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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치가시 나물지 말아요

: 준치가시

by 윌버와 샬롯

몇 년 전 독서모임에서 백석 시인의 그림책을 모두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즈음 백석의 첫 시집 「사슴」 초판본이 경매로 나와 이슈가 됐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개구리네 한솥밥, 집게네 네 형제, 여우난골족, 오징어와 검복, 산골총각 등과 같은 동화시를 모아서 한 권으로 출간된 책도 있지만 모임에서는 각각 단행본 그림책으로 출간된 것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백석 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향토적인 우리말 입말의 재발견이지 않을까 싶어요. 투박하지만 고향 냄새 짙게 나는 평안도 사투리를 제대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시를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는 전통적인 시골 고향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특히나 백석은 지금의 이영자 못지않은 음식 표현의 대가였을 게 분명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뚜막과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게 하는 정겨운 음식이 시만 보더라도 절로 생각납니다. 토속적이면서도 위트가 있는 유머도 깔려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지 따스하고 정겹게 얘기해줍니다.

백석의 동화시 중에 저는 그림책 「준치가시」(창비)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그림책은 수묵채색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표지 제목부터 과감한 먹물의 필체가 개성 가득합니다.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시이지만 수묵의 담백한 그림까지 더해져 짧은 만화 한편을 보는 듯도 합니다. 가시가 없던 귀여운 아기 준치의 모습에서 점점 가시를 보시받은 준치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흥미롭습니다.


준치가시 / 백석

준치는 옛날엔
가시 없던 고기.
준치는 가시가
부러웠네.
언제나 언제나
가시가 부러웠네.

준치는 어느 날
생각다 못해
고기들이 모인 데로
찾아갔네.
큰 고기, 작은 고기,
푸른 고기, 붉은 고기.
고기들이 모인 데로
찾아갔네.

고기들을 찾아가
준치는 말했네
가시를 하나씩만
꽂아달라고.

고기들은 준치를
반겨 맞으며
준치가 달라는
가시 주었네.
저마끔 가시들을
꽂아주었네.

큰 고기는 큰 가시
잔 고기는 잔 가시,
등 가시도 배 가시도
꽂아주었네.

가시 없던 준치는
가시가 많아져
기쁜 마음 못 이겨
떠나려 했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간다는 준치를
못 간다 했네.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
더 준다는 가시를
마다고 하고,
붙잡는 고기들을
뿌리치며
온 길을 되돌아
달아났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달아나는 준치의
꼬리를 따르며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이때부터 준치는
가시 많은 고기,
꼬리에 더욱이
가시 많은 고기.

준치를 먹을 때엔
나물지 말자,
가시가 많다고
나물지 말자.
크고 작은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준치 가시를
나물지 말자.


'이제 그만 주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준치의 커다란 눈망울이 애처롭습니다.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시인은 느낌표까지 넣어 강조하는데 이 부분이 너무 웃깁니다. 아름다운 마음인 건지, 준치를 난처하게 하는 건지 아리송합니다. ‘이젠 제발 됐거든요!’라고 준치 대신 말해주고 싶습니다.




백석 시를 공부하면서 백석의 일생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지요. 백석은 그 시대 모던보이였으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로 더 유명할 겁니다. 휘날리는 머리칼 청년 백석의 사진을 보면 정말 그 시대 사람 같지 않게 참 잘 생겼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세련됐던 사람이 전해오는 북에서의 말년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분단이라는 시대 상황이 그 멋진 분을 현실에 매몰시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창비에서 나온 이 그림책은 ‘우리시그림책’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입니다. 창비의 이 시리즈를 저는 참 좋아합니다. 「시리동동 거미동동」, 「넉 점 반」, 「석수장이 아들」도 시와 그림이 잘 어우러진 훌륭한 시 그림책입니다.



준치는 잘못이 없어요. 가시를 조금만 원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가시가 많게 된 거래요. 그러니 나물지 말고 맛있게 먹어줍시다!
(나물지 : ‘나무라지’의 평안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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