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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18. 2018

도쿄에서 한국식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가르치다 5화

내 몸이 즐거워 하는 맛. 마크로비오틱 요리의 맛.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는 과연 내가 일본에서 한국식 마크로비오틱을 가르칠 수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는데, 정신이 들어보니 눈 앞에 다가온 네번째 수업.


 네번째 수업의 수강생은 나의 예전직장동료 언니들. 신입사원시절부터 나를 보아온 대선배들이다. 신입사원은 커녕 젊은 사원이 이동해 온 적도 없던 부서에 배정받은 나를 키워주고 보살펴 준 은인들. 부서 이동후에도 우리는 종종 식사를 하러 가거나 휴일에 우리집에 놀러올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도쿄에서의 클래스 기획과정은 이곳에)

 여느 수업과 다름없이 먼저 가진 이론 수업. 우선 수강생들에게 마크로비오틱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 중, 충격적이었던 대답이 돌아왔다.


 ‘마크로비오틱은 맛없다는 인상이 있어.

 몇년 전에 마크로비오틱이 유행하면서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 안에도 마크로비오틱 레스토랑이 생겼거든. 이세탄 백화점 안에 생겼다면 괜찮겠다 싶어서 가봤는데, 난 영 마음에 안들었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음식점이 맛이 없었다기보다는 현미밥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 하지만 이세탄 백화점 안에 있는 레스토랑인데도 맛이 없으면, 다른 곳도 맛이 없을 것 같아서, 그 이후로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어.’


 마크로비오틱이 맛없다니.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내 조금은 수긍할 수 있었다. 


 굳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자면,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 백미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코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국민적인 인기를 끄는 브랜드쌀을 개발해 올 만큼, 맛있는 백미에 대한 상당한 고집이 있다. 흰 밥에 어울리는 반찬에 대한 고집도 상당하다. 이러니 우선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현미밥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현미밥을 챙겨간 나의 도시락을 보고는, 현미밥이나 잡곡밥은 맛이 없어서 자기는 못 먹는다던 직장 상사도 있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직장근처 백반집, 때로는 편의점 도시락에서 조차 잡곡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국에 와 본적이 있는 외국인 지인들도, 한국 밥은 ‘purple rice’ 였다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의 잡곡밥 사정에 익숙했던 터라, 오랜만에 도쿄에 돌아오고, 정식집에서 새하얀 밥이 나왔을 때는, 내심 아차 싶기도 했다. 


 이렇게 같은 쌀을 먹는 문화권이어도 일본에서 백미의 인기는 엄청나다. 이렇게 마크로비오틱은 맛없다는 인상이 있다, 현미밥이 어색하다는 적나라한 의견을 듣고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리마에서 배운 현미밥에는 자신이 있다. 리마에서 배운대로 잘 지은 현미밥은 알맹이가 수분을 머금고 부드럽게 익어, 껍질이 톡 터져있다. 소화가 어렵다는 인상이 무색할 정도로 부드럽고, 잘 씹으면 곡식 특유의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예전에는 일을 하다가, 또는 책을 읽으며 달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현미밥을 꼭꼭 씹어먹는 생활을 한 이후로, 달콤한 음식을 찾지 않는다. 이렇게 맛있게 지은 현미밥과 그 동안 호평을 얻어낸 메뉴들을 믿고 나는 다시 수업에 임했다.

제대로 지은 현미밥은 알맹이가 부드럽게 수분을 머금어 껍질이 톡 터져 있다.

 이론 수업을 하며, 수강생들은 나에게 마크로비오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이번 수업의 수강생들은 평소 맛집과 술, 디저트류 등 맛있는 음식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고, 종종 이런 맛집 도장 깨기를 하는 맛집 원정대이다. 이런 맛집 원정대 답게, 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디저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맛과 기분을 위해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언제나처럼 마크로비오틱에는 ‘절대’ 안된다는 것은 없다는 설명을 반복했다. 다만, 습관적으로 음식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했다. 어떤 음식이든, 몸이 필요로 한다면 적당량을 취하고,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굳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습관적으로 음식에 의존할 때 부터이다. 술, 설탕처럼 중독성이 있는 것들이 특히 주의해야할 것 들이다. (주당들 답게 와인을 챙겨와 다들 뜨끔했다.)


 이런 나의 설명에 수강생들은 그러고보니 디저트류를 회사 서랍에 넣어두고 굳이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도 습관적으로 야금야금 꺼내 먹곤 했다며 평소의 식생활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크로비오틱에는 ‘절대’ 먹어서는 안될 것들이 많아 보여 시도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조금씩 일상에 들여와 보고 싶다는 기쁜 의견 또한 있었다.


 이론 수업을 마친 뒤 쿠킹 클래스 답게 실습 시간을 가졌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시연없이 수강생들이 칼을 쥐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 나갔다. 내가 중간중간 설명을 덧붙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직접 밑작업을 하고 직접 맛보며 간을 한 요리는 수강생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수가 없다. 역시나 이 날 만든 현미밥과 나물, 메밀전은 대호평이었다. 외국인에게는 호불호가 나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한국에서 챙겨온 한국 된장 또한 늘 인기였다. 도쿄에서 살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수강생마저 있었다.

내 지도에 따라 수강생이 직접 불 앞에서 요리를 한다.
서투를 수 있어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나만의 마크로비오틱 비빔밥과 메밀전을 만들어본다. 

 수업을 마친 뒤 잠시 가진 티타임.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며, 수강생들은 오늘의 소감을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수업 초반, 마크로비오틱은 맛이 없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는 수강생에게 정말 맛있는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먹었다는 감사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한국음식을 마크로비오틱 스타일로 먹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며 이 기회에 마크로비오틱 스페인요리, 마크로비오틱 프렌치 등 여러 장르의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까지 있어 나를 잠시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이번 수업 역시, 수업의 목표는 수강생들이 마크로비오틱에 흥미를 갖게끔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크로비오틱에 흥미를 가져준 것은 물론, 마크로비오틱은 맛이 없다는 부정적인 인상에서 마크로비오틱은 맛있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돌아가 준 수강생들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마크로비오틱 요리는 건강을 위해 맛없고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자신의 몸이 원하는 재료를 써서 몸이 원하는 맛으로 간을 맞춘다. 또한 불필요한 조미료로 재료 본연의 맛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수 조미료만으로 제철 재료가 가진 본연의 풍성한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마크로비오틱. 자연의 에너지를 한껏 안은 재료들을 사용해 본인에게 맞는 조리를 하기에, 분명 본인에게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이번 수업에서는 한국에서도 ‘맛있는’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즐겁게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날 수 있게끔 돕는 것이 내게 또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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