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강이 어때서
혹시 모두들 가족 맞으시죠?
이 책은 다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변과 달라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은 힘들어하기 마련이다. 주변의 시선에도 지칠 것이고 스스로도 '나는 왜 이럴까' 하는 고뇌에 빠지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 빨강이는 다르다. 그림책 표지에서부터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어때서'라고 말하는 듯 빨강이는 은근한 미소로 정면을 당당히 보고 있다. 전혀 주눅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좀 달라 보였다. 또 뭐가 다른 거지? 분명 책은 유아 그림책인데 그 전개가 조금은 당황스럽다.
나는 날 걱정해 주는 가족들을 사랑해.
하지만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슬펐어. 그래서......
집을 나왔어.
청소년 책도 아니고 유아 책임에도 '집을 나왔어'라는 표현은 너무나 급작스러웠고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 그게 최선일까. 그래도 아이가 보는 책이지 않은가. 가출이라니.
다시 그림을 앞에서부터 천천히 봤다. 안보이던 빨강이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표정의 변화가 포착됐다. 빨강이가 태어나고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빨강이는 그들과 다르지만 결코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빨강이 표정이 바뀌기 시작하는 때는 가족이 빨강이의 다름을 잘못됐다고 인식하고서부터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모두 빨강이를 어떻게든 자기들처럼 만들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강구한다. 가족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얀 우유도 먹게 하고, 까만 생선도 먹게 하지만 빨강이는 그 모든 것이 불편했다. 빨강인 게 내 마음에 드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도통 가족의 수선이 마뜩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그런 행동을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그래서 더욱 빨강이는 슬펐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그 느낌은 참 참담하다. 갖은 조언과 방법에 얼마간은 응해도 주고, 원하지는 않지만 혹시나 정말 바뀌지나 않을까 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무너지고 상처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반복의 수순을 밟고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결국 가족 곁을 떠나는 마지막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존재 이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날 수 있는 것, 그것은 자기를 지키는 현명한 선택이었고 용기였다. 물론 그 뒤에 시련이 없었겠는가. 떠났다 해서 바로 웃음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 외로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 빨강이는 다름이 당연한 마을로 오게 되고 거기서 자기를 사랑해주는 짝을 만나게 된다. 혐오스러운 외모만으로도 외면받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도 교류하고 사랑받고 싶어 그렇게 절망하며 자기와 똑같은 존재를 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난 내 빨간 털이 예쁘고 좋았어!
다른 고양이들이랑 똑같으면 시시할 것 같았어.
사람은 참 이상하다. 군중 속에서 특별하고 싶지만 또 유별난 것은 질색이다. 양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그러기에 인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빨강이가 내 마음에 쏙 든 건 자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고 지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시하지 않게 똑같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다는 것도 보통내기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리라.
먼저 이상한 시선으로 누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지랖 넓게 참견이나 어줍지 않은 조언을 해대진 않았을까. 도움을 준답시고 엉뚱한 에너지 낭비는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가 특별하기도 원하며 평범하기도 원하는 어쩔 수 없는 약한 인간이며 엄마로서 빨강이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빨주노초파남보 어떤 색깔이든 모두가 공존하며 웃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엄마인 나는, 우리는, 이 사회는 그리고 이 세계도 이 특별한 빨강이를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