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기억하는 법

: 여름빛

by 윌버와 샬롯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의 사계절 모두를 그 나름으로 사랑하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름답게 뚜렷했던 그 계절들이 모두 소중했다. 단어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예쁜지 어느 부모는 태어난 아이에게 계절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만난 사람 중에 부러웠던 한글 이름이 몇 있다. 그중에 대학 때 조교 선배는 ‘가을’이었다. 그녀는 가을에 태어났을까. 아니면 부모가 그 계절을 좋아했을까. 그녀에 대해 기억하는 거라고는 그 이름뿐이지만 뭐 어떤가. 가을아, 가을아. 선배들이 부르던 그 시어 같은 이름만으로도 그녀는 내게 아련하게 남아 있으니.



계절이란 내게 무엇인가.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는 봄의 연두는 미치도록 설레게 한다. 기운을 쏙 빠지게 쨍쨍한 한낮 여름도 견딜 만하다. 그쯤이야 여름이니 당연하다고, 기껏해야 보름 정도만 불쾌지수를 버티면 되니까. 단풍국 캐나다 부럽지 않은 가을은 또 어떤가. 문밖만 나서도 카메라 셔터가 바쁠 시기다. 겨울이어서 눈이 오는 게 아니라 눈이 오니 겨울이다. 눈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겨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거기다 크리스마스까지. 크리스마스 없는 겨울은 상상할 수 없으니.


계절은 이렇게 각자 개성들이 있기에 어느 하나가 좋다고 말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도 하나만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드는 봄이 좀 더 나로선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저물고 마감하는 건 아무래도 쓸쓸하니까.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봄이라는 계절은 게으른 나를 억지로라도 기운을 차리게 하니까.


꼬릿꼬릿 머리카락 냄새


아, 그러나 우리에게 더 이상 명확한 사계절이라는 게 얼마나 더 존재할 수 있을까. 이미 끝난 것일까. 기후 위기는 벌써 케케묵은 이슈가 되어 버렸다. 그저 사람들은 외치기만 할 뿐이다. 우리는 절벽 아래로 뛰어드는 레밍이 되어가고 있다.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레밍보다도 인간은 얼마나 더 어리석은가. 뻔히 그 끝이 어떨지 알면서도 여전히 달리고만 있으니.


역시나 같이 달리고 있는 이 미련한 한 마리 레밍은 유물이 되어버릴지 모를 지난날의 계절을 애써 기억하려 한다.


5밀리미터 커진 새 운동화
매미들이 노래하는 아침
달달달 뜨겁게 달아오른 트럭


옥상에서 떨어뜨린 빙글빙글 개나리 꽃잎, 고고한 목련으로의 초대, 벚꽃의 눈부심, 여름이 오는 냄새를 맡는다던 친구, 두꺼비의 합창, 소나기로 흠뻑 젖던 여름방학, 손 잡아주던 여름 산행, 눈앞이 핑 돌던 아스팔트 아지랑이, 열대야 잠 못 이루던 신혼집 선풍기, 애타게 짝을 찾는 매미들의 절규, 미역 줍던 아이들의 물놀이와 모래성, 계곡에 발 담그기, 네모로 썰어놓은 수박, 시골 학교 운동장 가족 운동회, 외갓집 모깃불, 풀벌레의 첫인사, 엄마랑 걷던 코스모스 길, 억새랑 사진 찍기, 단풍잎 책갈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눈의 벅참 그리고 첫 발자국, 난로에서 끓고 있는 생강차, 첫눈 오는 날 너와의 약속, 내려올 줄 모르는 난감한 스키장, 밤 산책의 상고대, 눈에 대한 환호와 고요, 빨간 눈썰매 끌어주기.


또 뭐가 있을까. 응답해라. 아름다웠던 계절의 순간들, 그 모든 나의 빛들이여.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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