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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생경 Oct 27. 2024

15. 눈물자리

어릴 적의 일이다. 눈물이 참을 수가 없던 나는 팔뚝을 손톱으로 꼬집었다. 나중에는 뒷덜미랑 얼굴도 꼬집기에 이르렀다. 살갗이 파이고 핏방울이 맺혀도 아프지가 않았다. 아쉽게도, 유혈퍼포먼스에 비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부끄러워. 엎어져 왼팔을 쥐어뜯으며, 간절히 눈물이 멈추길 바랐다.

얼른 눈물이 안 나오게 할 수만 있으면 제발 흐르지 마라. 눈물아 멈춰라 제발


그때 눈물을 멈추게 하기 위해 꼬집었던 팔뚝에는 점이 생겼다. 그래서 내 몸에는 눈물점이 좀 많다. 눈물 흐르는 자국마다 점이다.


어른이 되었다. 눈물 나는 마음에 팔을 긁적이다가 왼쪽 팔뚝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흐려졌을까?


점들이 참 작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었다. 자신의 사례개념화가 시급한데 발달력 수집에 애로가 많다.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한 아이가 울면서 지내온 촘촘한 이유를 어린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기억이 안 난다.

날마다 어떤 마음으로 학교에 갔는지 이제와서 남은 것들은 진짜 내 감정이 맞는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울고 나서 내가 어땠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음을 알았다. 붉은 기를 내던 행성이 사라진 뒤의 흔적처럼, 그저 남겨진 작은 점들. 채도 따라 고통스럽고 서글픈 여운만 남기고 죽어가는 흔적들.


눈물 흘릴 때마다 콕콕 박힌 점들. 그 눈물점들은 내가 지나온 감정의 궤적이자, 나의 별들이구나.


새겨진 별들은 살고 싶어 하는 전투의 흔적이더라도 지금은 유적이 남아있다. 별들은 내가 걸어온 길을 비추며, 일어나고 손발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한 이렇게 흐려지고 마는 변화를 보증해 주니 별자리이다.


가늠만 해본다.

처음에는 한 군데만 집중하여 뜯었구나. 아 팔에 피가 묻으면 안 되니까 뒷덜미를 뜯어서 숨겼구나. 얼굴을 긁은 건 다른 이유로 우는냥 포장하고 싶었었나 보다. 엉망으로 울다가 여기에 피부염이 났구나. 이게 이렇게 점이 된 거구나. 조합에 따라 북극성도 되고 이건 큰 곰자리 저건 사자자리가 될 수 있는 가변성도 함께 보여준다.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순간들, 흘러넘치는 눈물을 막기 위해 했던 모든 시도나 원인들. 그로 인해 나는 그림을 그리고 마음을 공부한다. 또 이런 글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다음 발걸음이 나의 한 부분이 되어, 어느새 길을 안내하는 별처럼 나를 이끌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로부터 많은 의미를 찾으려 했다던데, 별을 보고 바다를 건너는 항해자들의 심정을 떠올린다. 넘실대는 눈물의 도가니여도 그래도 지나간다 라는 믿음 그리고 눈물을 흘린 뒤에는 나오는 육지를 쫓아가면 된다. 나의 눈물자리는 북극성을 따라서 어딘가에 다다르는 여정처럼 눈물은 사람과 살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젠 꼬집어 대지 않아도 눈물을 흘리게 내버려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미량 한 성숙이 이루어지고 있어 출력량도 좀 줄었다. 눈물길이 향하는 곳을 더듬을 수 있게 되었다. 살아가며 눈물이 흐를 때는 항상 한걸을 나아갈 힘이 생겼다. 새로운 답이 나왔다. 내 안의 길을 발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에만 보이는 길이었다. 울음 끝에서 얻은 작은 통찰들이 별로서 내 앞길을 비추어주었다. 내 감정의 지도가 되어, 나를 안내하는 별자리처럼.


그러니 지금 힘들고 슬프다면, 부디 울어주길 바란다. 그 눈물이 흐른 자리에는 당신만의 별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별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분명 그 길 끝에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눈물은 넘어진 마음의 진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길을 비추는 별이다.



그러니 그대여 눈물을


빛나는 길을 따라가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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