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굿 다이노' 초입부를 보며 나눈 엄마와 아들의 대화다. 어느 생명체이든 항상 별다른 것 하나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아들은 그 다름을 돌연변이라는 단어로 대뜸 표현했다. 단어 자체는 생물학적 용어임에도 아들 입에서 심드렁하게 나온 돌연변이라는 말은 '정상적이지 않고 나와는 다른,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라는 거리감이 바로 느껴졌다.
별다른 존재가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일종의 클리셰가 있다. 같은 종임에도 차별과 멸시 그리고 핍박을 받는다. 동종은 비록 아니었지만 결국 우아한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처럼 가족을 잃은 별종 다이노, 알로도 그렇게 화려한 결말을 맺게 될까?
그런데 이 그림책은 뭔가 좀 이상하다. 이제껏 보아왔던 별종에 대한 핍박이 안 보인다.
그림책 '너도 사랑스러워'는 너무도 뻔하다. 조금 달라도, 아니 그 정도면 많이 다른 것임에도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 개개인은 모두 소중하니까. 뻔하지만 교훈적이다. 그리고 분명 모든 아이, 모든 어른, 모든 별종에게 말해주고 싶은 메시지이긴 하다.
평범한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 보편적인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비주류가 아닌 것에 은근 우월함을 느끼며 비주류를 매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그 어중간 사이에 우리는 아직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돌연변이라는 말을 툭 내뱉는 것처럼.
최근 지인과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눈에 좀 띄는 어르신을 뵀다. 연세는 지극하신데 긴 웨이브 머리에 물방울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나이와 맞지 않는 외양이라고 우리는 그녀를 지나치며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것 같다. 어르신을 지나치고 동행한 한 엄마가 말한다. "난 늙으면 저러고 싶진 않아." 의상과 머리 모양에서마저 나이와 보편을 재단하는 나와 내 지인의 감수성이 이 정도였음을 고백한다.
이 그림책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가야 할 모습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사랑스럽다고 말만 하지 않는다. 주변에 같이 있는 종들의 웃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무렇지 않게, 누가 별종이고 돌연변이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그들이 정답게 어우러져 있는 그림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글밥을 읽고 나서야 '아, 얘가 이렇다는 거구나.' 하며 뭐가 다른지 그제야 눈에 띌 정도로 다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그들은 모두 웃고 있다. 많이 다른 그 하나마저도 환하게 웃으며 그 사이에서 사랑하고 있다. 다르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세상, 그렇게 된 세상에서 다른 존재도 하늘을 훨훨 날며 그 당연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것에 다른 좋은 이유는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으니 서로가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지 않은가. 인정하고 포용하니 모두가 예뻐졌다.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모두가 사랑스럽다.
"네가 얼마나 예쁜데."
"내가 뭐가 예뻐."
요리 봐도 저리 봐도 너무 예쁜 딸에게 아무리 예쁘다고 말해도 딸은 자기 얼굴은 그리 예쁜 편은 아니라고 한다. 자존감의 문제인 건지 외모는 개인 취향의 문제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딸에게 이 책과 함께 백 번이라도 말해주고 싶다. 넌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 엄마를 한 번 믿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