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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15. 2020

테레비 뉴스의 상투적 표현들

이 글은 언론의 언어 사용에 대한 저의 극히 주관적인 우려 (=걱정도 팔자)입니다. 비전문가이지만 우리말 사용자이자 언론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맥주를 오래 마시다 보면 테레비 맥주 광고에 나오는 모델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는 정도는 알게 되지요.) 편협한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테레비 뉴스 관련 프로의 제목은 대충 ' 모닝, 투데이, 이브닝, 투나잇, 타임, 와이드, 토크 ' 따위를 적당히 섞어서 조립하면 된다. 다음 순서는 언제나 'NEXT' 다. 뉴스에서 걸핏하면 '이른바'를 앞세워 불필요한 외국어 용어를 경쟁적으로 써대는 이유는 단조로운 문장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인가? 단조로움은 외국어가 아니고 부지런히 말을 찾거나 창조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개선할 수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이벤트]를 [원활]하게 진행했다'라는 뉴스에서 , 


1)[다양한] 외에 다른 형용사는 없을까?  '다양하다(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다는 뜻: 표준국어 대사전).'가 어감이 좋아서 그런지 언론에서 많이(=꺼떡 하면) 쓰고 있다. 그렇게 보편적인 의미도 아닌 것 같은데 '여러 가지' 표현을 좀 '다양하게' 발굴해서 쓰면 좋겠다. 


2) 번역한 글도 아니면서 자진해서 [스타일], [이벤트] 란 외국어를 쓰고 있다. 우리말로 얼마든지 표현 가능한 개념이다. 과거 조상들이 한문으로 신분을 과시한 것처럼 매체는 외국어로 선진함을 치장하는 건가?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유치한 장난을 따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3) '교통이 원활하다'처럼 [원활]은 그 뜻과는 반대로 발음이 전혀 원활하지 않은데도 참 자주도 쓴다. 대신 '길이 잘 뚫리고 있다'하면 좀 허접해하게 들려서 그럴까?


'1년 만에 해외 원정 평가전을 위해 지난 7일 오스트리아로 떠났던 축구대표팀은 손흥민과 황의조, 황희찬 등 [해외파] 선수들도 현지에서 합류해 모두 25명의 선수가 훈련 중이었고, '에서, 


[해외파]는 외국에서 수학했거나 활동한 학자들의 무리를 국내에서만 공부한 학자들과 구별하여 학계에서 쓰던 말이었다. 공부한 환경에 따라 학문적 관점이 다를 수 있어 '주의, 사상 또는 행동 따위의 차이에 따라 갈라진 사람의 집단'을 뜻하는 '파派'라는 말을 붙일 만하다. 서강학파 (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들), 시카고학파 따위처럼 특정 대학 소속의 학자들에게 파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언론에서는 해외에 나가 활동하는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을 '해외파'선수로 부르고 있다. 해외 프로팀에 진출해서 활동하므로 대개 기량이 우수하다는 것 이외에는 국내 선수들과 구별할 게 없는데도 마치 서로 간에 갈등이라도 있는 것처럼 '국내파' , '해외파' 하며 '파벌을 조성하고' 있다. 아마 대표팀을 구성할 때 합류하는 해외 팀 소속의 선수들을 줄여서 부를 말을 찾다가 장난 삼아 갖다 붙인 것으로 의심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무슨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말을 하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언론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어구 중, 듣기조차 지겨운 표현들은 끝이 없다. 방송에서 툭하면 '멘트'라고 하던데 그것도 국적 불명의 어휘다.


[사건이 일파만파 확대될 것]
언론의 입장에서는 무슨 건이든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는 엉큼한 희망도 이해가 가고, 


[앞으로 지켜봐야 하겠다]
지켜보는 것 외에 언론에서 할 게 없는 애로사항도 알고 ,


[성탄절인 25일에는 휴일 일정만 소화했고]
빽빽한 공식 일정을 차질 없이 꾸역꾸역 해치우는 경우에만 써야 할 '소화했다'를 일정 다음에 올 서술어가 마땅치 않다고 궁색하게 붙인 심정을 짐작하지만,


관용구로 계속 사용할 게 있고 한두 번 쓰고 버릴 말들이 있다. 

아래에 있는 틀에 박힌 상투적인 표현들은 어디에 속할지 각자 판단해보자.


[-라는 비난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치열한 법리 다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관측이 지배적이다]
[초유의 사태] 
[뼈를 깎는]
[금빛 질주]
[극단적 선택] 


이루 셀 수 없다. 그러면 대안이 있냐고? 나도 모른다. 참신한 어휘를 찾고 만드는 것에 언론이 동참하고 그 결과물을 언론이 적용하면 일이 된다. 언론인은 언어를 직업적으로 사용하는 한편 발전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측면에서 문인과 같다. 일제 때의 이광수, 채만식, 심훈 현진건 등 유명 문인들은 신문 기자를 겸하였다.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인 시청자도 좋아할 것이다.


조물주가 애초에 언어를 설계할 때 언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여정에 갑자기 나타난 산업화된 언론에 의해 우리말은 무방비로 부상을 당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변화해야 할 언어가 그 발전을 도와줘야 할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제된 말을 써야 할 방송 뉴스에서조차 엉터리 말이 범람해서 생각 없는 시청자들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재방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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