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로 말하면 우리말 오백 년도 못 간다
예전에는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했다. 말이 많은 걸 경박하게 여겨서 침묵은 금이라는 교훈까지 있다. 지금은 발언이 금이요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서양에서는 표현에 소극적이면 생각이 빈약하거나 자기를 감추려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만일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조용하다고 하면 미국의 부모는 우리와 반대로 애한테 문제나 있나 걱정한다. 요즘 같은 (서양 가치 체계 중심의)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자기 의견을 조리 있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기술은 필수가 되었다.
말을 잘하는다는 건 생각을 물 흐르듯이, 힘 안 들이고, 쉽게 전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하는 말이 대개 어법 맞고 어법에 맞는 말이 말하고 듣기에 자연스럽다.
어법은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언어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해 오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말의 보편화된 규범이다.
누가 만든 게 아니고 만들어진 관습, 관행, 전통이다. 특정한 언어도 어떻게 보면 지역이나 민족 간에 축적된 어법과 어휘다. 특정 집단이나 세대가 임기응변하며 변형시켜 누더기를 만들어 놓고, 다중이 여기에 여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동조하면 언어의 보편성에 결함이 생긴다. 사용자는 말하는 게 편안하지 않고 거북해지며, 장애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선택을 찾게 된다.
가장 적은 비용 또는 노력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으려는 '경제 원칙'은 말하기에도 적용된다. 자유경쟁 원칙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장 경제처럼 언어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여러 사용자의 선택이 모여 자연적으로 변천한다. 그 변화는 다수 언중言衆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순리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동시에 언어 공동체는 어문 정책을 통해 그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감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근래 우리말은 사용자가 방심하는 동안, (다수가 아닌) 일부 집단이 분탕질한 사이비 어법과 어휘에 끌려다니며 기형적으로 변화했다. 부자연스럽고 거추장스러운 말은 불편하고 전달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젊은 세대일수록 말에 두서가 없거나 유창하지 못하다. 문장 하나 바르게 구성하지 못하고 버벅대는 걸 본다. 능변이 덕성이 아닌 과거 문화에서 말하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가의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시급한 국민적 과제이지만 이를 인식하는 위정자는 없다. 있다면 이렇게 되도록 놔두었겠는가. 외국어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우리끼리 소통을 잘하기 위해 우리말부터 다듬어야 한다.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 외국어도 잘한다.
국립국어원의 설립 목적은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이라고 되어 있다. 발전과 향상은 고사하고 일단 우리말이 더 이상 퇴보하지 않고 유지되게끔만 해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99%의 국민이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자장면'이라고 우기느니 (이제는 포기한 걸로 암 ) '쏘주'가 더 굳어지기 전에 '소주'로 돌려놓는 게 현실적인 과제다. '홈스테이'를 '가정집 묵기'라고 애써 다듬어서 부뚜막에 올려도 '넣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현실 생활에서 쓰게 하는 게 임무의 완성이다.
KBS는 바른말 고운 말 프로그램에서 '통닭은'은 '통다근'이 아니고 '통달근'으로 읽어야 한다고 남 가르칠 생각 말고, 방송에서 '치킨'이란 외국어(=외래어가 아님)를 몰아내고 '통닭'을 다시 모셔와야 '국민의 방송'이다.
우리말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한자어 오용,
외국어 남용,
막무가내 경어 사용,
빈약한 동사 활용,
호칭의 인플레,
말의 왜곡과 꾸밈,
말의 과소비
따위를 꼽을 수 있다.
불편하면 말하기 싫어진다.
하기 싫은 말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