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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Nov 01. 2022

가장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구피 어항에서 배운 느린 학습자를 위한 교훈

구피라는 물고기를 아시는지요?

송사리과의 민물고기로 몸길이는 암컷은 약 6cm 수컷은 3cm 정도 되는 물고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고 엄청난 번식력으로 매우 유명하지요. 1회의 교미로도 여러 번 수정이 가능한데 보통 1개월에 1번씩 산란을 한다고 합니다.


아는 지인이 집에서 기르는데 번식이 너무 잘 되어 감당이 안된다시며 혹시 키워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기에 가볍게 한번 키워보겠노라 대답했더니 치어를 주셨습니다. 열대어는 예전에 길러본 경험이 있다고 했더니 그럼 따로 배울 필요 없이 그냥 키우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호기롭게 구피와 함께하는 생활(일명 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무언가가 나를 기다린다는 느낌을 느껴보셨나요?

처음에는 이 신기한 느낌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구피들이 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밤에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구피 어항에 가서 밤새 안녕하셨는지 확인해보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내의 이상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구피와 대화도 했답니다.


"안녕, 잘잤니?"

"오늘도 행복하자"  뭐 이런식입니다.


지인의 예상대로 우리 집에 온 구피 치어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습니다.

한 두 마리의 치어가 죽기는 했지만 대부분 성어로 잘 자랐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집에 와서 불을 켜면 내가 온 것을 알고 어항 가까이로 모여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건 강화라고 배워 알고 있습니다. ‘종을 땡 치고 먹을 것을 주었더니 나중에는 종만 쳐도 개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불을 켜고 저 인간이 가까이 오면 물 위에서 밥이 떨어진다!"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역시 거리가 있는가 봅니다. 저는 이런 행동이 조건강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싶지 않았습니다. 조건강화가 아니라 구피들이 정말 나를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겁니다.


문제는 구피와 함께한 지 5~6개월 정도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치어와 함께 받은 어항, 여과기 등이 이제 작아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구피들의 체구도 커져감에 따라 좀 더 좋은 것으로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로켓으로 배송해준다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어항이 좀 더 커져야 했습니다. 보통 어항은 ‘자’로 표현하는데 한 자면 30cm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반 어항이면 45cm,  3자 어항은 90cm 이런 식입니다. 집에 공간은 여유롭지 못했기에 어항은 자반 어항으로 결정했습니다. 다음은 여과기를 고를 차례. 여과기는 어항의 물을 빨아들이고 필터로 걸러 다시 내보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과력이 좋지 않으면 물고기의 배설물과 남은 밥 등이 물을 오염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과기는 좋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품을 검색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여과기를 발견했습니다. 여과기는 W로 표시가 되었는데 W가 클수록 더 많이 여과한다는 의미입니다. 눈여겨보는 여과기는 검은색인데 아래에서 물을 빨면 통안의 필터로 여과를 하고 다시 어항 위에 길게 뻗은 막대에서 비처럼 물을 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여과력도 마음에 들었지만 가동할 때 어항 위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품으로 결정을 하고 배송을 받고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항을 교체할 때는 보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보통 물잡이라고 합니다. 교체하기 전 어항의 물을 조금씩 섞어주면 물잡이에 도움이 됩니다. 일단 배송받은 어항에 물을 채우고 여과기를 가동해줍니다. 시원한 물소리에 얼른 구피들을 이사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매일 기존 어항의 물을 한 컵식 새 어항에 옮겨주며 시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고 구피들을 이사하는 날! 구피들도 새 어항에 마음에 드는지 꽤 활발하게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어나 구피의 어항을 향합니다. 어항에서는 여과기의 세찬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어항을 바라보는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피들이 모두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사고가 생겼을까? 저는 의아한 마음에 치어를 주신 지인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인께서 집에 오셔서 어항을 보시더니 대답을 주셨습니다.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어항의 사이즈에 비해 너무 여과력이 높은 여과기를 달았다’는게 그분의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여과력은 높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저의 우문에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가 있는 법이야”


그분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여과력이 높다는 것은 필터를 사용하는 여과기의 특성상 많은 물을 빨아들이고 많은 물을 내뱉는다는 것인데,작은 어항에서 많은 물을 빨아들이니 당연히 수류(물의 속도)가 빨라지고 빠른 수류를 이겨내기 위한 구피들은 헤엄치다가 탈진하거나 또는 수류를 이기지 못하고 여과기로 빨려 들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저는 저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나 물고기를 키우다 보면 이런저런 실수를 하신다시며 다시 치어를 주시겠노라 하셨지만 저는 구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로 산 어항과 장비까지 지인의 편에 돌려보내고 혼자 앉아 생각을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
 



교육에도 똑같은 교훈이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교실에 있어도, 함께 공부하고 있어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와 능력이 다릅니다.


진도는 속도가 가장 빠른 아이에게 맞추는 게 좋을까요? 가장 늦은 아이에게 맞추는 게 좋을까요? 가장 빠른 아이에게 맞추면 속도가 늦은 아이들은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고, 가장 늦은 아이에게 맞추면 빠른 아이들은 지루함에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것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블룸이라는 교육학자는 완전학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완전학습 = 학습자의 약 95%가 학습과제의 약 90%를 학습해내는 학습 (벤자민 블룸)


교육학 이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사들의 생각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블룸은 95%가 90%를 배웠다면 완전한 학습이 된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저는 5%의 아이들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5%는 대부분 특수한 교육적 요구를 가진 느린 학습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저는 교사들이 이 5%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은 것인지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 빨라 그 속도를 맞추다가 탈진하거나 여과기에 빨려갈 수밖에 없었던 구피들처럼 우리 주변에도 느린 학습자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있습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이고 95%가 맞다고 하더라도 5%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장치, 그 장치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핀란드의 평등교육 정신이 간절한 요즘입니다.

ⓒ 황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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