녀가 만약 나였다면, 혹은 내 딸이었다면 과연 삶을 제대로 살 수나 있었을까.


모진 세월을 보내고 멀찌감치 나무 밑에서 고향 마을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참 애처롭다. 이미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반겨줄 사람 하나 었다. 돌아온 고향에서마저 이방인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금도 끊임없이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꽃할머니가 겪은 아픔은
베트남에서도 보스니아에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콩고에서도 이라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할머니가 겪은 전쟁은 끝난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주여행도 갈 수 있다는 이 놀라운 시대에서마저 되풀이되고 있다니. 인류는 진정 발전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나만 안락한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가.


'비어 있는 옷'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규제하고 지배하는 제도나 관습, 국가체제 등을 각각 상징합니다. 누구든 그런 옷을 입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옷이 강요하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개인들보다는 그들을 지휘하고 선동한 국가와 지배세력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쟁으로 고통받고 피해를 입는 쪽은 언제나 폭력에 저항할 힘이 없는 약자들입니다. 군복을 입고 전쟁에 동원되는 젊은이들도 한편으로 피해자입니다. 그들을 뒤에서 지휘하며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 다수의 약자들이 민족과 종교, 이념을 넘어 연대하여 그 세력과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다시는 꽃할머니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가는 이념을 넘은 연대에 관해 말하고 있다.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을 남성과 같은 동일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오랜 관습으로 이제 그 나라 여성들은 하루아침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꼭꼭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 앞에서 아무 죄 없이 처절히 희생당하는 약자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복잡한 국제정세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세계는 좌시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며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역사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난 꽃이 좋아!
이렇게 꽃을 만지고 있으면
기분도 좋고
아무 걱정 안 하고 참 좋아.


2010년에 이 책이 나오고, 그 해 12월에 심달연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한다.


할머니는 언니가 곱게 묶어 주던 빨강 꽃댕기를 했었던, 또 꽃을 참 좋아하 우리 이웃이었다. 할머니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고통을 오롯이 겪어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안 남았다. 평범한 소녀들이던 여럿의 꽃 같은 할머니들에게 우리는 그리고 집단의 가해자는 마땅히 그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아무 일이 아니어도 이제는 그녀들이 활짝 웃을 수 있게!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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