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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란 풍선은 어디에

: 풍선

by 윌버와 샬롯

이 그림책은 다섯손가락 '풍선'의 노랫말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창비에서 '그림책으로 보는 아름다운 노랫말'이라는 기획 아래 만들어진 두 번째 책이다.


예쁜 노랫말을 가진 대중가요를 글밥으로 한 그림책이 큰 감흥을 줄까 싶었다. 이미 아는 가사에 그림만 넣었을 뿐일 텐데 이런 시도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휘리릭 그림만 쉬이 보고 금세 읽어버릴 것만 같은데 말이다. 한편으론 그림책은 아직 노래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읽은 공산이 크니 노랫말을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내 우려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섯손가락 원곡에다 동방신기 리메이크 버전까지 즐겼던 입장에서는 호기심이 덜한 게 이 그림책을 접한 첫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기우였다.


이 그림책은 자세히 봐야 예쁘다. 꼼꼼히 보니 참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숨은 그림을 찾듯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온전히 그림에만 집중해서 보니 그제야 한 가족이 보였고, 그 속에서 엄마가 말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누가 놓친 걸까. 초록이 빼곡한 들판 사이로 노란 풍선이 홀연히 날아간다. 그 아래 조그만 오솔길에는 자가용이 툴툴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공원으로 놀러 온 한 가족이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사이로 작은 여자 아이가 보인다. 양쪽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뜀박질해보는 아이는 신이 난다. 엄마와 아빠는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아이는 나비를 쫓는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멀리서 날아온 노란 풍선을 아이가 발견하고 엄마가 풍선을 잡는다. 엄마는 순간 딸만한 나이의 본인이 떠른다.



엄마도 지금의 자기 딸처럼 귀하디 귀했던 딸이었다.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렇게 사랑이 넘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엄마에게도 분명 그런 날이 있었다.


'후'하고 초를 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 살 생일은 행복했다. 이 세상 전부를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이 아빠는 하늘 높이 나를 번쩍 안아줬다.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젊디 젊은 단발머리 엄마와 안경 쓴 아빠는 항상 내 뒤에 있었다. 종종 상처도 받고 실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같이 웃고 울어줄 엄마 아빠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엄마의 서사를 쫓아가며 보는 그림이 참 재미있다.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으로 나오면 왜 실내화 가방을 하늘 위로 던지기를 좋아할까. 엄마는 친구와 풍선껌도 같이 불고, 농구도 좋아하는 발랄한 아이였나 보다. 고등학교 소녀일 때는 기타를 치며 음악을 사랑했던 것 같다. 아마도 대학 MT에 가서는 모닥불 아래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을 거다. 그 모습에 한 남자가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여전히 그녀는 아이에게 기타를 쳐주며 음악을 들려주는 낭만적인 엄마가 됐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됐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아이가 그렇게 자 것이다.


이야기가 보이니 그제서 노랫말이 읽혔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노랫말은 이제는 영화의 장면처럼 서사가 됐다. 처음에 느꼈던 내 시큰둥은 곧 머쓱해졌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노랫말과 그림의 조화, 비로소 이 기획에 미소가 지어지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색색깔 많은 풍선을 들고 가는 아이가 보인다. 날아갈 것만 같다. 우리 아이도 그렇게 꿈을 향해 나아가겠지. 자기만의 노란 풍선을 들고 끝없이 달려가고 싶겠지. 엄마의 꿈도 그 딸의 꿈도 모두 이렇게 환해지기를. 내가 그랬듯 내 아이도 반짝반짝 빛나는 지금의 유년시절을 보내기를. 그리고 꼭 지금을 기억해주길.


이제는 초록색 풍선이 날아간다. 우르르 아이들은 풍선을 잡으러 달려간다. 이번엔 아빠가 풍선을 잡았다. 이젠 아빠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당신은 그 예전에 어떤 풍선을 안고 무슨 꿈을 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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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손가락,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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