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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Oct 26. 2018

도쿄에서 한국식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가르치다 7화

설탕중독, 워커홀릭이던 그녀의 변화

 밤낮으로 함께 일하고, 때로는 눈물을 쏙 빼게 혼도 나면서도, 지겹지도 않은지 일주일에 몇번이고 직장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신기한 생활. 나의 첫 직장은, 일본안에서도 특이한 조직문화로 유명했다. 직장 동료와 술자리가 많은 회사 Top10 중 서너 회사가 우리 회사의 그룹 회사일 정도. 심지어 반강제적인 회식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이런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주말에도 서로의 집에서 홈파티를 할 정도로 우리 회사 사람들은 서로 무척 친하게 지냈다.


 나에게도 친한 직장동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예전 상사, 키요무라 상과는 같이 일한 기간은 1년정도였지만, 비교할수 없이 진하디 진한 1년을 보냈다. 전략팀이었다보니 야근이 잦아 같이 보내는 시간도 많았지만, 입사 1년차, 2년차 였던 나에게 많은 기회와 깨달음을 주신 분이었기에 함께한 시간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입사 2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키요무라상과 일하며 나는,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데에서 나아가, 내가 하는 일이 업계와 시장을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생각하며 일할 수 있었다. 


 키요무라상은 삶을 일에 바친것 같이 보여질 때가 있을 정도로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었다. 부서가 내어 놓아야 할 성과는 물론, 팀원들의 성장에도 아낌없이 본인의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덕분에 나를 포함해 키요무라 상의 부하 직원들은 빠른 시간안에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다만, 키요무라상은 무척 걱정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키요무라상은 점심시간에도 자리에서 단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주로 초콜릿으로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에, 회식 자리가 아니면 키요무라상이 젓가락을 쓰는 모습을 보는 일이 드물 정도였다. 한편 술도 좋아하고 발도 넓어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는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스트레스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다만, 스트레스는 없더라도 무척 걱정되는 식생활이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그녀를 위해 초콜릿과 리큐르 테이스팅 코스를 예약할 정도.

 그런 키요무라 상을 나의 수업에 초대했다. 집에 조리도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요리를 하지 않는 키요무라 상이지만, ‘나 포함해서 둘이 갈게’ 라는 답변과 함께, 선뜻 나의 초대에 응해주었다.


 수업 당일, 키요무라상이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줍은 표정의 키요무라상과 한 남자분이 함께 서 있었다. 나의 상사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상견례(?)를 겸한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수업은 설탕중독인데다가 몸이 과하게 음으로 치우쳐진 키요무라상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수업이었다. 때문에, 항상 준비한 커리큘럼에 키요무라상이 단 음식에 손이 가는 이유와 이에 대한 단계적인 해결책에 대해 조언하는 시간을 덧붙였다. 


(도쿄에서의 클래스 기획과정은 이곳에)

 키요무라상이 단 음식에 손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키요무라 상은 줄곧 전략팀의 매니저를 해왔다. 일의 특징상 가만히 앉아있는 것 처럼 보여도 동시에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를 이해하면서도 본인이 원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 쉴 새 없이 머리를 쓰고, 때론 성격이 180도로 바뀔 정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일을 하면서 몸이 양으로 치우치고, 몸에 음의 요소를 더해 줄 휴식을 거의 취하지 않기에, 극도의 음의 성질을 갖는 단 음식에 손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나의 설명에 바로 키요무라 상은 내게 물었다.


 그럼 난 뭘 먹으면 될까?


 이런 키요무라 상의 질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금은 일에서 느슨해지세요. 키요무라상은 그러셔도 돼요


 내가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은 식생활이 아니었다. 그녀가 끊임없이 단 것을 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로비오틱에서 건강을 위한 해결책은 식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결하고 싶은 질환이 있을 때, 함께 대화하며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내고, 그 뒤  해결하기 위한 수단의 한가지로 식생활 개선을 들 수 있을뿐, 식생활 만이 답인 것은 아니다. 이런 나의 조언에 키요무라상의 남자친구도 그것 보라며 잔소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워커홀릭이 건강해지겠다고 일을 손에서 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키요무라 상의 경우, 이미 설탕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식생활 개선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키요무라상에게 나는 일에서 느슨해지기 어렵다면, 인요가나 반신욕 등 몸에 음의 요소를 더해줄 활동을 취미로 갖는 것을 제안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요가를 다니는 것도 좋은 데이트가 될 것이다.


