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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를 너무 많이 이긴 걸까

: 우리 집 꼬마 대장님

by 윌버와 샬롯
엄마, 이 그림책 '영화 보스 베이비'랑 비슷하다.

그림책을 먼저 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아기를 좋아해 그 존재가 나오는 어떤 매체도 사랑하는 아이는 몇 번이나 영화 보스 베이비를 봤는지 모르겠다. 처음 책 표지만 봤을 때만 해도 아이와 같은 생각을 나도 하긴 했다. 그저 비슷한 콘셉트의 책이려니 했다.

입술 씰룩하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영화 포스터는 그림책 표지와 빼닮았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 보게 됐는데 비슷한 것이 아니라 이건 뭐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책에서 판권을 살펴보니 원제가 아니나 다를까 영화 제목 그대로 'THE BOSS BABY'다. 이 그림책이 정말 영화의 원작인 걸까. 그런 의구심이 든 후 조금만 검색해보니 금세 알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보스 베이비의 원작이 맞았다. 신기했다. 이 조그만 그림책이 모티브가 되어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 영화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대장님, 오셨어요?


그렇다. 아이는 서류가방에 엄마 아빠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잔뜩 넣어가지고 어느 날 갑자기 턱 하니 등장한다. 예상은 했지만 대장님, 아니 상전, 아니 임금님이든 뭐라 해도 좋다. 예상보다 현실은 그 이상일 수 있으니까. 이건 정말 겪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집 한복판에 떡하니 사무실을 차렸다는 책 속 글은 아기 키우는 어느 집에서도 해당하는 공통된 모습이다. 집안 어느 곳에서든 아기 용품이 없는 곳이 없게 되니 말이다. 아기가 모든 곳을 점령한다. 집이든 엄마 아빠의 마음과 육체까지 모두 말이다. 책에 그려진 유모차, 딸랑이, 젖병, 아기 욕조, 아기 체육관 등 우리 아이도 썼던 육아 용품은 아련하게 미소 짓게 한다.


파스텔 톤 그림이 전체적으로 그림책을 따스하게 한다. 현재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그리고 키웠던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분명 책을 보고 나서는 서로 많은 얘기를 쏟아내게 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각자의 대장님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질게 불 보듯 뻔하다.


우리 집 대장님은 어땠을까. 육아 초기에는 아이를 재우는 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였다. 딸은 아기 때부터 손을 잡아줘야 잠이 들던 아이였다. 이런저런 방법을 찾다 같이 누워 손을 잡고 쉽게 잠이 드는 아이를 보고 처음에는 어떤 비상한 방법을 찾은 양 '유레카'하며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그렇게 한참 동안 손을 잡아주고 있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잠이 들었다 생각이 들어 살짝 손을 빼면 깜짝 깨기가 다반사, 다시 처음부터 재우기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겹게 아이를 재우는 어느 날이 아직도 선연히 생각난다. 손을 잡아주고 어서 잠들기를 바라며 새근새근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었다. 아직은 말도 못 하니 우는 것밖에는 의사표시를 못하는 이 아이도 얼마나 답답할까. 이 작은 아이가 언제쯤 커서 내게 말을 하게 될까. 그때는 그랬다.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지. 그런 날이 온다면 아이나 나나 얼마나 서로 좋고 편할까. 아이를 지그시 보며 그런 상상과 함께 아이 손을 잡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날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힘들긴 했지만 꿈결같이 그립고도 그리운 시절이기도 하다.


지금 대장님은 어떤가. 가끔은 좀 입을 닫고 조용히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 만큼 옆에서 엉뚱한 얘기만 줄기차게 해 대는 투머치 토커 아이가 됐다. 보기에는 대화지만 아이와 엄마는 종종 소통이 안될 때가 있기도 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 서로가 각자에게 바라는 것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옳고 그름을 강하게 따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타당함과 정당함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럴 때 어른은 좀 져 줘야 한다.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아이가 부모를 이겨봐야 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타당함과 정당함을 순순히 인정받아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이것은 엄마가(혹은 아빠가) 잘못 생각한 것 같네. 네 말이 맞다" 식으로 나의 타당하지 않음을 편하게 인정해 줘야 아이가 부모를 딛고 올라간다.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줘야 아이가 부모보다 큰 사람이 된다. 이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말만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라 생각했던 날도 있었는데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얘기만 하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오은영 선생님의 칼럼을 읽고는 여태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아이에게 엄마가 너무 많이 이기는 육아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밖에서는 기를 쫙하고 못 펴나 하는 자책마저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 집 아이들은 대장 노릇을 기껏해야 몇 년이나 했을까. 아이 둘 키우는 것이 당연하게 너무 힘들다며 내 편의를 우선시하며 살지 않았나. 매번 아이에게 져 주면 버릇없어질까 자잘한 좌절감도 아이에게 꽤 많이 안겨줬을 수도 있다. 그냥 잠깐이면 되는데, 그저 아이였을 뿐인데 말이다. 좀 더 많이 대장 노릇을 하게 해 줄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안될까. 이미 너무 늦을 걸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명제를 사랑한다. 늦지 않았을 거야. 아이가 쑥쑥 자라는 만큼 부모도 조금씩은 자란다. 그렇게 같이 자라게 되나 보다. 그러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져 주고, 아이를 인정해주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할 거다. 우리 집 대장님이니까. 우리 집 공주님 왕자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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