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꼭대기 닿을 수 없는 곳에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저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각기 다른 동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과를 얻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쥐는 '아, 저러면 되는구나'하고 방법을 배우게 되지만 그들처럼 사과를 갖지는 못한다. 코를 늘려보고, 목을 주욱 빼보고, 나무에 머리를 힘껏 부딪혀봐도 소용없다.
새처럼 파다닥 날아오르면 사과를 딸 수 있을까
살면서 이거다 싶어 다른 사람을 따라 하다 느꼈던 좌절이나 혼돈의 순간이 있었는가? 타인에 대한 동경으로 그를 흉내라도 내본다면 어쩌면 조금은 비슷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어줍지 않은 시도를 해 본 적은 없었는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상대적 작아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요리를 잘하는 엄마, 예쁜 캐릭터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 학습 관리를 철저히 해주는 엄마, 아이와 교감을 수월히 하는 엄마. 세상에는 나와는 별세계인 능력 많고 완벽한 엄마들 천지다.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모두를 따라 할 필요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다고.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때 좀 안도하고 위안받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떤 정답이 없듯 각자 방법대로 내 능력만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그때부터였을까. 누가 무엇을 잘하는 것에 큰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내가 하지 못할 것에 감히 흉내라도 내어 필요 없는 소모를 하지도 않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고 여러 곳에 숭숭 비는 구석이 있어도 나만의 형태로 뚝심 있게 이어갔다. 억지로 남의 방법을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얻는 것은 사과를 따는 여러 방법만큼이나 모두 제각각이니까.
쥐는 처음부터 혼자서 사과를 따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도움을 청하고는 싶지 않은 독립적인 자아를 갖고 있었던 걸까? 사과를 얻는 다른 동물을 계속 부럽게 쳐다보고 있는 쥐를 다른 동물은 왜 한 번도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도와줄까?
'도와줘', '도와줄까?'라는 이 두 말이 서로가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까? 눈치만 보고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다린 걸까? 쥐는 언제까지 다른 동물을 따라만 하고 있어야 했을까? 허탕만 치고 있는 쥐에게 유일하게 물개만이 말을 건넨다.
이런~, 조심해야지.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먼저 다가와 관심 가져주고 말을 건넨 물개만이 이곳에서 유일한 승자다. 그래야 해결된다. 먼저 요청할 줄도, 무엇이 문제인지 관심을 갖고 다가갈 줄도 알아야 이 세상은 돌아간다. 평범한 개인은 한없이 작지만 그들이 모였을 때에야 꿈에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딜 수 있다.
책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그림책이 있었다. 책 판형도, 표지 제목 글자체도 다르지만 조그만 쥐 한 마리가 나오고 단순한 그림 패턴이 유사하다. 바로 <그건 내 조끼야> 그림책이다. 찾아보니 글과 그림 작가가 동일한 책이다.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니 익숙하게 서로 카메오처럼 출연하고 있는 동물이 보여 반갑기도 했다. 출판사에 따라 책 느낌이 많이 달라 보인다.
<또또와 사과나무> 제목 앞에는 '관찰력을 길러 주는'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제목에서부터 어떤 목적을 지향함이 훤하게 들여다보여 조금은 김이 샌다. 관찰력을 기르든, 협동심을 배우든 그 속에서 배우는 가치는 읽는 자의 몫으로 남겨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상하게도 그림책 어디에도 작가 소개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타깃층이 유아라 할지라도 작가 이름만 표지에 덩그러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책이라면 그 대상이 누구든 작가 소개는 기본이 아닐까. 다른 출판사 책인 <그건 내 조끼야>에서 같은 글작가와 그림작가 소개를 대신 살펴봤다. 그런데 여기서도 좀 아쉽다. 두 작가가 부부여서, 혹은 공동 작업을 많이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거의 두 작가 소개가 복사 붙이기 식으로 똑같이 쓰여 있다. 작가를 잘 모르고 있다고 출판사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만 신경 쓰면 좀 더 완성도 있는 그림책이 서로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또와 사과나무>와 <그건 내 조끼야>에서는 영화 속 쿠키 영상과 같은 작은 그림 끝 장면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앞에서 겪은 모든 갈등은 해결되고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두 친구가 노는 장면이다. 그 놀이는 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던 실마리이기도 하다. 협동과 공감,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이 작은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