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주제로 한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편이다. 도서관을 헤매다 그림책이나 아동도서 서평 서가 있는 곳은 언제나 적어도 한 권은 뽑게 하는 자석과도 같은 장소이다. 책 모임에서 회원 한 분이 이 책을 언급하시는 것을 언뜻 듣기도 했는데 어떻다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한 첫 느낌으로는 제목이 특이하다는 점이다. 보통 이쪽 분야 책 제목은 ‘사랑하는, 좋아하는’ 류의 말을 많이 붙이지 않는가. 불편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목만 보고는 안 좋은 그림책에 대한 비평서가 아닐까 지레짐작했다.
여태 봐왔던 그림책 서평서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책 초반부터 처절하게 고백하는 저자 경험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콕 박혀 들려왔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마음은 모두 이렇게 힘든 것인지 ‘이 분도 이렇구나, 모두 그렇구나.’라며 서늘해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사계절)에서 저자의 시각은 특히 새로웠다. 동아줄을 버리지 못하고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호랑이를 ‘어미’라는 자신과 동일시한다. 어떤 책이든 그렇듯이 그림책도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받아들이는 해석이 달라지나 보다. 그저 해와 달이 어찌 생겨났다는 옛이야기는 아이 때문에 힘든 엄마를 호랑이가 되게 하고 수수밭에 무참히 떨어지는 상상을 하게도 한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저자는 ‘이해와 수용의 낙차’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참 많은 육아서와 인문서를 읽었고 여러 전문가의 강연을 찾아들었다. 질문을 하고 해답을 찾으려 하고 그에 맞는 실천을 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직 나에게 도돌이표다. 반성하고 다시 재무장하여 실천하고 그리고 다시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마는 제자리걸음. 책으로 무장한 다양한 지식은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 더 자책을 키우는 도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쯤이면 ‘이해와 수용의 낙차’ 폭을 좁힐 수가 있을까. 오늘 아침 아이에게 퍼부은 악다구니. 새해가 되고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도 이미 난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 패배자인 것만 같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재미마주)에서도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지점을 저자는 짚고 있다. 이전에는 이 그림책에서 젠더 감수성에 대해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저자 글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며 수긍이 갔다.
“아들들이 힘도 세지 않고, 손자 손녀 낳아 줄 딸도 없는 우린 워쪄? 반전이 없어서 좀 그러네. 진정한 힘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으로 반전하지 못한 게 흠이여. 젊은 날의 나를 그대로 물려받은 자식을 통해 삶의 기쁨을 찾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생각인가 싶어. 비록 요즘 세태가 자식을 통해 자기 삶을 보상받고 또 그런 사람들이 어깨 펴고 산다고는 하지만. 그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아니잖어. 그림책에서까지 왜곡된 세태를 찬양하는 느낌? 그런데 내가 그림책을 대해 뭘 알간?”
저자의 남편 말이다. 여러 번 본 그림책이지만 세월 흘러 고개 숙인 가장의 힘겨운 이데올로기에만 집중했던 기존 생각을 다시금 살펴보게 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림책 이야기를 하면서 그림책 표지 사진 하나 없는 책은 처음 본다. 출판사 저작권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관련 사진을 넣었다면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 반대로 그림이 없었기에 온전히 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부분은 있었다. 혹시 그런 부분을 노린 걸까? 책에 언급된 그림책을 얼른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발동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엄마이고 선생님인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그림책과 함께 톡톡히 녹여내고 있다. 엄마이고 그림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졌기에 내 얘기처럼 쏙쏙 들은 책이었다.
오래도록 그림책을 공부했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좀 더 전문적으로 그림책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좋아하는 것을 더 깊게 공부하는 것에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었다. 시작이 두려운 건지 자신이 없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오늘 같은 마음에서는 그곳으로 더 풍덩 빠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떠오르는 마음대로, 이끌리는 대로 한 번 그곳으로 더 깊게 여행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