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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Mar 29. 2019

들에서 산으로. 바뀌어가는 봄의 식탁.

3월 마지막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식탁

 춘분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쌀쌀하지만 겨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한 계절. 식탁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들과 밭에서 나는 것들을 열심히 먹은 2,3월이었다. 냉이, 쑥, 달래...들과 밭에서 뽑아먹을 만큼 뽑아 냈으니 이제는 산으로도 시선을 옮겨본다. 취나물, 두릅, 뽕순...산나물이 하나 둘씩 보인다. 

 장을 보러가니 눈개승마와 취나물이 등장했다. 눈개승마는 삼나물이라고도 불리며 말려먹어도 맛있고 삶아먹어도 맛있는 별미. 우선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삶아낸 뒤 깨소스에 버무려 본다. 아마도 올해 내 식탁에서는 마지막이 될듯한 냉이로는 된장국을 끓였다. 떠나는 재료와 새로이 찾아온 재료가 공존하는 식탁. 계절의 흐름이 느껴진다. 남은 눈개승마는 또다른 된장국이 되고 반찬으로는 또다른 산나물, 취나물이 올라온다.

 아직 조금 이른 두릅.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집어왔다. 씁쓸한 두릅은 새콤달콤한 딸기와 함께 마리네이드 해본다. 조선간장 등, 우리 먹거리로 만드는 마리네이드이지만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와인이 어울릴 것 같다.

 데치고 냉수마찰을 시키며 두릅 특유의 쌉쌀한 맛을 날려버리는 것 만큼 두릅에게 미안한 일이 있을까. 특유의 향을 갖고 이제 갓 초록 빛을 보여준 아이를 나무에서 뎅겅 잘라낸 데 모자라 뜨거운물에 담궜다 찬물에 담궜다 오락가락 하다니… 마크로비오틱에 기반해 조리하면 본연의 성질을 살려내면서도 산나물의 맛과 향을 만끽하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이번에는 두릅을 사용해 블루베리와 함께 키쉬를 만들어 보았다. 통밀가루의 향도 은은하며 블루베리와 두릅이 베이스 필링과 무척 잘어울린다. 하지만 여름이 아닌 이상 밥을 가루류로 만든 분식으로 때우는 것은 마크로비오틱 섭생에서는 권장하지 않으니 이 메뉴는 내 식탁에서 자주 등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가끔 기분전환용으로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다.

 된장, 막장 담기에 이어 또 한번 발효식품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어 또다른 천연조미료에 손을 대보았다. 이번에는 누룩장. 이른바 누룩소금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다. 된장만큼은 아니지만 누룩장 역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발효를 시키는데 적어도 3주는 걸린다. 그저 실온에 놓아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하루에 두번은 공기와 마찰되도록 잘 저어주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좋은 아침’ 하고 인사를 나누고 자기전에 ‘잘자’ 하고 또 한번 인사를 나누고. 이 인사를 나누다 보면 얼마 뒤에는 프레쉬한 누룩장을 만나겠지. 그리고 상온에서 보관하면 녹진한 장이 되어있을 것. 워크숍에서는 가람마살라를 넣은 누룩장에서 시작해 누룩장으로 절여 만든 김치도 맛볼수 있었다. 내 요리에서는 어떤 역할을 해줄지. 벌써 부터 여러 레시피를 생각해보며 설레고 있다.

 토종씨앗에 대한 호기심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번 대관도에 이어 이번에는 북흑조를 개봉해 간단한 반찬을 곁들였다. 대관도 만큼은 아니지만 달다. 구수한 향도 일품. 향과 달콤한 맛으로 보아, 최강 맛있는 누룽지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한달쯤 되었으려나. 동네 정미소에서 흰 팥을 사왔다. 지나칠 정도로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편이지만, 동네 정미소는 지혜로운 충동구매를 하기에 좋은 곳. 이 곳의 식재료들은 쌀마저도 소량씩 판매한다 (한봉투에 400그람). 그 양도 많지 않으며 마른 것들이라 보관기간도 길다. 게다가 이곳이 아니면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토종곡물을 다루고 있으니 이런 조건이라면 칼같은 나도 충동구매를 한다. 게다가 흰색 팥이라니. 이건 사고 보아야한다. 이 팥으로 밥을 지으면 어떠려나. 흰 팥이니 백앙금을 만들수도 있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우선 밥을 지어보았다.

 흰팥으로 지은 팥밥 개봉. 이런 색이라면 백앙금을 만들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맛은 일품. 중국산 팥 먹던 사람이 먹으면 팥의 새로운 세계에 눈뜰 것. 팥조림 등 다른 메뉴에도 어울리겠지만 우선 현미와 함께 밥을 지어보기를 권한다. 밥도 달고 팥도 달다. 감미료를 입혀 차와 물을 찾게 하는 끈질긴 단맛이 아닌, 곡물 본연의 단 맛이란 이런 것. 초딩입맛들이 맛보았으면 한다. 이렇게 개성있는 재료들을 먹으니 음미하기 위해서도 천천히 꼭꼭 씹어먹게 된다.


 나의 마크로비오틱 수업에서는 식재료의 선정, 조리법 못지 않게 꼭꼭 씹어먹기를 권하는데, 이런 나의 제안에 


‘좀처럼 꼭꼭 씹어먹게 되지 않아요.’ 

‘정신 차려보니 순식간에 식사가 끝나있어요.’ 


이런 목소리도 종종 듣는다. 이처럼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면서도 좀처럼 꼭꼭 씹어먹는 습관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토종곡물 테이스팅을 권해보고 싶다. 

 식탁에서 봄을 만끽하다 보니 또 일본에 수업을 들으러 가야할 날이 다가왔다. 비싸고 먹을 것 없는 공항에 가는 날. 내가 먹을 것은 알아서 챙겨야 한다. 흰팥밥과 다시마 표고조림으로 간단하게 주먹밥을 만들어 챙겨왔다. 공항에서 주섬주섬 도시락통을 여는 여자가 있어도 수상해하지 말라. 그저 알아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 중의 한명일 뿐이니.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조각글과 팝업식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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