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은하수510

[은하수510] 글쓰기 수업

CCreative by Yoonyoung Lee

by 한봉규 PHILIP
이윤령작가.웃고 있는 가연. 3F. Oil on canvas. 2020.jpg 이윤령 작가. 웃고 있는 가연. 3F. Oil on canvas. 2020


"시인은 꽃으로 글을 쓰고, 소설가는 상상으로, 기자는 사실로 글을 씁니다."


며칠 전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이다. '몽당연필은 기억보다 더 오래간다'라는 말을 징검다리 삼았다. "오늘 수업은 쓰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겠습니다"라고 하니, 고상한 기대가 깨진 탓일까, 깨알 같은 말소리가 웅성웅성 파도로, 내 생각의 해변으로 밀고 들어왔다. "'영원한 진실'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혼잣말보다 함께 쓰면 알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물길을 돌렸다.


베토벤의 곡 ‘합창’을 플래시몹으로 구성한 'Som Sabadel' 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함께 봤다. 석 줄 내외의 시청 소감을 써 보자 했다. 문장의 시작은 ‘나는~’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실은 '나는~’ ‘개인적으로는~’ ‘내 생각은~’이라는 표현은 '문장의 군더더기'로 여긴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면 좋은 점이 2가지다.


첫째, ‘나’를 주어로 문장을 시작하면, 강원국 작가는 '사돈 남 말하는 듯한 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 밑바닥의 요동치는 움직임을 숨기지 말아야 글쓰기는 자유롭다는 것이다. 세세한 감정을 야릇하게 표현할 수 있다. 최영미 시인도 '나'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려서는 봄이 좋은 지도 몰랐다. 내가 봄이었으니까.'


둘째, 우리 말은 시제 ‘-었-‘, 높임 ‘-셨(시었)-‘이 첨가되는 '첨가어'(添加語)인 까닭에 주어를 분명하게 밝히면 서술어도 명토 박다. 예컨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괴상한 주술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주어로 쓰라는 뜻은 아니다. ‘나’를 주어로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은 ‘기억의 주체로서 나’가 아닌 ’글을 쓰는 주체’가 ‘나’임을 감각적으로 깨닫기 위함이다. 실존하는 ‘나’를 감각으로 익혀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1교시 글쓰기 수업을 마치면서 한 말이다.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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