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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면 곤란한

: 김점선

by 윌버와 샬롯

김점선, 이 분을 처음 알게 된 때는 진정한 백수 시절 때다. 하릴없이 오후 내내 TV를 끼고 살고 있을 때 조영남 씨가 진행하는 어느 인터뷰 프로그램서였다. 어느 날 주인공이 바로 화가 김점선 씨였다.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외모에서부터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인상, 결코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참 후 이분이 쓰신 '나, 김점선'이라는 책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마냥 좋아졌다. 이분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책 끝부분에 나오는 육아 관련 얘기였을 것이다. 읽으면서 '그래, 나도 이분처럼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모르겠어도 한 아이를 키우는 그녀의 옹골찬 모습에서 따뜻한 내면을 보았다.



그녀를 다시난 두 번째는 책 '김점선 스타일 2'에서다. 이 책은 가까운 지인들이 말하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 기획이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어릴 적 상상했던 기획이긴 하다. 마음을 전할 만큼 친하다고 생각되는 친구가 생기면 때때로 카드며 편지 보내길 좋아했다. 그렇게 틈틈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훗날 나를 회고할 책의 재료가 된다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고. 고심하여 고른 예쁜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그 많은 편지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리고 그 친구는 나를 기억이나 할까.


부러웠다. 이렇게 다방면의 사람을 알고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가 말이다. 나도 그녀와 친해져서 그녀 친구들이 받는 것처럼 어떻게 그녀의 그림 한 점 받을 수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노파심이 있다면,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는 그녀가 나를 과연 좋아할까.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만 같다.


너, 너무 재미없어!


한 번쯤은 우연히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 나를 좋아할는지 염려는 되지만 그래도 왠지 푹 어리광을 부리고, 그분이 세상에 던지는 자유를 조금이나마 훔치고 싶었다.


내가 김점선을 극도로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그림을 탁월하게 잘 그려서이기도 하지만 일단 김점선 옆에만 있으면 누구한테나 내가 확연하게 정상인으로 어필되기 때문이다.
- 조영남


이 구절에서 웃고 말았다. 김점선과 함께라면 어떤 이도 정상인으로 보일 거라니. 세상천지 누구나 아는 괴짜 조영남이 이런 말을 했는데 그녀의 독특함에 대해 더 이상 붙일 말이 뭐가 있겠는가.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이야~'하고 감탄했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 집 거실 디에 꼭 걸고 싶은, 김점선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말 그림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그림이 명화가 아닐까. 분명 김점선의 그림은 그렇다.


가수 겸 작곡가 김정식 씨는 그녀에게 노래까지 증정한다. 책에는 악보가 실려있다. 악보만 보고서는 음을 가늠할 수 없어 피아노로 연주해보니 동요 같은 느낌이다.


남자를 찍고 나서는 그 남자의 야성을 일깨워야 해. 그다음엔 남자의 장점을 찾아서 환상적으로 칭찬해줘. 그러면 다 잘 돼. '저 남자를 목숨 걸고 사랑하겠다'라고 결심한 뒤 기를 쓰고 사랑해봐. 너희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야.
- 김점선


기를 쓰고 사랑하란다. 여태 기를 쓰면서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손해이고 이득인지, 상대방이 내게 더 잘해주고 있는지, 그런 것을 여전히 재고 있지는 않은가. 환상적으로 칭찬하고, 기를 쓰고 사랑하기를 또 다짐해본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책에 있는 그림을 보는 동안 그녀도 왠지 주황색을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그녀의 전시회에 꼭 가보고 싶다. 주황색 향연을 맞으러.



아, 알고 보니 그녀와의 이번 만남이 두 번째가 아니었다. 장영희 교수의 영문학 시집에 김점선 씨는 그림을 그렸었다. 정정하면 정확히 그 책이 바로 그녀와 나의 두 번째 만남이다.


그녀 그림을 보기 위해 오늘은 장 어딘가에 있을 오래된 시집을 꺼내야겠다.



김점선은 1983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30년 가까이 매년 개인전을 열었고, 2007년부터 발병한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0여 회의 개인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2009년 암으로 투병 끝에 운명했다.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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