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reative by Yoonyoung Lee
"시인은 꽃으로 글을 쓰고, 소설가는 상상으로, 기자는 사실로 글을 씁니다."
며칠 전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이다. '몽당연필은 기억보다 더 오래간다'라는 말을 징검다리 삼았다. "오늘 수업은 쓰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겠습니다"라고 하니, 고상한 기대가 깨진 탓일까, 깨알 같은 말소리가 웅성웅성 파도로, 내 생각의 해변으로 밀고 들어왔다. "'영원한 진실'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혼잣말보다 함께 쓰면 알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물길을 돌렸다.
베토벤의 곡 ‘합창’을 플래시몹으로 구성한 'Som Sabadel' 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함께 봤다. 석 줄 내외의 시청 소감을 써 보자 했다. 문장의 시작은 ‘나는~’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내 생각은~’이라는 표현은 '문장의 군더더기'로 여긴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면 좋은 점이 2가지다.
첫째, ‘나’를 주어로 문장을 시작하면, 강원국 작가는 '사돈 남 말하는 듯한 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 밑바닥의 요동치는 움직임을 숨기지 말아야 글쓰기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세세한 감정을 야릇하게 표현할 수 있다. 최영미 시인도 '나'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려서는 봄이 좋은 지도 몰랐다. 내가 봄이었으니까.'
둘째, 우리 말은 시제 ‘-었-‘, 높임 ‘-셨(시었)-‘이 첨가되는 '첨가어'(添加語)인 까닭에 주어를 분명하게 밝히면 서술어도 명토 박다. 예컨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괴상한 주술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주어로 쓰라는 뜻은 아니다. ‘나’를 주어로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은 ‘기억의 주체로서 나’가 아닌 ’글을 쓰는 주체’가 ‘나’임을 감각적으로 깨닫기 위함이다. 실존하는 ‘나’를 감각으로 익혀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1교시 글쓰기 수업을 마치면서 한 말이다. 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