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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Mar 06. 2020

[삼삼한] 해물 뚝배기


눈을 번쩍 떴다. 놀래서 잠을 깼다기보다 해물뚝배기 국물이 너무 생각나서였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차 시동을 걸었다.


김포 방향 88 도로를 타고 가던 중 문득 핸들을 이대로 놓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내 오른쪽에서 나를 쫓아온 한강 물줄기가 물기둥을 만들어 나를 구해줄 것 같았다. 그래 볼까. 문득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남은 한 손을 놓고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싶을 때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팠구나 헛것에 홀린 걸 보면 하고는 핸들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맛있게 해물뚝배기 먹고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도 고쳐 먹었다.


도대체 이 집 해물뚝배기 국물이 왜 생각났을까. 그 누구의 표현처럼 첫 숟가락에 뜬 국물 맛에서 바다라도 본 것일까. 전복 맛이 일품이라서, 홍합이 싱싱해서 이 생각 저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네 번째 뜬 국물을 맛 본 뒤로는 잡생각이 사라졌다. 그 뒤로 한 국물 뜰 때마다 감탄 감탄이다. 해물뚝배기 본질은 바로 이 맛이 이야 탄성이 절로 난다. 오로지 해물 고유의 맛을 느끼는 일 말고 다른 어떤 잡생각이 침투하지 못하게끔 원천 봉쇄하는 이 성실함이 정말 끝내준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겠다는 질본의 굳센 다짐을 옮겨온 듯한 강직함도 이 해물뚝배기 맛의 한 부분 같았다.


뚝배기 한 사발을 다 비운 후 여운처럼 남아 있는 맛 또한 절색이다. 이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잡생각을 쫓아내고 먹는 내내 성실함과 강직함을 들게 하고는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갈 용기를 갖게 하는 비법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경쾌한 핸들링에 액셀을 밟고 떼는 일마저 상쾌하다. 눈 뜨자마자 나서길 잘했다 싶었다. 게다가 움츠려들 뻔한 어깨도 뽕을 넣은 것 마냥 두툼하니 의기양양한 내 모습도 보기 좋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누군가에게 나도 이 해물뚝배기 같은 존재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짜에 부대껴 상처 받은 영혼이 애써 찾아왔을 때 국물 한 숟가락 뜨고 나면 마음이 건강해지는 이 해물뚝배기 맛이고 싶었다.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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