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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함 Jul 24. 2023

영어 못하는 베트남 타잔과 망고에 미친 자의 만남

[제9편] 베트남 오빠 소개팅 받다


저 아무도 안 만나고 싶은데요,,


매직 트라이앵글의 해체를 다짐하고 나서 데이팅 어플을 지웠다.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 이상증세도 와서 병원을 다녀야 했다. 이렇게 사귀지도 않을 사람들을 쉽게 만나면서 내 몸과 마음을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한 달은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와중에 매직 트라이앵글 밖에서 썸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챙피한 그가 어정쩡하게 내 삶에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가장 친한 이모 직원동료가 소개해준 “베트남 오빠”였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베트남에 왔으니 베트남 친구를 두는 것이 당연히 이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워낙 친한 이모가 소개해주는 자리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그의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진한 눈썹과 눈매, 판판하게 벌어진 어깨와 자세, 상남자 중의 상남자일 것 같은 해병대 투블럭 헤어스타일과 왼쪽 팔뚝에 굵은 두 줄의 타투 (처음에는 톰브라운 짝퉁 타투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깊은 뜻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사슴같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의 말투는 부드럽고 자상했다. 내 눈에는 일본인+홍콩인을 합친 진한 인상이었으나 사진을 본 한국인 지인들은 그가 옥택연을 닮았다고 했다. 충분히 매력 있는 얼굴이었다.



옥택연이 벹남 사람이었다면,,
식당 다 알아봐주고 면요리 나오면 손수 다 비벼주는 다정함,,





영어를 못하는 타잔과의 대화


그러나 그러면 뭐하나. 베트남에 거주하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렇게까지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 마디도 영어로 할 줄 몰라서 이모 직원이 같이 만나는 자리에 함께 나와 통역을 해야 했을 정도. 이건 뭐 내가 영어과외 선생님도 아니고, 봉사정신으로 이 사람을 만나야 되는거야..? 골치 아팠다. 첫 만남 이후로 그는 내게 꾸준히 짧은 영어로 Zalo (베트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지만 언어의 한계에 부딪혀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나는 그와의 대화 불통이 답답해 화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보겠다.



I take me out for dinner

- 나는 저녁 먹으러 갈거야 (직역: 나는 내 자신을 외식하게 할거야)


Very nice restaurant.

- 아주 좋은 식당이지


아니 왜 자기가 밥먹는 걸 나한테 알리는거지? 당황스러웠지만 Good for you (잘됐군요)라고 답해줬다. 두 시간 뒤 그는 눈물 이모티콘을 보낸다. 그러더니


I very hungry but I wait for you.. (눈물)(눈물)

- 나 엄청 배고픈데 너 계속 기다리는 중...



알고 보니 나와 저녁을 먹고 싶었던거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 저녁을 먹어 배부른 상태였다. 말 전달은 그가 잘못한 것인데 내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화딱지가 났다. 베트남어에서 영어로 구글 번역을 돌리면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오역이 바로 대명사다. 어떻게 된거냐면 베트남에서는 '나','너'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항상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여기서 잠깐 베트남어 이야기!

'에모이' 베트남 식당 이름 뜻


베트남어에는 toi (또이) 라고 그 누구와 대화를 해도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있으나 이 대명사는 주로 어린 아이들이 많이 쓰고 성인의 대화해서는 듣기 어렵다. 또한 '너'를 지칭하는 대명사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부를 때,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em (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에게는 anh (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는 chi (찌) 라고 지칭한다. 예) 나는 여자다. 고로 나보다 어린 em 을 상대로 '나'를 가르칠 때 통상 toi 를 쓰지 않고 'chi (찌)'라고 말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이나 여성을 상대할 때는 내가 'em (엠)'이 된다.



여기서 추가로 대명사 관련한 썰을 덧붙이자면 우리가 아는 한국에 있는 베트남 식당 '에모이/에머이(Emoi)'는 Em 띄고 oi 인데 여기서 em 은 나보다 어린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고 oi 는 우리나라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름 뒤에 --야, --아 하고 부르는 조사로 볼 수 있다.


식당에서 흔히 웨이터에게 em oi! em oi! 라고 부르는 것은 즉, 직역하자면 "나보다 어린 친구야-" 하고 말하는 것이다. 의역하자면 "저기요-" 정도 되겠다. 그러나 식당 웨이터가 항상 어린 친구들이지는 않은데 만약에 아주머니라면 chi oi (찌 어이-) 라고 부르고, 아저씨라면 anh oi (안 어이-) 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또 다른 썰을 풀자면, 예전에 베트남에서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시절 같은 회사에 베트남어를 하는 여동생이 있어 '사랑해'를 어떻게 말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게 "찌예우엠"이라고 알려줬고, 나는 그날부터 찌예우엠을 입에 달고 다니며 그녀와 베트남어를 하는 인턴들에게도 찌예우엠을 외치고 다녔었다. Chị yêu em!


베트남에 온 이후 유일하게 알던 베트남어를 써먹으려고 직원 이모들한테 사회생활용 애교를 부리려고 "찌예우엠"이라고 말했는데 통 못알아듣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찌가 직원 이모를 지칭하는 것이고, 엠이 나를 지칭하게 되는 것이었다. Em yêu chị! 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었다. //








베트남 옥택연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가 베트남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 구글 번역기는 두 사람간의 나이 관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명사를 마음대로 오역하게 되는 것. 그래서 그가 나를 데리고 외식하고 싶다는 말이 잘못 오역돼 전달된 것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영어도 못하는 그가 슬슬 짜증이 났다. 말도 안 통하면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난 결국 그의 메시지를 읽고도 씹기를 반복하게 됐는데..







망고가 낳은 괴물의 등장


어느날 아침 회사 자리에 가보니 거대한 초록색 망고가 다섯 개나 들어간 봉투 하나가 놓여져 있다. 이모직원이 말하길 베트남 오빠가 택배로 보낸 것이라고. 동남아 라이프가 처음인 나로서는 일단 이렇게 큰 과일을 어떻게 먹지 싶었다. 거의 내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이르는 길이였다. 무겁기도 굉장히 무거웠다. 슈퍼마켓에서도 이렇게 큰 망고는 못봤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베트남 오빠 내 정원에서 직접 키운 망고라고 한다. 다행히 직원이모가 점심시간에 하나를 손수 까주었다. 겉보기에는 딱딱해보였지만 안에는 금빛의 망고 속살이 탱글탱글하고 탐스럽게 익어있었다. 망고를 한 입 먹어보는 순간.. 그 환상적인 맛에 아찔함을 느꼈다. 아....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망고를 먹어본 적이 있던가....



'무조건 이 망고는 꼭 또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렇다 나는 망낳괴가 되었다. 망고가 낳은 괴물.. 나는 그동안 베트남 오빠의 메시지를 씹어놓고, 망고 사진을 찍어 그에게 인증샷을 보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맛있는 망고를 먹어본다며 가식적이게도 큐트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망고로 인해서 그와 나의 관계는 끊기지 않고 이어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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