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만발하던 작년 봄,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섰다. 신문에서 본 사진 한 장, 진달래로 온통 물들인 사진 속 장소를 가보고 싶어 스크랩했던 곳으로 향했다. 마침 그곳이 신혼 생활을 했던 곳과 멀지 않았다. 꽃도 보고 추억의 동네 탐방도 겸하게 됐다.
신혼 때 살던 동네를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되니 남편과 나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우리는 끄집어냈다."나 좀 여기서 찍어줘." 신혼 첫 집이던 다세대 빌라 앞에서 나는 짐짓 진지하게 포즈를 취했다. 따라온 아이들은 젊디 젊었던 부모의 서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예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빌라 앞에서 뜬금없이 사진이라니, 아이들은 이해 못할 표정을 지었다. 생활권이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기에 여기를 또 언제 다시 올까 싶어 난 사진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아이 없이 2년씩 각각 신혼을 보낸 두 동네를 돌아보고 그때 종종 사 먹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티브이에서 돈가스만 나오면 생각나던 곳이다. "이 왕돈가스 집이 말이야"하며 그곳에 켜켜이 쌓여있는 고릿적 이야기를 나는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집을 대신 알아봐 주는 TV 프로그램이 한참 유행이었다. 뒤이어 미니멀리즘이 따라왔고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은 비움으로 공간의 재창출을 이뤄내는 모습에 감동까지 얹어준다. 여행을 쉽사리 갈 수 없는 코로나 시국에 홈 인테리어는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재난지원금을 많은 사람들은 소파나 가구를 바꾸는데 소비했다. 집이라는 공간의 재해석. 우리는 이제 집에게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일도 해야 하는 홈 오피스, 차 한 잔이라도 근사하게 마시고 싶은 홈 카페, 넷플릭스를 등에 업고 팝콘 하나만 있으면 남부럽지 않을 나만의 영화관 등 바이러스는 그렇게 집의 모습 그리고 그 역할마저 변화시켰다.
여기 까마귀에게도 몹쓸 바이러스가 창궐했을까. 훤한 창공을 두고 까마귀는 텅 빈 공간의 구석을 왜 응시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곳. 그리고 모퉁이. 이곳에서 까마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까마귀는 가만히 쳐다보고 앉아보고 누워도 본다. '그래, 여기가 딱이야.' 하필 왜 구석이 맘에 든 걸까? 이유는 없다. 까닭도 모른 채 그냥 그런 곳이 있지 않나.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저 마음이 가게 되어 저절로 몸이 머무는 곳. 뭔지 모를 이끌림으로 까마귀도 구석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맘에 드는 곳이 생겼으니 이제는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에 꼭 필요한 물건은 무엇일까? 가끔 지금의 내 공간을 보며 흠칫 놀랄 때가 있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던 유년 시절을 보냈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있었다. 현재의 내 공간을 보며 놀라는 것은 아마도 어릴 때 나만의 방, 나만의 책장이 없던 '무'에서 내 물건, 내 집이라는 '유'로 바꾼 세월의 경외감과 스스로 일군 대견함이 내포된 감정일지 모르겠다.
아파트 앞에 버려진 작은 책장 하나를 경비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가져와 한 권 두 권 채우기 시작한 아이 책은 이제는 방 곳곳 몇 개의 책장, 그것도 빈틈없게 채워져 있었다. 빼곡해지는 책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진심으로 배부르고 행복했다.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책이며 옷, 장난감을 많이 버리기도 했고 중고마켓에 저렴하게 팔거나 나눔을 실천했다. 참 알뜰히도 정리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이사하는 날 거실로 꺼내 놓인 짐들을 보며 난 머리가 아찔했다.
'이 많은 물건들이 언제 이렇게 생겨난 거지?'
좁은 빌라에서 젊은 청춘 두 사람이 시작한 그 소박한 세간들이 언제 이렇게 불어났는지 거실을 가득 메운 박스들을 보며 난 야릇하고 미스터리한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 까마귀가 이사하는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자. 아직은 혼자인 것 같은 까마귀 살림은 어떠할까. 맨 처음 가장 좋아하는 구석에 침대를 놓는다. 지성을 겸비한 까마귀였는지 책으로 가득 채울 책장을 배치한다. 인테리어 센스까지 갖췄는지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할 러그 또한 빼놓지 않는다.
안녕?
