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간절한, 고마운, 고독한, 고요한, 고즈넉한, 기대되는, 기쁜, 깜짝 놀란, 끌리는, 낙관적인, 달콤한, 답답한, 도취한, 든든한, 따스한, 떨리는, 만족스러운, 매료된, 명랑한, 멍한, 무기력한, 무심한, 뭉클한, 묘한, 박탈감 느끼는, 반가운, 반항적인, 방황하는, 벅찬, 버거운, 부끄러운, 분노하는, 불만족스러운, 불안한, 불편한, 비참한, 비통한, 사랑스러운, 서운한, 섭섭한, 설레는, 소름 돋는, 속상한, 수치스러운, 순수한, 슬픈, 시원섭섭한, 심란한, 신나는, 아득한, 아련한, 아쉬운, 안도하는, 애석한, 애틋한, 어색한, 어이없는, 염려되는, 외로운, 울적한, 위안되는, 위축된, 유감스러운, 유쾌한, 이질적인, 자괴감 드는, 자랑스러운, 잔잔한, 재밌는, 적막한, 절망적인, 절실한, 조바심 나는, 좌절한, 죄책감 드는, 즐거운, 진정한, 짜증 나는, 차분한, 초조한, 편안한, 포근한, 푸근한, 흐뭇한, 홀가분한, 후련한, 흥분된, 희열에 찬 감정들이 있다.
매 순간 수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새하얀 마음이 퍼렇다가 빨개진다. 영롱하게 끊임없이 변화한다. 낯섦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따스함에 가슴이 저릿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뾰족하게 솟아있다가 비수가 꽂히는 환상통에 방황하기도 한다. 운다는 것은 이러한 감정들과 동반되는 반응 중 하나다.
눈물을 빛의 스펙트럼에 비유해 본다. 빛은 하나의 흰색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큼직하게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의 일곱 가지 색이 숨겨져 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그 모든 색을 드러내듯, 눈물도 우리의 감정을 비추는 프리즘과 같다. 흔히 눈물을 슬픔이나 고통의 증거로만 생각하지만, 눈물에는 그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들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서, 혹은 스포츠 선수의 투혼과 환경운동가의 연설에서 우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서사를 읽고 감동하며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심경을 헤아리려 애쓴다. 상징 속에서 힘든 여정과 극복, 기쁨과 안도의 순간을 읽어내곤 한다.
문학작품 속에서도 인물의 심정을 분석하고 채점 매기던 게 우리다. 인간의 눈물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막상 개인의 눈물을 마주할 때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이는 '운다 = 울적하다' 라고 전제를 깔아버린다. 그것을 슬프고 연약한 현상으로만 볼 수 있을까.
그것은 빛을 한 가지 색으로만 보려는 것과 같다.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 않으려는 것일까. 슬픔 만해도 고독하고 공허하며, 낙담하거나 미안한, 비참하고 비통한, 상심과 서글픔, 씁쓸함과 아련함, 안타까움과 애잔함, 애통하고 외로운, 우울하고 울적한, 참담하고 침울한, 허탈하고 헛헛한 슬픔이 있을 텐데 말이다. 섬세하게 바라보기를 중지하고 감정을 박해한다.
울어보니까 알았다.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눈물 중 같은 감정은 없다. 자식들을 보러 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몰고 먼 시골을 찾아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출근을 버티기 위해 몇 병의 술을 마시며 '죽기 싫으면 도망치자'고 결심할 때 흘린 눈물도 있었다. 조용한 생일을 기억하고 찾아온 동기들 덕에 행복에 겨워 흘린 눈물, 반려견에게 '너의 마지막 길을 혼자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흘린 눈물, 핸드폰을 빼앗기고 괴롭힘을 당해 흘린 눈물과 그 상황을 방관한 스승을 향한 눈물도 다르다. 포트폴리오를 무시당하며 상처받은 자존심의 눈물, 남들 사는 것을 쫓아가도 날씬하고 순순한 모습을 요구받으며 느낀 혼란 속의 눈물, 소문을 믿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느낀 두려움의 눈물, 작업 노트를 준비하며 느낀 불안 속에서 흘린 눈물, 전화를 걸 사람이 없어 막막함 속에 흘린 눈물도 있었다. 한때 사랑한 애인이 내 치부를 이야기하고 다닐 때 느낀 충격의 눈물, 우정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속에서 흘린 눈물, 현실과 맞지 않는 금액을 요구받을 때 느낀 좌절의 눈물, 외면하던 아빠의 수술 자국을 보며 느낀 서글픔의 눈물, 낯선 이가 건넨 "노력한 게 보인다"는 말에 긴장이 풀리며 흘린 눈물, 이제는 사랑했던 동네가 아프지 않아서 흘린 기쁨의 눈물, 헤어졌지만 수건을 냄새 나지 않게 너는 법을 가르쳐준 것이 고마워서 흘린 눈물, 동생들에게 고기를 구워주며 선배들의 내리사랑이 떠올라 고마와 흘린 눈물도 같은 눈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풀어보면 모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우리 빛의 속도로 멀어질 때
프리즘을 통과한 수많은 감정이 있었는데 알아보질 못했다.
황홀하다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지 않는 시간, 사랑 놀이치료, 웃음이 나오고, 사랑만 가득했던 순간. 설렘으로 부푼 마음, 추락을 모르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 5시 감격적인 재회, 부족한 살림 속에 포근한 이야기, 상쾌한 죽음, 모든 순간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을 텐데.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