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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Sep 01. 2023

행복한 아이라면 누구도 집에서 달아나지 않는다.

강아지와 자전거로 미국 횡단 Day36~38


Day36 유콘 – 클린턴, 84km

 유콘에서 출발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차를 세우더니 브리스토 근처에서도 나를 봤는데 여기서 또 본다며 내 사진을 찍어 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스티브가 추천해 준 양파 버거 가게로 향했다. 오픈형 주방 앞에 바테이블이 길게 놓여 있었고, 나머지 공간에는 테이블 한 두 개가 놓여선 안 되는 곳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줄 만큼 실내는 비좁았다. 양파 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콜라를 주문한 뒤 포키 때문이기도 하고 실내에 사람이 꽉 차기도 해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햄버거 사진을 찍고 사진을 확인하는 찰나, 햄버거 반쪽이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어쩌겠나? 바로 주워 다른 한쪽과 합쳐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10달러나 하는 식사를 버릴 수 없었다. 버거는 명성에 비해 평범한 맛이었다. 양파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고 프렌치프라이도 바삭하지 않았다. 다만 양은 엄청 많았다. 내 입맛에는 맥도날드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먹고 있는 동안에도 바람이 몹시 불어대 먹기 힘들 정도였다. 바람 때문에 정말 지친다. 햄버거든 뭐든 손으로 잡고 있지 않으면 전부 날아가 버릴 기세다.


 

 클린턴 호스트 마이크가 오늘 클린턴에 와도 좋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미 30킬로를 왔지만 클린턴까지 가려면 100킬로는 족히 더 가야 했다. 하루에 100킬로 넘게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어서 일단 최대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오늘은 라이딩이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오르막이 많았지만 타고 갈만했기 때문에 가끔 지칠 때 한 번씩 내려서 끌고 가면 됐다. 확실히 오르막보다는 강풍이 더 힘들다. 주유소가 나와 화장실에 들렀다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무래도 클린턴까지 오늘 안에 가기는 무리일 것 같다. 마이크에게 오늘은 하이드로까지만 가서 자겠다고 했더니 하이드로에 숙소 없을 거라며 그곳까지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여기서 하이드로까지는 33킬로. 지금은 4시 반. 하이드로에 7시에 도착할 거 같다고 말한 뒤 서둘러 길을 나섰다.

 가고 있는데 무언가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를 찍길래 그러라고 한 뒤 바삐 내 갈 길을 갔다. 7시까지 하이드로에 도착해야 하므로. 그런데 잠시 뒤 이 촬영팀을 또 만났다. 멈춰서 잠시 이야기하는데 내게 사진이랑 영상 촬영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다큐멘터리 촬영 중인데 티비에도 방영될 거라 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태양광 패널을 자전거 뒤에 달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에 의해 모터가 돌아가는, 직접 개조한 자전거를 타고 루트 66을 달리는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들은 친구가 이것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고자 동료들을 모아 함께 여정에 나선 것이다. 주인공 마이클은 자전거를 타고 촬영팀은 차를 타고 앞장서 가다가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멈춰서 기다렸다가 영상을 찍는 식이었다. 그들이 내게 명함을 주면서 그다지 멀리 있지 않을 것 같으니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다시 헤어진 뒤 가고 있는데 촬영팀 차량이 옆에서 따라오면서 나와 포키를 찍었다. 하이드로에 7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어느덧 해 질 무렵. 일몰은 언제나 감사한 풍경이다. 오늘 잘 곳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지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에도 느긋한 마음으로 초승달이 떠 있는 보랏빛 하늘을 감상하며 달렸다. 예쁘다. 검은 소들이 푸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빛 들판에 서 있는 풍경이 예뻐서 또다시 사진을 찍으려고 멈췄다가, 앞에 차 한 대가 오고 있어 혹시 마이크일 수도 있으니 재빨리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마이크였다. 하이드로에 도착했는데도 내가 없어서 여기까지 찾으러 온 것이었다. 차에 타려는데 포키가 가방에 실수를 해서 재빨리 처리한 다음 차를 타고 마이크 집으로 향했다. 차창 밖을 지나는 하늘이 참 예뻤다. 마이크네 집은 정말 문자 그대로 ‘탁 트인’ 들판 위에 지어져 있었다. 마이크 가족이 사는 건물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별채가 있었고 별채를 혼자 사용했다. 침대, 샤워실, 주방, 거실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곳이었다. 저녁으로 마이크 집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먹고 돌아와서 씻은 다음 냉장고에 있는 하드 애플 사이다를 마셨다. 84킬로를 달린 뒤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역시 너무 힘들어서, 곧장 잠 속으로 빠졌다.


