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청곡: 어른
어느새 훌쩍 커버렸어 이젠 어른이라고 말을 하죠
마음은 그대론데
어리숙하고 철도 없죠 막막한 이 세상은 말이 없죠
내가 안아 줄게요
(당신은요)
아이같이 좋은 사람
곡 딕펑스 작곡 박가람 작사 박가람, 안녕하신가영
내게 선곡권이 있던 때, 어린이날이면 마지막 곡으로 이 노래를 틀었다. 어른이라고 불리지만 아직 아이인 누군가를 위해. 어린이날에 내 아이를, 혹은 내 아이의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 가고 선물도 사줘야 하지만 그래도 어른인 채로 아이인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어른으로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책임과 역할이 있고 그걸 해내야 어른인 자격을 준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나는 어른 자격이 없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게 어렵고, 완전하게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중으로 걱정을 산다. 시간이 있으면 놀고 싶고, 사회에서의 부딪침과 부딪힘은 피하고만 싶고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고 싶다. 제 체감나이는 지금 나이에서 10살은 빼야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성인인 나이이긴 한데...) 이런 와중에 성인이라 허락된 자유를 누리기만 해 왔다면 지나친 방종인가요. 그렇다고 스스로 어른이 아닌 것 같으니 아이가 하는 것만 할 수는 없잖아요, 어쨌든 자격 있는 어른들과 섞여서 살긴 해야 하니까.
비겁한 변명이십니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래도 비겁한 변명에 좀 더 살을 보태보자. 세상엔 황새 같은 어른들이 많아서 뱁새인 반어른은 그들과 발맞추기 위해 종종걸음을 쳐보려다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다리가 아프다며 주변에 성숙한 어른을 물색해 징징거리거나, 다리 아픈 김에 주저앉아버리거나, 어른답지 못한 무절제함으로 뭘 지른다거나, 한다. 그렇지만 징징댄 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보답하려 하고, 주저앉았다가도 해야 하는 일이 임박하면 울면서라도 일어나고, 뭘 지르더라도 결제할 수 있는 만큼만 지른다. 놀고만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렇게는 안(못)하고, 몸에 좋다는 것도 억지로 먹긴 하고, 일단 되는데 까지는 어떻게든 셀프 건사하려고 하고요. 이 정도면 완전한 방종은 아니겠지요?
아직 아이'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더 생각해 보니 '아이 같다'는 맞으면서도 틀린 표현인 것 같다. 아이로 정의되는 나이를 지나쳤으니 아이라고 불릴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아이로 돌아간 듯한, 돌아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들에 그는 아이의 속성에 비할 만큼 아이의 모습과 비슷해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아이는 다른 아이가 아니라 그 자신인(이었던) 아이다. 그러니 그냥 단순히 그가 간직하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그걸 꺼내어 남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있고, 감춰놓고 혼자만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고, 아주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뿐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어린이날에 아직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나 같은) 어른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 노래를 틀었단 말이죠? 넹.... 근데 어른이고 어린이고 반어른이고 간에, 씩씩한 어른이든 비겁한 어른이든, 이 세상이 막막한 건 다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무슨 일이 없어도 누가 안아준다고 하면 좋지 않나요?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면 나쁠 거 없잖아요. 이 노래가 그런 노래라서 틀어봤어요. 쉬는 날이 많지만 할 것도 제일 많고 풍요롭고 정신없는 5월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