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담한 마을을 벗어나 저 멀리 있는 언덕 위 외딴집으로 굳이 이사를 가는 걸까. 그림책 겉표지를 넘기면 바로 보이는 면지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왜 떠나는 걸까.
부끄럼이 많아도 너무 많은 브레드 씨는 멀리 이사와 누구의 방문도 거부한 채 빵을 만든다. 밝은 대낮도 불안했는지 그는 모두가 잠든 밤이 되어서야 마음 놓고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데 그는 흠칫 놀란다. 문으로 향한 그의 몸짓이 그림만으로도 불편하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밤에 누가 온 걸까.
숲 속까지 퍼진 브레드 씨가 만든 빵 냄새, 그것으로 그의 집에는 밤마다 각각 사연이 있는 동물들이 문을 두드린다. 부끄럼은 많지만 브레드씨는 빵맛을 보고 싶어 하는 동물들을 내치지는 않는다. 부끄러워 비록 쟁반으로 얼굴을 가리면서까지 빵을 겨우 내밀지만 동물의 사연에 맞게 처방약 같은 빵을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눈 한쪽만 빼꼼 보이던 브레드 씨의 얼굴은 동물의 방문이 이어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점차 얼굴 전체를 보여주게 된다. 표정까지도 한결 편안해지면서.
이제는 환한 낮에도 누구도 빵을 살 수 있게 빵집을 열어 장사를 할 만큼 브레드 씨는 유연해진다.한걸음 더 나아가 이전의 자신과 같은 다른 부끄럼쟁이를 보듬어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별다를 것 없는 그림책으로 생각되었다. 다시 보고 다시 보니 딸이 떠올랐다. 자주 자기 방문을 꼭 닫고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는 딸이 그려졌다. 밤에 외로이 빵을 만들고 있는 브레드씨처럼.
집 밖에서 누가 말이라도 붙이면 긴장하고 머뭇머뭇 목소리가 작아지는 아이, 먼저 다가가는 게 어려워 혼자일 때가 많은 아이, 일부러 저 멀리 언덕 위로 이사 온 브레드 씨처럼 어쩌면 이 아이도 혼자임이 편해 그리 자처하고 있는 걸까.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아이의 활동을 걱정하진 않는다. 어떤 것에 몰입할 수 있는 것도 훌륭하다 생각한다. 다만 관계를 맺는 사회성과 그런 기회 부족으로 나중에 커서도 혹시나 외로운 사람이 될까 하는 걱정은 많이 된다. 사람과의 관계를 겪으며 상처를 받거나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우정의 농도도 느껴봐야 관계와 사회성이 발전하지 않을까.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에게 이런 조바심을 느끼는 건 엄마의 노파심일 뿐일까.살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는 걸 항상 깨우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엄마인 나도 그리 활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대학 다닐 때까지도 혼자인 시간이 더 많았다는 걸.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지만 애써 의미 없는 집단에 속하기는 싫어 혼자임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걸. 그러나 그 이면은 좀 달랐다. 주체적으로 산다 생각했고 남들도 그렇게 나를 인정하고 바라봤지만 실은 좀 많이 외로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은 했지만 그 시절은 참 외로운 때였다.
딸도 그런 건 아닐까. "혼자 있어도 난 재밌어."라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예전의 나처럼 누가 다가와주길 바라면서 외로운 것은 아닐까.
브레드 씨는 단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빵을 구웠을 뿐이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렇다. 다가온 자가 있었다는 게 브레드 씨에게는 행운이다. 아무리 맛있는 빵을 구웠다 하더라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자기 얘기를 털어놓지 않았다면 브레드 씨도 결코 문도 마음도 열지 못했을 것이다.
맛있는 빵을 동물에게 주웠지만 실제로 큰 선물을 받은 것은 도리어 브레드 씨가 아닐까. 관심, 다가옴, 그리고 인정. 그런 과정을 겪은 브레드 씨는 더 이상 부끄럼쟁이가 될 수 없다. 당연히 받은 만큼 본인도 다른 이에게 관심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또 그 방법을 알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딸에게도 브레드 씨처럼 그런 순간이 오게 될까. 아니 분명 올 것이다. 나도 서툴었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이제는 조금 방법을 알게 됐고 나름의 철학과 교훈도 얻지 않았는가. 아직도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를 돌보며 사랑할 줄 알게 됐다. 또한 먼저 다가가고 어울릴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은 변화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우리 딸도, 엄마보다 더 재능이 많은 딸에게도 분명 브레드 씨처럼 자기를 환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부모가 해야 할 것은 오직 기다리는 것, 아이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작년 겨울엔가 너무 따뜻한 광고 한 편을 봤다. 글을 쓰지만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고 꼭꼭 숨기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광고였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에 날려간 여성의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는데 그걸 읽는 사람의 표정이 밝아진다. '자신의 남다름을 선물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는 딸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