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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 푸른 수염

by 윌버와 샬롯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푸른수염은 여행을 떠나기 전 집에 있을 아내에게 당부한다. 집에서 다른 것 무엇이든 허용하지만 잠겨있는 저 방만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푸른수염의 부탁 혹은 약속은 명령과 시험일뿐이다. 아내를 시험에 빠지게 하는 장치 자체가 아내가 약속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원초적으로 잘못된 시작이다. 어떤 선함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시도는 그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가 옳지 않다.

소설 돈키호테에 비슷한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완벽한 아내를 둔 귀족은 자기의 소중한 친구에게 아내를 유혹하라 부탁한다. 이유는 단 하나, 아내를 사랑하지만 물리적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완벽하고 정숙한 아내인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오직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말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요청에 친구는 거절하지만 몇 번의 간곡한 부탁으로 실행에 옮긴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유혹하는 척 시늉만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구와 아내는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셋은 어떻게 됐을까? 무모한 실행의 끝은 결국 파국일 뿐이었다.

푸른수염의 의도가 처음부터 불순했다 하더라도 훗날 아내와 그 가족들이 푸른수염의 재물을 갖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그림책 결말이 영 마뜩지 않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지 않은 결말이다. 아내는 이미 소문으로 푸른수염이 미심쩍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임을 익히 알고 결혼했다. 분명 궁금한 사항에 관해 묻지 않고 묵인한 것 또한 아내 책임도 있지 않을까. 푸른수염의 재산을 바라고 결혼한 아내와 그 가족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과연 그것 모두를 향유할 자격이 된단 말인가. 부부간의 비밀이라는 것. 어느 선까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다.

그림책에서 그린 그 이상으로 푸른수염과 아내에 대한 더 많은 서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원전 자체의 매력 때문인지 샤를 페로 외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여럿 보인다. 같은 소스를 가지고 다른 작가는 어떻게 전개했을지 궁금하다.

최근 외국 도서관에서는 몇몇 고전 그림책을 퇴출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아이에게 전해질 성역할과 성고정화에 대한 우려로 인해 비롯된 현상이다.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고전 그림책도 이제는 그 내용 및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고 아이에게 권해야 할 시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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