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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23. 2018

도쿄에서 한국식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가르치다 6화

남자들과 요리 그리고 마크로비오틱

 고등학생 시절, 일본에는 우리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가 있었다. 고등학교로는 드물게, 매년 한달씩 이 일본의 학생 한두명이 한국의 우리학교를 다니고, 반대로 우리학교 학생도 한두명 정도 일본의 학교에 다녀오는 교환학생 제도가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 유학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 제도를 이용해 일본에서 한달정도 교환학생을 할수 있었다. 일본어도 늘고, 일본의 학교도 경험하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지만, 단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문제이지만, 그 학교는 전교생이 남학생인 남고였다는 것…


 트렌디 드라마나 순정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설정이지만, 그 어떤 로맨스도 없이, 친구들과 노래방도 가고, 때로는 남학생들을 쫓아 축구공을 차고 놀다가 엎어져가며 돈독한 친구관계가 되었다. 이 때에만 해도 이 친구들과 설마 10년 뒤에도 연락을 하며 지낼줄은 몰랐다. 


 교토로 유학을 오고, 도쿄에서 직장생활까지 하며, 이 친구들과는 세달에 한번은 만날 정도로 부쩍 친하게 지냈다. 주로 잘되가나 싶더니 여우 같은 여자한테 걸려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그렇게 늘 차이며 사나 싶던 친구도, 결혼을 해 아내를 데리고 한국에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정든 친구들이 나의 마크로비오틱 한국요리 수업에 찾아와 줬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친구들인데도, 가방에 앞치마와 수건으로 돌돌 싼 칼을 챙겨와 준것. 여자한테 차이며 살던 때를 기억도 못하는지 각자 아내, 여자친구까지 데리고 와줬다.

 내심 이 날의 수업은 조금은 긴장되는 수업이었다. 

 요리와 전혀 무관한 남자들이 수강생으로 왔다는 점이 첫번째 이유였다. 요리를 못해서 다칠까봐, 혹은 좀처럼 실습이 진행이 안될까봐 보다도, 요리와 건강관리를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을까봐서가 걱정이었다. 두 친구들 모두 남중, 남고를 나와 공대와 의대에 진학해 남자들의 사회에만 있어온 친구들이었다. 결혼여부를 떠나서 이 친구들이 요리와 건강관리는 아내 혹은 여자친구가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지가 걱정됐다.

 두번째 이유는 이날의 수강생 중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채식에 대해서 의사들도 저마다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의 입장에서 마크로비오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은 걱정되기도 했다. 


 이런 걱정을 안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의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눈이 점이 된 상태로 물었다.


 ‘그런데 애시당초, 마크로비오틱이 뭐야? 난 들어본적도 없어.’ 


 당연했다. 일본에서는 여자들 사이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의 인지도가 꽤나 높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무척 낮다. ‘마크로비오틱’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데서 부터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답한 내용은 이 곳을 참고)

 친구들은 나의 설명에 이자카야에서 함께 모츠니코미(곱창조림과 같은 음식)를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 채식을 하냐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하고, 친구들에게 평소 식생활에서 건강을 신경써서 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런 나의 질문에 친구들은 하고 있을리가 있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런 대답에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뭐 해주는 건 없고?’


 그러자 예상외의, 하지만 기쁜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가 왜 날 챙겨줘. 자기 몸 챙길 시간도 없는 것 같던데.’

 ‘그리고 아무리 주변에서 챙겨줘 봤자, 본인이 건강해지고 싶은 의지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만 봐도 그래. 정말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과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이 나뉘어지지. 그러니 잔소리해도 소용도 없고,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것 같아.’ 


 ‘난 지금 딱히 병이 있거나 신경쓰이는 질환이 있는 건 아닌데, 이제부터 슬슬 신경써야 겠다는 마음은 들어. 요즘은 술마시고 일어나면 몸이 예전같지가 않아서 위기감이 들더라고. 나이 먹어서도 배 안나고 아침에 런닝하는 아저씨들 보면 멋져보이기도 하고.’ 


 행여나 아내가 밥을 해줘야 하는데 안해준다는 것과 같은 발언은 하지 않아, 나는 몹시 안심했다. 또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다소 거리가 있을 것 같던 나의 친구들마저도 예전과는 다른 인식을 가져 가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주말에 누군가가 챙겨주는 밥을 먹으며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남편의 모습은 더 이상 편견에 불과하다. 평생 주방 앞에는 설 일이 없을 것 같던 나의 친구들도, 조리 실습 중에도 나름의 요리 철학, 건강 철학을 논하며, 적극적이게 실습에 참여 했다. 재료를 일본에서 구하기 쉬우니 김밥도 좋겠다며 현미밥으로 김밥을 가르쳐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조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함께 밤낮 가리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던 나의 친구들이 아내와 여자친구까지 데려와, 건강한 식생활에 관심을 보이며 요리를 하니, 나도 모르게 엄마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 한점 없이 100%비건인 마크로비오틱 식탁에 만족스러워 할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함께 만든 비빔밥과 메밀전에도 무척 만족스러워 했다. 맛있는데다가 몸에 좋기까지 하니, 많이 먹어도 마음이 놓인다며 반찬과 현미밥을 리필해 먹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한달동안 홈스테이를 해본 경험이 있는 만큼, 비빔밥에 김을 듬뿍 얹으면 맛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수업과 식사를 마친뒤, 함께 차를 마시며, 내심 반응이 신경쓰이던 의사친구가 입을 뗐다.


 ‘세상에는 온갖 건강정보가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잖아. 그래서 나는 유행하는 건강식을 안 좋게 보는 편이야. 그린스무디네, 해독주스네 이런것들도. 미국사람들이 그린스무디 만들어 먹을때 생 시금치를 갈아 넣는다고 해서, 일본에서 일본시금치로 매일 그린스무디를 만들어 먹는게 모두에게 맞는건 아니잖아. 그런데,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네가 공부하는건 자기 체질에 대해 알아보는 점이 좋은 것 같아. 환자들 중에는 워낙에 자기 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보니, 환자들이 공부해보면 조금 더 자신의 몸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도 될 것같아. 물론, 병원이랑도 상의해보면서.’


 이렇게 건강, 요리와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남자들과의 수업도 끝났다. 10여년전 친구들의 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시절, 일본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한국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행사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여학생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내가 요리를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요리를 할 줄 몰랐다. 때문에, 젊은 여선생님이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확인하며 요리를 해주는 해프닝이 있던 행사로 기억된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 이제서야 내가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그것도 마크로비오틱 버전으로 알려주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일본에서 직장까지 다니며 10년을 살줄도, 그리고 요리 선생님이 될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혹시 아나, 10년 뒤, 오늘의 나의 남자 수강생들이 나와 함께 마크로비오틱 김치를 담그고 있을지.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내가 요리를 가르칠줄은 몰랐다며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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