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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세경 Oct 24. 2024

8. 우는것의 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엉엉 울고 불다 지쳐 잠든 뒤에 일어나니까. 어? 왜 이렇게 후련하지.

어깨 위에 욕심과 가난이라는 귀신이 붙어서 두들겨 맞고만 살았는데 퇴마됐나보다. 개운함이 감도는 것이다. 눈물이 콸콸 쏟아지고 나서 기운이 나는 상황은 기분 탓이 아니다. 눈물이 흐르면서 마음에 쌓였던 억눌린 감정들이 눈물에 붙어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훌쩍훌쩍거리다가 촤르르 물길이 생기더니 쩡쩡 울음을 터트려버린다. 눈물 고압수 발사! 눌어붙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버린다.


우는 것은 그 자체로 정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 운다는 것은 체내에 있던 것을 밖으로 배출하는 행위다. 흘리는 눈물 속에는 망간이라는 미네랄이 들어있는데 체내에 망간이 많으면 예민해지고 피로가 몰려온다고 하니 밖으로 빠지면 오히려 좋다. 우는 과정에서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더불어 엔도르핀이 증가하여 감정이 유해진다. 엔도르핀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고 진통 작용을 해준다.


자각하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불안도 물리적으로 배출된다. 감정적 스트레스에 반응해 나오는 코르티솔 호르몬 아니 호르놈을 흘려보낼 수 있다. 이런 작용으로 인해 울고 난 뒤 몸이 가벼워지고 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억눌린 감정이나 풀지 못했던 갈등들이 물길을 타고 사라지면서 마음속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진다. 그 빈자리는 다시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들어올 여유가 생긴다.


눈물의 힘에는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로 인문학 전 범위에 걸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개념으로, 짓눌린 감정을 해방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개념인 카타르시스는 비극이 독자나 관객에게 두려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정을 안전하게 방출함으로써 정서적 해방을 경험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즉, 관객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억눌린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배출하며,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감과 치유의 메커니즘이 일어나는데 프로이트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들 역시 풀리지 않는 감정, 트라우마와 고통스러운 기억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실제로 문화예술 및 심리치료 현장에 주요한 목적 중 하나가 자기표현과 감정적 해방인 만큼, 그 과정의 일부인 울음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눈물은 다양한 상황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사랑노래 같은 이별노래」를 듣다가 난 아직 너를 사랑해 널 많이 사랑해 흑흑 거리면서 연희동 길바닥을 돌아다니며 감정을 해소할 수 있고,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지면 야심한 시각, 잘 차려진 술과 안주 노트북 배터리 체크 후「먼훗날 우리」와 같은 영화를 틀고 펑펑 울어 본다거나 저쪽 잠실 경기장에서도 우리팀이 승리를 하면 이야 , 단순한 기쁨을 넘어 오랜시간 빻은 성적과 쌓아온 노력, 그리고 좌절했던 지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 있다.

이때 눈물은 상실의 아픔을 인정하게 해주고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모습이며, 해방할 힘이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 상처나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회복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그림책『눈물바다』의 내용도 꼭 이것이다. 뭐가 잘 풀리지 않아 슬퍼 울며 잠든 다음 날 ‘나’는 내 눈물이 바다가 돼버린 것을 발견한다. 눈물바다 속에는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들이 허우적대고 있는다. 주인공은 놀란 것도 잠시 눈물의 파도를 타고 바닷속 세상을 즐기다가 으잇차, 눈물에 빠진 친지들을 건져서 빨랫줄에 말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하는 대사 시원하다, 후아! 눈물 젖었던 심정이 다시 명랑하게 돌아오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눈물짓는 과정과 그 후에 다가오는 일종의 상쾌함은, 우리가 울 때마다 마음이 자신의 회복 능력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아프니까 울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용기의 증거가 눈물인 것이다. 울음으로 비워낸 자리에는 다시 살아 나갈 것들로 채워진다. 울고나면 얼마나 배고픈데, 입맛이 싹 돈다. 맛난 것들을 먹다 보면 그때만큼은, 삶이 어차피 고통이라면 그것들한테 영영 짓눌려 살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이로써 울음은 배설이 아니라 순환 에너지를 채우는 원동력이자 자가 치유의 도구로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 굉장하잖아?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지식이 고프면 독서해야 하는데 일단 울면 스스로 뭔가 된다는 것에서부터 효율이 장난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눈물에 엄청나게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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