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얻은 보물 중 하나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단언컨대 그림책을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여서 알게 된 그 사랑하는 많은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인 존 버닝햄이 올해 1월 4일에 유명을 달리했다.
며칠이 지나 부고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머, 돌아가시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오셨던 것 같았는데 말이다. 오늘은 그분을 추모하는 날로 정했다. 아이 책장에 있는 그의 책을 모두 찾아 꺼내 보았다. 그동안 모아놓은 책이 꽤 되었다. 오랜만에 한 권씩 읽어본다.
통으로 존 버닝햄 그림책을 모아 보니 다시 새롭게 그가 보였다. 그의 그림책에서는 어떤 교훈도 주려 하지 않는다. 단지 그대로의 아이가 보일 뿐이다. 그는 정말 끝까지 다섯 살 아이 마음으로 살았나 보다. 아이만을 위한 그림책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만들지는 않았다고 존 버닝햄은 생전에 말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롯이 아이 마음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 아이보다 어른이 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또는 어린 시절 마음을 잊어버린 사람에게 그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오늘 내가 그랬다.
마법 침대를 타고 여행하는 조지야, 마법 주문 좀 내게도 알려주면 안 되겠니?
구름 나라로 간 앨버트, 그래도 집이 최고인 거지?
우리 집에도 꼭 좀 있었으면 하는 커트니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여전히 풀지 못한 미스터리다.
결국 백조가 되지는 않았지만 꼭 영국 큐가든에 가면 만나고 싶은 보르카,
나에게도 저런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하고 미소 지으며 읽지만, 끝에 쓸쓸히 비어있는 소파를 보고 나면 가슴이 훅하고 먹먹해진다.
마음씨 좋은 검피 아저씨와 함께 뱃놀이와 드라이브도 해보고 싶고,
에드와르도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로 바뀌게 하는 팁도 오늘 다시 배운다.
롤리 폴리 산꼭대기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하비 슬럼펜버거에게 빠뜨린 선물을 주기 위해 머나먼 길을 순록도 없이 떠나는 산타 할아버지, 우리 집에는 도대체 언제 오시나요?
자기 전까지 레고 놀이를 하는 아이 마음이 갑자기 헤아려지게 한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보니, 우리 아이도 아마 꿈속에서 멸종 위기 동물들을 구출해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름도 너무 어려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여전히 학교에 지각하고 있을까?
다시 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이야기가 보이고 내 해석이 예전과 달라져 있기도 하다. 선생님을 구출하지 않는 지각대장 존을 보며 그 행동이 선생님에 대한 복수인 건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존의 마음이 이제는 사라진 건지, 예전에는 생각지 못한 물음표를 찍게 한다. 훗날 그림책을 다시 보게 될 때 내 해석과 느낌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새롭다. 이러니 아이가 자라도 그림책을 버릴 수 없다. 꼭 끌어안고 마음이 스산해질 때마다 보고 싶다.
마법 침대를 타고 정말 구름 나라로 떠난 존 버닝햄 할아버지. 어쩐지 그는 정말 구름 나라에서 모두를 만났을 것만 같다.
커트니, 보르카, 에드와르도, 하비 슬럼펜버거, 그리고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존 할아버지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