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껌딱지
“아빠랑 하꺼야"
"엄마 말고 아빠"
"아빠가 해줘"
아이가 이 말들을 자주 하기 시작한 지 3-4개월쯤 된 것 같다.
아아 이 얼마나 고귀하고 행복한 순간인가
아빠를 이렇게도 좋아해 주는 아이라니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재밌게 놀아줄까
아이가 어디를 가고 뭘 하면 좋아할까를
항상 고민하고 행하던 그동안의 내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엄마한테도 가줘 제발 하는 생각이다.
저녁밥을 요리하고 설거지까지 했으면
응당 씻기기 재우기는 아내가 해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넌 또 왜 이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니 아가야
씻으러 가자는데 아빠를 왜 찾니
"오늘은 엄마랑 씻는 거야 아빠는 거실에서 기다릴 거야"
라고 아이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의 표정에서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 은은한 미소가 새어 나오더니
역시나
"대신 아빠랑 씻고 잠은 엄마랑 같이 자러 가는 거야"
라고 하게 되는 아빠다.
엄마아빠는 안방에서 아이는 아이방에서 자는 우리 집은
아이를 눕히고 옆에 같이 누워 토닥토닥해주고 굿나잇 인사하고 나오는 게 루틴인데
아빠가 같이 들어가면 도무지 보내줄 생각을 안 한다
토닥토닥 더해줘를 시전하고
빨간불이야 멈춰있어라고 하거나
물 먹고 싶어라고 하더니 한참 물병빨대만 물고 있는다.
엄마가 들어가는 날은 딱 5분이면 되던데
마음 약한 아빠를 공략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인 듯하다.
아빠는 화장실이라도 갈래면
다리에 매달려 아빠 아직 안 마려울걸 하고 붙잡고
문 닫고 볼일을 보고 있으면 바로 열고 들어온다.
나가라고 하면
"아니~ 아빠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라고 너스레를 떨며 들어와 할 얘기를 지어내느라 바쁘다.
엄마 화장실은 그렇게 잘 보내주면서.
어제는 아이에게 한 번 물어봤다.
"다온이는 왜 아빠랑만 놀아? 엄마랑은 안 놀고?"
그랬더니 다온이는
"아빠랑 노는 게 더 재밌어 엄마보다"
하고 대답했다.
옆에서 듣던 엄마는
"너~ 엄마 서운해" 라고 말하면서도
역시 얼굴엔 은은한 미소.
하긴 나도 그랬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는 친구들이랑 노는 것보다 아빠랑 노는 게 더 재밌었다.
당시는 6일 근무 시대라 하루 쉬는 일요일마다 아빠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동네 공립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보고 상영하는 어린이영화도 보고
구내식당에서 컵라면도 사 먹고
도서관 옆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랑 야구하고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아빠에게 좋은 것을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았던 소중한 것들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구나 하는.
"나는 아빠 껌딱지야" 라고 하는 아이에게
좋은 아빠입니다 하는 칭찬과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