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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운 Sep 11. 2024

3화. 안 돌아간다고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부엌 구석에 서 있는 배낭을 보며 ‘이걸 잃어버리는 게 아쉽지도 않은가?’ 생각했다. 배낭은 부엌 구석에 서서 눈에 계속 걸렸다. 가끔 식당 일을 도와주는 엄마가 보더니 말했다. 엄마는 당뇨병을 오래 앓아 오래 일을 하면 어지럽고 쓰러지지만 가끔 기운이 날 때는 나와서 나에게 요리법도 가르치고 부엌일을 돕는다.      


“ต้องเอาอันนี้คืนไม่ใช่หรอ? ของของคนอื่น (이거 돌려줘야 하지 않겠니? 남의 물건인데)”    

 

그런가? 싸가지 없는 한국 남자지만 그래도 배낭을 돌려줘야 하는지 물었고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너무 착한 게 문제다. 내 나이 열 살 때 아버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억척스럽게 우리 4 형제를 키웠지만 너무 착해서 손해 본 일도 많다.      


“ต้องคืนยังไงอ่ะ? ฉันไม่รู้ชื่อเธอ เบอร์โทรศัพท์เธอ แต่... (어떻게 돌려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하다가 문득 방법이 생각났다. 한국 대사관에 맡기면 된다. 방콕에 있다.    

  

“โดนสถานทูตเกาหลีในกรุงเทพฯ ต่อได้เลย. (방콕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맡기면 되겠다.)”     


내가 말하자 엄마는 하루 방콕 다녀오라고 여동생과 하루 식당을 지키겠다고 했다. 걸핏하면 식당은 나에게 맡겨 두고 놀러 다니는 여동생이 못 미더웠지만 나도 이 참에 슬쩍 방콕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물세 살이 되도록 한번 가보지 못한 곳이다. 가 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하루 식당을 부탁했다.    

 


석훈     


파타야 병원에서 원숭이에게 긁힌 다리를 소독만 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왔다. 시골 병원을 믿을 수 없다. 바로 방콕 큰 병원에 들어가 열바늘을 꿰매자 안심이 되었다. 예약한 거보다 하루 일찍 샹그릴라 호텔로 갔지만 다행히 방이 남아 있었다.     


호텔에서 체크인하다가 배낭을 농카이 시골 식당에 두고 온 걸 깨달았다. 배낭 안에 노트북이 있지만 하지만 뭐 중요하지는 않다. 보안이 필요한 자료는 그 안에 없고 그 외는 다 백업해 둔 거라 다시 다운로드하면 된다. 나머지는 다 태국 시골을 돌아다니며 세탁을 하지 못해 쑤셔둔 옷가지뿐이라 차라리 버리고 싶은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원숭이가 득실거리는 파타야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자존심만 센 태국 여자도 보고 싶지 않고 말이다.     


핸드폰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사실 소중한 자료는 모두 여기 있어서 원숭이가 부숴 버렸으면 어떡했을까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졌었다. 호텔 방에서 정신이 돌아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얼마 전 그만둔 회사 인사 팀장이 여러 번 전화도 하고 문자도 들어와 있었다. 방콕에 어제 도착했다면 한 번만 얼굴을 보자는 내용이었다.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안 볼 수는 없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인사팀장은 전형적인 금발에 푸른 눈이다. 하기 그 회사에서 이 혈통이 아니면 그 부서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      


“We are going to make your annual salary twice. Please come back! (연봉을 2 배 올려 줄 테니 돌아오세요.)”     


연봉 2배?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건 내 자존심과 몸값의 레벨이다. 내 연봉은 내가 생각해도 실리콘 밸리 소프트웨어 개발자로는 높은 편이다. 결혼도 안 해서 그다지 돈 쓸 일도 없다. 월급을 거의 그대로 통장에 쌓이고 있다. 그런데 또 2배로 올려 준다고? 돈 쓸 일은 없지만 쓸모는 다른 데 있다. 몸값이 2 배로 올라간단 건 자존심이 2 배로 올라가는 일이다. 개발 스튜디오 안에서 동료들은 서로 모른 체하지만 커피를 마시면서는 연봉 얘기를 하며 실력과 몸값을 체크한다.   

  

내 표정이 좋아진 걸 인사 팀장은 바로 눈치챘나 보다. 마음에 드느냐고 묻더니 주섬주섬 태블릿을 꺼냈다. 아마 재계약서를 열려는 거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아직 말하지 않았다.      


“What is going on Tom? (톰은 어떻게 됐는데요?)”     


가방에서 아이 패드를 꺼내던 인사 팀장이 손을 멈추더니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He was promoted to development team manager. (이번에 개발 팀장이 됐어요.)”     


순간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씨발, 뭐라고?”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미국에서 5살 때부터 살았지만 아직도 화가 날 때는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개새끼! How did it happen fucking to him (그 새끼가 어떻게 팀장이 됐어요?)”     


인사 팀장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머뭇거렸다.     


“It happened.... (그게)”     


톰은 나와 개발 스튜디오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였다. 여기 있는 인사 팀장처럼 금발에 푸른 눈, 전형적인 코카시언 (유럽계 백인)이다. 같은 개발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나는 진작에 그가 편법을 많이 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 실력은 없으면서 어떻게든 남의 성과를 가로채는 기술 말이다. 다만 내가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우리 스튜디오는 대형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개발 관리하고 있는데 나는 이틀 밤을 새워 상품 추천 알고리즘에 새로운 기능을 업그레이드했다. 내가 업데이트를 내부 개발자 네트워크에 올리려고  접속했을 때 톰의 이름으로 업데이트가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가슴에서 열불이 솟았다. 1시간 전, 톰이 내 자리로 와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을 걸었던 게 생각났다.     


“Oh! You finished the upgrade the new tech. Are you genius? (오! 너 새 기술 업그레이드 했네. 자기 천잰대?)”


“What a genius... I stood up two night! (천재긴 무슨... 이틀 밤이나 샜다구.)”     


나는 평소 그의 성격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고친 코딩을 가렸지만 같은 일을 하는 톰이 못 알아봤을 리는 없다. 내가 내부 네트워크에 올리기 전 코딩의 세부 사항을 점검하는 그 사이 톰이 먼저 자기 이름으로 올린 거다. 개새끼!     


나는 바로 개발 팀장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사무실 문을 열자 개발 팀장과 함께 톰이 있었다. 얼굴이 환했다. 개발 팀장이 톰을 칭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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