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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두건 Sep 03. 2023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주 1회 글을 써내던 10주 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상담사 일을 하고, 주말에도 가끔 프리랜서로서 상담을 하고, 때로는 놀러도 가고, 쉬기도 하고, 매일 3번 꼬박꼬박 약을 챙기고 일주일에 1회 상담을 가면서 내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전히 '안온한 일상'이라는 것은 멀고도 험난한 듯하다. 어느 날엔 눈을 뜨자마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119 구조대를 부르고 출근을 못하질 않나, 어느 때엔 애인과 심하게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 죽고 싶다며 칼을 들고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를 받질 않나. 그러다가도 어느 날엔 애인과 다정하게 입 맞추고 속 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들여다보며 긴 밤을 보내기도 하고, 길가의 카페에서 귀여운 텀블러를 얻어 기뻐하기도 하고, 일을 하며 큰 보람과 감동을 느껴 하루종일 들떠 있기도 한다.


 요즘의 나는 문화센터에서 뮤지컬(연극)을 배운다. 5개월 정도 진행되는 거라 전문적인 것을 많이 배우진 못하겠지만, 지난 수업에서 사람들이 보컬 레슨을 받고 즉각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무척 기대 중이다. 최근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 있는가, 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내 많은 내담자들에게도 취미나 관심사는 무엇인지 묻곤 한다. 이 퍽퍽하고 험준한 절벽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재밌어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지 않으면 절벽에 매달려 있기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 여러분도 함께 탐구해 보시길 바란다. 현재의 나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가? 지금의 나는 연기하는 것, 목소리를 바꿔 내는 것, 노래 부르는 것, 차임(벨) 소리를 내며 춤추는 것, 상담하는 것, 책 읽는 것, 다른 지역에 가보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 업무를 처리하는 것 등에 빠져있다. 

-덧붙임. 많던 취미에 흥미를 잃고, 평소 하지 않던 것까지 도전해 보아도 도통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우울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인 '흥미 감소'를 겪고 있는 중일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상담 또는 진료를 통해 알아보시기 바란다.-

 마음이 많이 혼란스럽고 뒤척이던 이전엔 신점을 보기도 했다. 최근 아주 흥미롭고 위안이 되는 신점 결과를 만났다. 나의 영혼의 나이는 97세이며, 4살부터 현재까지 신내림을 받을 수 있는 시기이고, 나에겐 할머니 신령님이 와 계시며, 그는 근원적으로 보건대 관세음보살이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원형을 지니고 계신다 하였다. 나는 마치 기둥만 있고 사방이 뚫린 암자와도 같아서-표지의 사진 선정에 많은 역할을 한 대목이다.-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심지어는 동물들도. 손님이 많이 드나든다 했다. 나에게서 그들은 쉼을 얻기도 하고, 하소연을 해 마음을 풀어놓고 떠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한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난 뭐지? 그저 다른 존재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견디며, 내도록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일 뿐인가? 내 안에 든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많이 상담해 주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연마해도, 내 내면을 들여다보려면 텅 빈 것 같고 어두컴컴하다. 그래서 상담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암자에 문을 달 수도 있는 것이며 종종 들러 암자의 먼지를 쓸어내어 주고 관리해 주는 누군가에게서 쉼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라 하셨다. 얘기를 듣자니 내 내적 에너지로 나무를 베어다 판자를 만들고 경첩을 만들기엔 무리고, 산속을 헤매다 어디선가 주운 낡은 종 정도는 달 수 있을 것 같았다. 옅은 바람은 스쳐가도 종을 울리지 않지만, 나를 무척 필요로 하는 간절한 바람들은 내 종을 칠 수 있게 말이다. 마음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나는 그 속에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 있겠지.