 식생활에 있어서 가장 강조한 것은 하루 한끼 정도는 밥에 국과 채소반찬을 곁들인 평범한 밥을 먹으라는 점이었다. 키요무라상의 경우 거의 세끼를 초콜릿으로 때우고 있으니, 하루 한끼라도 제대로 식사를 하면 이미 30%이상 식생활이 개선된것이나 다름없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상사이기에, 그녀의 식생활에 조언하고 싶은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키요무라상이 하루 아침에 설탕을 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세끼 밥을 챙겨먹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키요무라 상이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기 어려운 생활이라고 느끼고, 손도 대보지 않은 상태로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작은것부터 실천하며 몸의 변화를 느끼기를 원했다. 마크로비오틱은 어렵고 막연한 것이 아니다. 절대 지켜야할 규칙이 없는 만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그리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조금씩 실천하며 지속가능한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나의 마크로비오틱과 당신의 마크로비오틱은 다를 수 있고, 당신의 마크로비오틱 또한 그의 마크로비오틱과 다를 수 있다.


 이론 수업에 이어, 실습 또한 키요무라 상을 위한 메뉴로 준비했다. 우선, 설탕없이도 채소만으로 달콤한 맛을 이끌어 낼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준비한 마크로비오틱 잡채와 참깨캐럿라페를 준비했다. 그리고, 설탕 대신 몸에 음에 기운을 더해줄 여름채소들을 사용한 나물을 함께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키요무라상은 야채를 사봤자, 못쓰고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야채보다 보관이 쉬우면서도 음의 성질을 갖는 재료인 두부를 사용해 한국식 두부조림을 준비해뒀다.

키요무라상과 남자친구분이 함께 만든 이 날의 요리

 조리 실습을 하며 남자친구와 채소를 손질하는 키요무라상의 모습은 내게 무척 새로웠다. 늘 나와 선배들을 이끌어 주고 방패가 되어 주던 그녀가, 서투른 요리에 대해 남자친구에게 묻기도 하고, 도와달라고 칭얼대기도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안심했다. 일에만 몰두하던 나의 상사가, 주말에 일을 하지 않고 남자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던 나의 상사. 그랬던 그녀가 남자친구를 만나며 예전보다 조금은 진정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수업에 오기전까지, 그녀는 여전히 초콜릿으로 식사를 때우며 지냈겠지만, 그녀가 예전보다 조금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나는 무척 안심했다. 요리를 주축으로 마크로비오틱을 공부하고 있지만,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 식생활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나이기에, 이런 키요무라상의 변화는 내게 더욱 크게 와 닿았다.그녀가 열정을 갖고 키워온 멤버인 나는, 그녀를 존경해 마다 않는다. 그녀는 지금까지 충분히 노력해 왔다. 이제서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늘려나가는 그녀를 나는 더더욱 응원하고 싶다.

 오늘 배운 내용은 남자친구와 함께 실천해보고 그 결과도 피드백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키요무라상과 남자친구 분과의 수업이 끝났다.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내며 현관문이 닫히고, 이틀 동안 12시간의 수업을 진행한 강행군도 마감됐다. 그래도 이 순간 나는 행복했다. 마크로비오틱의 본고장 일본에서 마크로비오틱 한국음식을, 수강생의 시선에 맞춰서 해냈다. 그리고, 무척 공부가 되었다고, 더 배우고 싶다고, 그리고 맛있었다는 수강생들의 소감.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느끼기 어려웠던 리얼한 피드백에 나는 순수하게 가슴이 두근댔다. 그렇게 워커홀릭인 상사를 바꾸기 위한 수업을 했지만, 정작 워커홀릭이던 내가 바뀌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혼자 맥주와 와인을 번갈아 마시며 혼자만의 뒷풀이를 즐기고 잠들었다.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마크로비오틱 푸드 레시피와 조각글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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