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절기를 좋아해
부쩍 바람이 차다.
단풍도 지지 않은 가을의 시작일 뿐임에도 겨울이 금방이라도 성큼 다가올 것 같다.
나는 초겨울에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에는 추위의 한겨울보다 코 끝이 살짝, 손이 살짝 시린 늦가을에서 초겨울의 느낌을 좋아한다.
여름엔 발에 열이 많은데, 가을만 되면 신기하게 수족냉증이 된다. 수족냉증이 원래 계절을 따라가는 질환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그렇게 춥지 않은데 내 발은 너무 시리다. 웃긴 말이지만 차가워진 발을 통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안다.
매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 계절을 정말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계절을 특정할 수 없음에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는 질문 앞에 머뭇거린다.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생각을 항상 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장황하게 계절에 대한 나의 취향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 내용은 보통 다음과 같다.
“나는 유난히 계절이 바뀔 때의 느낌을 무지하게 좋아해.
유난히. 무지하게.
그런 때가 되면 ‘꺄-‘ 표정으로 거의 춤추듯 걸어 다니거든?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발랄하게 뛰어다닐 수는 없으니 발만 땅에서 떨어지지 않은 얕은 뜀박질로 거의 뛰듯 걷는 거야. 아.. 진짜 그 행복감은 말로 하기 어려운데, ’ 충만하다 ‘가 맞을 것 같아.
나 맨날 눈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다니거든. 또 보이는 가장 먼 곳을 내다보면서 피부에 닿는 공기의 감촉을 느껴. 계절을 나의 모든 감각으로 만끽하는 거야.”
이렇게 넘어가는 혹은 시작되는 계절은 다 좋은데, 얼마 전 까지는 그래도 그중에서 우위를 매겨보려 나름 고민도 해봤다. ’나는 봄에서 여름이 더 좋은가. 여름에서 가을이 더 좋은가.'
쓸데없는 생각 같지만, 지난봄 ‘나는 이때가 제일 좋아!' 외쳤음을 알기에, 정직하고 흔들림 없는 '진짜 취향'을 말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순위를 매기는 일은 실패했다.
계절을 비교하려면 가을의 시작까지 봄의 행복감과 만족감을 기억해야 했는데, 그건 느낌만 남아 정확한 비교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맞대어놓고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 대상들 이라니. 그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좋아하는 계절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환절기를 좋아한다.
한 철 내 돌던 공기와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얼마 안 가 온 세상을 물들여버릴 다음 계절을 기대하게 하는 그 짧은 날들을 좋아한다. 어떤 계절이기보다는 감기를 조심해야 할 시기로 많이 쓰이는 단어여도 어쩔 수 없다. 환절기 만이 내 계절취향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단어다.
다음에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나는 환절기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