 돌이켜 보면, 학생 시절 내 꿈은 든든한 나무가 되는 거였다. 나 같은 아이들이 더 이상 홀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해서, 내가 어른이 되어 그들의 곁을 맴돌 때 한 명이라도 나에게 마음을 터놓고 진정으로 기대어 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잘 산 인생이라 여길 것이라 말했다. 지금의 내가 돌이켜보면 참 정의감과 도덕심, 이타심이 뛰어난 똘똘한 아이의 인생 목표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꿈을 이뤘다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말 그대로 잠시 쉬어가는 정자나 벤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으론 또다시 부족하다 여긴다. 내가 진정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왜 나의 내면은 텅텅 비어있다 느낄까. 직장도 있고 몸 뉘일 곳도 있고 먹고 살 정도는 되며 애인도 있는, 겉으로는 꽤 행복해 보이는 내가 자꾸만 죽음을 이야기하고 화두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담선생님과 나는 그 이유를 찾아 정신분석 상담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모든 행위에는 원인이 있으며, 내가 자꾸만 자살을 하고 싶다 하면 그러고 싶은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게 정신분석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이것은 타고난 나의 팔자일지도 모른다. 용한 무당님께서는 제가 자살 시도를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가능하다 했다. 또 존중한다 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살 만해지기에, 무당님의 욕심으로는 조금 더 살아주셨으면 한다 했다. 나는 내 고통을 이고 지는 것도 모자라 남의 고통과 한까지 들어주려 태어난 그릇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내 몸에 상처가 나면서도, 피를 흘리면서도, 늪에 빠져가면서도 견딜 것인가 혹은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건강한 지속됨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것은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나의 선택이다. 살고 죽음은 하늘이 결정하더라도, 그 사이의 나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또다시 한 번 살아보기로 했다. 물론 신점에 따르면 나는 작년에 이미 죽었기 때문에-자살시도를 한 것이 작년 말이었다.-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경계에 서있다. 앞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단다. 그래도 뭐 어쩔 텐가. 놓지 못한 숨통은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있고, 난도질당한 정신도 똑바로 서려 기를 쓰고 있으니. 일단은 또 살아봐야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과, 나를 치료하려 애쓰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또 살아보려고 얕은 숨줄기를 붙든다. 사는 것에 미련은 없어도, 내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아니까. 내가 일궈낼 수 있는 변화와 나처럼 축 처진 마음들이 보이니까. 동병상련과 측은지심이 일어서라도 나는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죽고 싶을 때마다 매번 다양한 연유로 충동을 가라앉혔었다. 최근의 나에겐 코시차임 소리와 명상, 내가 해야 하는 일들과 내가 붙들고 있는 위태로운 영혼들이 내 피사의 사탑의 밧줄이 되어준다. 조만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명상 컨텐츠를 만들 생각이다. 이전에 모 명상 플랫폼에서 최종면접 단계까지 갔던 아이디어인데,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그런지 결국엔 탈락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 세계에 열린 플랫폼이 있는 시대,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면서도, 일차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 될 테다. 그러니 훗날 마음이 안 좋을 때, 문득 이 글이 생각난다면 *튜브에 '자살 명상'을 검색해 주시길 바란다. 운이 좋다면 내가 이미 컨텐츠를 제작했을 수 있으니. 여하튼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내 안의 실타래를 풀고, 또 내면을 들여다 보고, 내면아이를 어르면서. 동시에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업을 풀어내려 한다. 


 끝까지 해내기는 하고 죽을 수 있을까, 싶던 연재가 어느새 완결이 난 지금. 홀가분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사는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죽는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내 시작과 끝은 나만이 판단할 수 있을 뿐. 독자 분들의 시작이 나처럼 불행이었다면, 마무리는 다행이기를. 행운이게도 시작이 다행이었다면, 끝 또한 다행이기를. 멀리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나는 아직도 참 많이 부족한 상담사이고, 부족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게, 혹은 내 글에 위안을 얻은 분이 계신다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꾸준히 읽어주시며 댓글을 남겨 주시고, 공감을 남겨주시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신 따뜻한 분들께도 많은 감사를 드린다. 


 언젠가 또 다른 이야깃거리나 컨텐츠가 생기면 들를 테니, 그때도 무사히. 건강하게. 잘 살아주고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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