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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pr 25. 2021

우리 동네 김밥 집 이야기

김밥의 마케팅

나의 오래된 기억 속 김밥은 소풍, 관광버스 그리고 칠성 사이다와 연관된다. 형제 중에 하나가 소풍 가는 날 모든 식구의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은 김밥으로 통일되었다. 대절 버스를 타고 간 동구릉에서 시금치와 단무지만 넣은 김밥을 사이다로 넘기면서도 우리들은 행복했다.


브런치에서 음식 얘기는 주요 장르에 속하는데 김밥 얘기도 자주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브런치도 음식이다. 최근에 브런치에 올린 이지현 작가와 자유로운 콩새 작가의 글( 끄트머리에 링크 달아놓음 )을 읽다 우리 동네 김밥집이 생각났다.




종종 친구 몇 명이 모여 근방에 있는 산에 간다. 산 위에서 먹을 점심으로 동네 김밥집에 들러 몇 줄 사가곤 했다. 다른 먹을 것도 있어 네 명이 갈 때 김밥 세 줄이면 충분하다. 산에서 각자 들고 먹기 편하게 세 줄을 아예 4 등분해서 싸 달라고 부탁했다. 세 줄을 네 줄로 만들어 달라는 얘기다. 여기 김밥집은 종류가 많아서 주문받고 나서 싸기 시작한다. 그래도 성가신 요구다. 식당에 가서 냉면 일 인분을 두 그릇에 나눠달라고 하면 빈 그릇 하나 덜렁 갖다 주는 집이 있다. 삼인분을 네 그릇에 나눠달라고 하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안 간다.


김은 세로가 가로보다 조금 긴데 김밥 줄의 기준 길이가 된다. 줄은 김밥집에서 생산과 영업의 기본적인 단위다. 한 줄에 얼마씩으로 값을 치지 오백 그램이나 20 센티 달라고 하지 않는다. 김밥의 스펙에 내용물은 들어가도 반지름이 표기되는 적도 없다.


중심 질서인 '줄'을 건드리자 김밥집의 집행부에서 가벼운 동요가 감지되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는지 재확인하는 반문에 약간의 불편한 심기가 묻어왔다. 나는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재판관이 주문主文을 읽듯이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혹시 한 줄을 네 덩어리로 나누는 불상사가 벌어지면 낭패다. 미국 살 때 맥도널드의 음주단속식 (= 드라이브 쓰루) 창구에서 spicy wings 일 인분을 주문했는데 사무실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5인분의 wings가 들어있었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아주머니가 세 줄을 네 몫으로 나누면 되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들어본 '몫'이라는 말이 애틋했다. 그 아주머니는 중국에서 온 동포임에 틀림없다. 이민 간 문화가 보수적이다. 내가 과장된 몸 짓으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면서 사태는 진정되었다. 변화는 저항을 동반한다, 처음에는. 개인이나 조직의 가치체계에 도전할 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 후 우리의 거래 방식은 안정을 찾아갔다. 한 번은 아주머니 대신 주인 남자가 김밥을 말고 있었다. 계란, 우엉 같은 원재료를 가공하는 선행 공정을 담당했던 주인이 그 날은 조립 공정 라인에 서있었다. 요령은 전과 동, 세줄을 네 줄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에 남자는 일순 동작을 멈추었다. 나도 철렁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되돌아볼 때 나는 사태를 즉시 파악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고 동시대를 살고 있다. 미세한 동공의 경련만 봐도 그 느낌 안다. 세 줄을 썰면 30 피스가 나오는데 4 등분하면 한 몫에 7과 1/2 개가 돼 정수로 안 떨어진다는 기술적인 난제를 호소하고 있었다. 3대 작도 불능 문제를 고민하는 수학자 같았다. (라면 끓일 때 비어커로 물을 측정하면서 눈금에 눈높이를 맞춰 기마자세를 취하는) 나처럼 융통성 없는 주인이다. 선수끼리는 눈 빛만 봐도 안다.


모른 척하면 저 양반이 정말로 김밥 한 피스의 배를 갈라서 각 줄을 소수점까지 동수로 맞출 것 같은 공포심이 일었다. 대충 나눠도 된다고 힘주어 말하자 사장은 편파적인 청탁을 눈감아주는 청렴한 공무원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생산라인을 다시 가동했다.


그전에 아주머니가 어림으로 나누어 싸준 김밥 가지고 친구들끼리 개수가 다르다고 다툰 적 한번 없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을 보고 고지식하다고 한다. 나도 실속 없이 정밀함을 주장해서 (=쫀쫀해서) 직장 동료들을 피곤하게 할 때가 많았다.


3대 작도 불능 문제 : 1) 주어진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두 배인 정육면체, 2) 임의의 각을 삼등분한 각, 3) 주어진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 만으로 그리는 문제.





표준 사양에서 벗어난 소량의 제품을 생산 라인에 흘리면 제조 원가가 올라간다. 과거 우리나라의 산업이 오직 저가 제품으로 경쟁할 당시 소품종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와 관리비용을 낮추었다. 식당에 가면 네 명 다 설렁탕으로 통일해야지 환영받는 식이다.


이제는 제품을 각양각색으로 개발하는 다품종 전략으로, 소비자의 예측할 수 없는 요구에 대응한다. 올라간 원가는 가격에 반영하면 되고 가성비는 소비자가 판단한다. 김밥 업계는 제품의 사양을 고급화하고 다변화시키면서 평균 단가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메뉴가 마을버스 정거장처럼 울긋불긋 백가지도 넘는 김밥천국에서 한 줄 천 원 받았던 값싼 간편식은 삼사천 원 대의 건강 기호식품으로 도약했다.


단무지와 달걀, 시금치 일색의 전통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김밥 속은 치즈, 참치, 떡갈비 따위로 화려하게 진화했고 매일 확장하고 있다. 내용물이 정직하게 드러나는 상품이다. 김밥의 단면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시각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김밥에 엑센트가 있다면 김에 있을 것 같다. 그런 김의 역할이 이젠 내용물을 포장하는 기능에 머물며 얇은 두께만큼이나 무색해졌다. 밥도 마찬가지다. 터질 것 같은 고명과 김 사이에 갇혀서 답답하다. 이대로 가다간 김과 밥이 없는 김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단무지와 시금치, 어묵만 들어간 복고풍 '옛날 김밥' 이 나올 때도 되었다.






요새는 그 집에 가면 몇 줄로 만들어 주랴하고 먼저 물어본다. 단골집의 편안함을 즐기면서 점점 충성고객이 되어간다. 혹시 김밥집에서 일본의 단편 '우동 한 그릇'을 상상하고 동정할까 봐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한 대신 나무젓가락은 사양한다. 우리 모임은 일회용 젓가락을 안 쓴다. 환경과 우리 몸을 위해서, 그리고 사용 후 쓰레기봉투를 뚫고 삐져나오는 잔해가 처절하고 흉측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다른 모임에 간식으로 가져가려고 몇 줄을 그냥 반씩 나누어 달라고 했더니 주인 얼굴이 확 펴졌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는 콧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어려운 문제로 단련된 학생은 쉬운 문제 푸는 게 즐겁다. 한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쉽고도 많다.


우리 동네 김밥집은 편안하다. 동네가 그렇고 김밥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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