뭐가 또 필요할까. 영특하기까지 한 까마귀는 반려식물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나 보다. 이제 막 잎이 나온 작은 초록이를 침대 옆에 두고 인사를 한다. 초록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 옆에서 책을 읽고(어쩌면 초록이에게 읽어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성스레 물도 준다. 관심과 사랑은 배신하지 않는다. 세 장의 이파리만 있던 초록이는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 옆에서 까마귀는 평안하게 잠을 잔다. 꿈속에서도 너를 돌보고 사랑해주겠다는 따스한 표정으로.
뭐가 더 필요할까?
뭐가 또 아쉬운 건지 까마귀는 다시 공간을 둘러본다. 이제는 좋아하는 구석부터 노란 색연필로 햇살 같은 그림을 벽에 그리기 시작한다. 초록이에게 주고 싶은 그림이었을까? 여기서 또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스피커를 가지고 와 룰루랄라 춤을 추며 초록이와 음악을 같이 듣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 키높이까지 그림을 그렸음에도 까마귀는 멈추지 않는다. 천장까지 빽빽하게 기어이 채우고야 만다. 기쁨의 춤을 까마귀는 추기 시작한다.
그래도 허전한데…
까마귀는 만족하지 못했다. 시무룩하게 초록이를 쳐다본다. 까마귀가 진짜 원하는 건 뭐였을까? 그림책 후반으로 가서야 까마귀가 왜 그런 기하학적인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하게 됐다. 까마귀는 신의 한 수였던 마지막 셀프 인테리어 공사를 성황리에 마치고 '구석'을 넘어 공간의 제2장을 열게 된다.
안녕? 안녕.
진짜 빛을 끌어온 까마귀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초록이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인사를 한다.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초록이마저 이파리를 빼꼼 밖으로 향한다. 자기도 까마귀처럼 새 친구가 궁금하고 인사하고 싶다고 고개를 내미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어질 까마귀의 신나는 일상이 더욱 기대되는 장면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냥 구석은 까마귀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특별한 구석'이 되었어요. 특별한 구석이 되고 나니 예상치 못했던 일들도 벌어졌어요.
작가는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니 나도 그랬다. 독립하고 얻은 모든 공간이 내겐 특별한 구석이었다. 나는 그곳들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아꼈다. 허름한 작은 다세대 빌라 신혼집을 남편과 나는 쓸고 닦고 가꿔 우리만의 궁전으로 만들었었다. 그곳에서 기뻤던 일도 슬펐던 일도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까마귀가 초록이와 친구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했던 것처럼 남편과 두 아이는 아무것도 없던 내게 인사를 했다. 그것뿐이랴. 같이 나누고 함께 웃고 우는 이웃도 생겼다. 그 모든 게 꿈꾸던 일이기는 했지만 실로 내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혼자였던 까마귀와 내게 생긴 이 예상치 못한 일들은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
우리 거실에는 소파 앞에 다이닝 테이블이 하나 있다. 난 거기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TV를 본다. 비가 요란하게 오거나 살며시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 난 소파에 앉아 베란다 창으로 밖을 본다. 그러면 가끔 그 순간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평화롭게 앉아 그것들을 안전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다.많은 사람이 나처럼 그렇게 당연히 살고 있겠지만 또 안타깝게도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오늘 아침 풍경은 이랬다. 각자 방에서 아이들은 원격수업을 듣는다. 난 거실에서 유튜브 영상을 TV에 연결해 홈 트레이닝을 한다. 수업 중간에 참고서적을 찾으러 거실로 잠깐 나온 딸이 잘 되지 않는 동작을 우습게 따라 하는 나를 보며 뭐 하는 거냐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묻는다. 대답할 힘도 없어 대꾸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랬다. '너희는 공부해라. 엄마는 엄마구석에서 운동을 할 테니.'
나만의 구석을 살뜰히 가꾸어 나를 충전한다. 그러고 나서 건강하게 바깥세상과 마주하고 성장하는 것. 자기만의 구석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리라.
당신의 구석은 그래서 어디인가? 당신도 그곳을 아끼고 가꾸는가? 그렇다면 거기에서 누구보다도 더 당신이 행복해지길!
사족 하나, 어서 까마귀가 초록이를 분갈이 좀 해주면 좋겠다. 너무나 많이 자란 초록이인데 화분이 처음 그대로다. 난 비록 꽃은 잘 못 피우는 어리숙한 식물 집사지만 자꾸 커가는 초록이를 보자니 마음이 갑갑해왔다. 까마귀야,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