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윌버와 샬롯 May 10. 2021

당신의 가장 그리운 때로 이동하실게요

: 개미 요정의 선물

얼마 전 인물 사진으로 미소 짓는 영상을 들어주는  사이트 '노스탤지어(Deep Nostalgia)'를 알게 됐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어 엄마에게 보여줬더니 "엄마가 웃는다. 우리 엄마가."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어느 글을 통해서다. 그 글에 난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글을 다 읽자마자 엄마 사진을 찾으러 방으로 들어가 앨범을 뒤적다.


찾아보니 나한테는 엄마 독사진이 따로 있지 않았다. 나랑 엄마랑 어린 조카 둘을 사이에 두고 넷이서 찍은 사진이 보였다. 지금은 어엿하게 성인이 된 남매 조카가 너무 귀엽고 개구진 표정이었다. 그런 조카에게 팔을 두르고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마저 사뭇 낯설었다.


"예쁘네, 우리 엄마. 지금 내 나이쯤 됐을 때인가?"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사진첩을 보았습니다.


여기 그림책 속 여인도 나처럼 빛바랜 앨범을 펼쳤다. 어떤 이유로 이 여인 예전 사진을 보기 시작한 걸까? 무엇이 그리웠던 걸까?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엄마 뒤에서 머리칼을 빗어주고 곱게 올려주는 딸의 모습이 따스하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서로 역할이 바뀐 모습에서 어쩐지 짠하기도 하다. 장성한 딸에 비해 엄마는 작아 보여 그런 걸까? 딸이 엄마를 돌봐야 하는  이들에게도 세월은 그렇게 흘렀나 보다.


젊은 시절의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여인은 사진첩을 엄마에게도 보여준다. 둘은 같은 것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찾는다. 여인은 젊었던 엄마를, 엄마는 어린 시절의 딸아이를 생각다. 엄마는 일 하느라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고, 딸은 그런 엄마를 마냥 기다렸던 기억을 꺼낸다.


"너희 엄마가 이렇게 귀여웠는데 이때는 내가 바빠서 많이 안아 주지도 못했단다......"
"얘들아, 할머니를 기쁘게 할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나 귀여웠던 아이를 너무 바빠서 많이 안아주지 못했다며 할머니는 손자에게 말한다. 쓸쓸해 보이는 할머니를 보고 손자는 개미 요정에게 부탁한다.


우리만 믿어.
아주 좋은 게 있으니까.


개미 요정들은 나이 든 엄마와 엄마가 된 딸에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투명 장옷을 선물한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는 마법이 풀리지만 여기 엄마와 딸에게는 마법의 시간이 시작된다. 엄마는 도시락까지 싸며 여행을 준비한다. 두 사람은 한껏 곱게 옷을 차려입는다. 똑딱똑딱. 엄마와 딸은 과연 어느 그리운 시간으로 여행을 갔을까?


그리 시간으로 갈 수 있는 투명 장옷이 내게도 있다면 난 어느 시간으로 가게 될까?


엄마와 할머니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똑딱 똑딱


엄마와 나 그리고 조카 두 명.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어떤 이유로 사진을 찍었는지는 기억나 않지만 나는 그 사진으로 딥 노스탤지어를 해 봤다. 1분 정도 마술봉이 왔다 갔다 움직이더니 짜잔 완성, gif 파일이 10초 정도 움직인다.


우리 엄마도 웃는다.
우리 엄마가.


엄마가 정말 웃기 시작한다. 살짝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돌리며 나를 보 웃는다. 이 감정 뭐지? 읽었던 글에서 눈물짓던 어머니와 같은 감정을 내가 느끼게 될까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 사진으로도 잘 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단지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보니 좀 기분이 이상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 오묘한 기분. 마치 알 수 없는 깊은 토끼굴에 빠져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랄까. 딥 노스탤지어는 내게 투명 장옷과 다름없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가족 '밴드'에 엄마가 웃는 영상 파일을 공유했다. 언니 오빠들은 울컥했다며 한 마디씩 댓글을 달았다. 그 날은 아무 날도 아니지만 그냥 날씨가 좋아 사진을 찍은 거라고 오빠가 기억을 더듬었다. 엄마 눈썹이 많이 옅은 것을 보 엄마가 아프기 시작할 때쯤이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이 커서 엄마가 어릴 때는 왕방울 소리 들었다며 난 처음 듣는 얘기를 언니는 남겼다. 엄마가 예뻤었구나. 엄마 이야기는 오래된 옛날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다 안타까워.


언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절 어렸던 동생들에 대한 여러 회한이 서린 장문의 댓글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이모의 팔순 기념 가족사진이라 외사촌형이 보내줬다 오빠는 얼마 전 사진을 가족 밴드에 올렸다. 평소 같았으면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을 텐데 이모는 단출히 가족끼리 팔순을 기념했었나 보다. 활짝 웃는 이모와 그 일가의 단란한 모습 담긴 사진 한 은 우리 형제에게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올라왔지만 시끌벅적할 여느 때와 달리 게시판은 조용했다.


긴 시간 동안 그 사진에 대해 누구도 어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물론 이모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 좀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이모가 여태 어떤 고생을 하며 사셨고 그 자녀들은 또 무슨 속을 썩였는지 우리는 히 알고 있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정말 이승이 나은 건지 그 사진을 보니 아무리 사는 게 평탄치 않았다 해도 살아있는 이모가 승자인 것 같았다. 그 사진은 마치 이모 삶에 대한 훈장처럼 보였다. 아니 증명하고 있었다.


이모보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 우리 엄마가 다시금 너무 한탄스러워서 그리고 지켜주지 못한 죄스러움에 어떤 할 수 없었 것. 우리는 그래서 침묵했을 것이. 감정 좀 삭이고 나서야 난 첫 댓글을 달 수 있었다.


좋아 보이네...


다음으로 오빠정곡을 찌르는 글을 달았다. 바로 우리 모두의 심정이었던 그 말.


부럽네...


왜 그림책을 보면서까지 난 질투가 나는지. 그래도 그림책 여인은 엄마가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만지고 보고 추억을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을 갖고 있지 않던가. 굳이 투명 장옷까지 입고 시간여행 필요 있을까. 장옷은 나나 주지. 개미 요정님들.


2주 전에는 가까이 사는 오빠 부부오랜만에 집으로 초대했다. 오빠는 몰랐겠지만 그 날이 마침 엄마 생일날이어서 난 그냥 미역국을 끓였다. 간단히 먹자고 김밥도 말았다. 그렇게 토요일 점심을 엄마 조금 생각하며 우리는 함께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엄마, 우리 이렇게 살아요.

다음에는 꼭 오래도록 함께 해요.


이미지 출처 : 예스24
이전 07화 엄마가 미운 다 큰 아이가 봤으면 하는 그림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