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우는 행위, 그리고 울고 남의 작용에 대해 탐구하다 보니 우는 인간들의 아름다움과 그 특징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본 장에서는 이들을 '인류'로서 표기하고 싶다. 예를 들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동시대에 공존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현시대의 특정 인간들을 '흘리는 인류'라는 새로운 분류로 나누어 그들의 특징을 서술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흘리는 인류'라는 표현은 ‘인문학과 공감 능력이 세상을 구한다’라는 메시지로 출판과 전시기획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는 턱 괴는 여자들이 명명하는 ‘읽는 인류'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당시 정수경 선생님께 독립 출판 브랜딩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고, 수업 중 '읽는 인류'라는 개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출간기획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이러한 생각을 선생님께 전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쉽다.
읽는 인류라는 명명이 머릿속에 깊이 박힌 이유는, 인문학을 소비하고 뾰족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특정 군집에 대해 마케팅 대상이나 그들의 소비패턴을 단순한 행위로 보지 않고, 인류의 어떤 본질적 특성으로 확장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상으로, 나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흘리는 인류'로 명명하고 싶어졌다.
흘리는 인류, 즉 눈물이 특히 많고 잘 우는 인류는 어떤 고유한 특성이 있을까.
흘리는 인류는 어릴 때부터 ‘울보’라는 별명을 종종 들어보며 자란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때 책상 위에 엎드려 울면 “야우냐” 소리를 들어 고개를 들기에 민망하거나, 수업자료에 슬픈 영상이 있으면 눈물을 흘려 “야 00 운다.” 소리를 들어보는 경험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졸업식마다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일이 흔하다. 타 인류에게는 순수하고 공감 능력이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겁이 많고 쓸모없는 것을 흘리는 종으로 비추어지거나 눈물로 호소하지 말아라, 울기만 해서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심하다, 징징댄다, 찌질하다는 등 비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흘리는 인류는 정서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수용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고 자극에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민함은 종종 입체적인 삶의 경험을 통해 어휘력과 감정 표현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정서를 점검할 수 있다. 일어나는 마음을 빠르게 변별하며 공감하는 처리 속도가 뛰어나다. 희로애락에 대해 감명받는 것을 바로 눈물 흘리기로 표현할 수 있고 제 일이 아닌데도 울어줄 수 있다. 그 때문에 이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냐는 표현을 쓸 수가 없다.
감수성과 낭만적인 예술을 창조하려고 하고 이에 따라 연쇄적인 감동전파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다정함’을 종교로 삼기도 한다.
특정 재난 상황이나 사건·사고에 거울 뉴런이 발동하여 더 취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며 감정적으로 깊이 공감하기 때문으로, 이러한 특성은 감정적 피로와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취약성은 흘리는 인류가 예민하고 타인과의 연결을 중시하는 만큼 흔한 특성이다.
흘리는 인류는 모든 것에 곧잘 벅차오르는 편이라서 문화예술부터 공부까지도 다양한 분야에 소위 덕질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 및 동물에게 선물을 많이 사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때때로 지갑 사정이 어려워지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들에게 중요한 삶의 부분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자신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으며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들은 눈물을 잘 흘리는 만큼 자기표현의 기회가 빈번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의 배출이 원활하여 꾹 참고 사는 인류보다 기대 수명이 높은 편이다. 또 이들의 특징은 눈물의 양과 빈도 등을 척도로 자가검진을 할 수 있다. 정기적인 눈물 루틴에 이상이 있으면 스스로 알아챌 수가 있어 안과, 정신과 등 내방 기회가 많아서 안구질환 여부나 심인성으로 인한 심리적 소진 상태를 파악하여 관련 질병에 조기 개입 할 수 있다.
특정 사건을 두고 ‘예전에는 이만큼 울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네’라고 태연해진 것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흘리는 인류가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눈물을 흘리고 그 감정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창피하면 그만 울어', '여기서 울면 지는 거다'와 같은 자기 대화를 반복하며 개인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자기 대화는 감정을 조절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능력을 길러주며, 더 강한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흘리는 인류는 감정에 민감한 만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더 많은 감정적 연결을 찾으려 한다. 흘리는 인류는 그동안 자신을 헤아려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꾸준히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범 인류애를 유지하고,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눈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함에 감사를 느끼는 과정은 더 나은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감정적 성장과 긍정적 사고방식의 형성은 결국 개인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하며, 흘리는 인류가 가진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흘리는 인류는 우는 모습을 자주 보니까 어여뻐 보이는 각도를 잘 아는 경우가 있고, 우느라 기운을 다 써서 나쁜 짓을 많이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울고 나면 식욕이 돋아 맛있는 음식을 찾거나, 울며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어서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주의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흘리는 인류 중에는 자기애 성향을 지니거나 눈물을 무기로 삼아 타인을 조종하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눈물이라는 감정 표현을 순수한 방식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여린 모습을 연출하고 응석을 부리는 인종도 있다. 눈물을 흘리다 자기감정에 사로잡히고 시야가 좁아져 어리석은 판단을 하거나 자기연민 과다로 주변을 곤란하게 하거나 흘리는 인류인 것을 숨기기 활동 범위를 좁히거나 좋아하지 않는 인간들과의 접촉을 줄여 위해 감정 소모를 하지 않으면서 지내기도 한다.
그들의 눈물을 자극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한, 흘리는 인류는 당분간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