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아니 오랫 동안
난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남들이 단번에 합격하는 운전 면허 시험도
원서 용지를 바꿔서야 간신히 통과했다.
학교에서의 시험도 자신 없었고,
학원에서 스터디하는 간단한 쪽지 시험도
나는 가급적 회피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로 시험은 내게 트라우마와 같았다.
어느 해 여름,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신기하였다.
성경의 지명들이 도로 표지판에 있었다.
성경 속으로 걸어 들어와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을 여행하며 많은 만남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오래동안 미뤄두었던
해야만 하지만 피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나 자신과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성지순례에서의 성과였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늘 분주하게 움직였던 내게 공부는 힘겨웠다.
책상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내 몸은 학습을 거부했고,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공부는 커녕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만 더 깊어 갔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처음으로 시험에 응시했다.
예상대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낙방으로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다시 또 시작했다.
이번에는 눈이 거부했다.
책의 글씨가 너무 작게 보였다.
눈을 작게 떠서 보려고 애쓰고, 시야는 흐렸으며 눈물이 났다.
많은 약을 복용하면서 그래도 공부했다.
그 해 겨울, 또 다시 시험에 응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또 시작했다.
조금 더 나 자신과 의기투합해서,
스스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며 다시 시작했다.
공부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재정이 투입되었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매일매일 도서관에서 거의 살았다.
그렇게 했는데, 또 떨어졌다.
합격자 발표가 나고,
정말 죽고 싶었다.
사람들이 내게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약속을 꼭 지켜야하나?
성지순례는 괜히 다녀와서 왜 힘들어할까?
끊임없는 자책 속에 나 자신을 학대했다.
며칠 후,
나는 고아원에 가야했다.
가고 싶지 않았는데, 맡은 순서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이 가야했다.
날씨는 정말 추웠고, 폭설이 내렸다.
꼭대기에 있는 고아원까지 걸어 가면서 계속 원망했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추운 날씨에 제대로 난방도 되지 않았지만,
신나게 노래하며 그 시간에 집중했다.
내 순서가 되었다.
무표정한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난 주 너무 힘들었다고 서두를 꺼냈다.
오래 준비한 시험어 떨어져서
마음도 생각도 아팠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이야기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가슴을 치며 울었다고 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작은 아이들은 눈빛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아이들.
그 어린 것들의 공허한 눈빛이
그 아픔을 알고 있다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눈물을 삼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더 이상 울지않고, 다시 시작하겠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 이맘 때 웃으면서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눈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마음을 다시 붙잡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원하던 학교에 드디어 합격했다.
약속대로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고아원을 찾아갔다.
아이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의 순서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아이들은 나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그래 잘했다...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그런 눈빛을 기대했었는데...
그들은 그냥 또래 아이들이었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쩌랴?
생각하면
내가 진짜 제일 잘 하는 것은
미련하지만,
힘들고 외롭지만
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면서
나 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더 잘 한다.
난 쫌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