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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Jul 01. 2020

[삼삼한] 이완배 기자

Creative by Gilbert Legrand

길버트 르그랑. https://www.instagram.com/gilbertlegrand31/





5년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듣는 방송이 있다. 한 주간 브리핑을 모은 방송은 장거리 출장 때 들으면 안성맞춤이다. 간혹 운전을 번갈아 해주는 동료 같기도 했다. 민중의 소리 #이완배_기자, 처음 만난 날이 떠오른다.


18대 대통령 당선 소식과 함께 TV를 없앴다.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습관처럼 리모컨을 쥐고 선호 채널을 누르는 금단 현상을 극복해야 했다. 지금처럼 빼어난 대안 방송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목은 타들어가는 듯했다.


그때 #김용민_PD가 팟캐스트를 열었다. 이 엄혹한 시절을 함께 견디자며 해학과 위트를 내게 선사했다. 다음 세대에게 큰 유산이 될 수 있는 엄숙주의를 타파하자는 말에 용기가 났다. 하지만 내 용기는 설익은 것이었다. 이 용기를 여물게 해 줄 이야기 꾼이 '한국 재벌 흑 역사'를 들고 나타났다.


그 이야기 꾼은 경제 얘기를 했다. 수요와 공급, GNP와 GDP, 주식과 부동산, 시장 경제 어쩌고저쩌고 가 아니었다. 행복·용기·공동체·연대·희생·사람다움·노동·소득·분배·정의·신념이 경제를 어떻게 움직이고 사람 사는 세상 경제는 무엇인지를 알렸다. 들을수록 신이 났다. 하지만 그를 얘기꾼으로 동료로 또는 친구라고 내가 말하는 데에는 다른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TV 속 '경제의 속살' 코너를 맡고 있는 이완배 기자 얘기 주인공은 늘 나였다. 숱한 경제 평론가가 담론하는 자리에는 내가 낄 수 없었다. 그들은 늘 내게 부족하다고 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도 했다. 그때마다 이를 바득바득 갈고닦으면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늘 허전했다. 무엇을 더 채우고 보태야 하는지 모르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다.


하지만 이 기자 브리핑은 따듯했다. 나를 채근하지 않았고, 부족하다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되레 박학다식함을 겸손하게 쓸 줄 알았고, 군림하지 않았다. 경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민중 머리 꼭대기에 등대처럼 서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 해서 이완배 기자는 정의를 올바르게 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행복은 사실 이로부터 시작하는 물줄기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믿고 따르려고 한다.


한데 이완배 기자 브리핑은 오늘(6. 30. 화)이 마지막이다. 절친인 김용민 PD 붙잡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결연함이 서운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며칠 전 고별사를 듣고 결연함의 나머지 정체를 알았다. '자연스러운 퇴진'이라고 했다. 능력 있는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영원한 글쟁이로 돌아가는 일이 지금 자기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그 말을 나도 언젠가는 해야 하겠지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지금이 그때가 아니라고 손사래도 쳤다. 그 말이 싫기도 했다. 너무 많은 미련이 남아 결정을 자꾸 미뤘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일'이 선배 도리이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잘하는 일이라는 각성은 내게 쾌도난마와도 같은 말이었다.


이완배 기자가 5년여를 하루같이 애지중지 이야기 한 경제를 통한 행복은 이렇게 얻는 것이로구나도 싶었다. 그렇다면 나도 망설일 일 아니다. 나를 주인공 삼아 꾸며준 천일야화와 같은 얘기 보답으로 그와 동행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지금 내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리 마음먹고 나니 이완배 기자가 천 번 넘게 말한 '경제의 속살'이란 바로 이런 아름다운 동행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싶다.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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