Day37 클린턴, 휴식


다음날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으로 식빵에 땅콩잼을 바른 다음 치즈와 바나나를 올려 핫초코와 함께 먹었다. 그런 다음 10킬로 거리의 마트로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갔다. 가장 가까운 마트가 10킬로는 가야 나왔던 것이다. 간 김에 휴대전화 데이터 충전도 했다. 오늘도 역시 바람이 매서웠다. 휘청거리며 마트에 가서 신나게 장을 보고 다시 휘청거리며 바람을 뚫고 10킬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마이크네 집
내가 머문 별채

이렇게 평온한 곳에서 쉴 수 있다니! 진정한 휴식이었다. 마이크네 가족도 모두 일터에 가거나 학교에 간 후라 이 넓은 대지에 나와 포키뿐이었다. 저녁엔 토마토 리소토를 만들었다. 버터에 쌀이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가 토마토 통조림과 물을 넣고 끓였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슬라이스 치즈 한 장을 올려, 언제나 옳은 얼음 넣은 콜라와 함께 먹었다.


Day38 클린턴 – 세이어, 78km


서부로 갈수록 점점 황량해지고 있다. 나무도 거의 없고 탁 트인 풍경. 내가 기다리던 풍경이다. 서부의 아무도 없는 황무지 한가운데 혼자 있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너무 궁금하고 꼭 느껴보고 싶었다. 왜 나는 이런 고독한 풍경에 끌리는 거지? 한때는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쳐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어쩌면 그러한 풍경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와 비슷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귀요미 포키가 있다. 나는 늘 그림 그리는 사람을 동경하고 꿈꾸곤 했는데 특히 고독한 자연 풍경을 멋지게 그려보고 싶었다. 화목하고 따뜻한 사람과 풍경을 주로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바로 그것이 그 사람을 알려주는 단서는 아닐까?


 

 유독 힘이 안 나는 날이었다. 속도를 내기 힘든, 길게 이어진 완만한 경사가 계속되어서일 것이다. 보통 아침에 출발해 2~30킬로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곤 하는데 오늘은 40킬로미터를 넘게 가야 식당이 나오는 날이었다. 앞으로 서부로 갈수록 이런 일이 점점 더 심해질 텐데 걱정이다.

 겨우겨우 45킬로미터 만에 엘크시티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혹시 모텔이 얼마일까 해서 들어갔다가 어제 그 촬영팀을 만났다. 그들은 오늘 하루 여기서 쉰다고 했다. 카운터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다시 출발했는데, 결국 더 갈 힘이 없어서 피자헛에 가서 피자와 콜라를 사 먹었다. 다음 도시까지 27킬로미터만 더 가면 된다. 힘내서 가보자.


그런데 가는 길에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여섯 번이나 발견했다. 모아보니 총 53센트였다. 동전 찾으면서 가면 심심하지 않고 힘내서 갈 수 있겠다 싶어 열심히 바닥을 눈으로 훑었다. 오늘따라 동전이 눈에 많이 띄고 주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속도가 그만큼 나지 않아서일 것이다. 동전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멈출 수 있을 만큼 느린 속도. 그렇게 땅만 보고 달리다가 문득 든 생각. 뭐 하고 있는 거지? 달을 좇으러 이곳에 와놓고는 6펜스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당장 동전 찾기를 그만두었다.

 열심히 달려 겨우 완전히 깜깜해지기 전에 세이어 소방서에 도착했다. 옆에 경찰서도 같이 있어서 경찰에게 텐트 칠만한 장소를 물으니 시티파크를 알려주었다. 이제는 해가 져 어두운 거리를 뚫고 시티파크로 향했다. 대로변에선 그나마 가로등과 지나가는 차들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캠핑 표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가로등도 없고 차도 없었다. 어두운 길 한가운데 잠시 멈춰 섰다. ‘이 길로 가면 캠핑장이 정말 나오는 거 맞겠지?’ 혹시나 싶어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고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가 나왔다. 하는 수 없이 전조등을 켜고 계속 가 보았다. 다행히도 화살표와 함께 Camping area라고 적힌 반가운 표지판이 보였다. ‘온통 어둡기만 한데 대체 어딜까? 아 저긴가 보다!’ 심지어 누군가 있는 게 아닌가! 텐트 하나가 쳐져 있고 피크닉 테이블에 누군가가 등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오토바이로 대륙을 횡단 중인 중년 남자였다. 아저씨 근처에 텐트를 치는 동안 그가 오토바이 라이트로 내 쪽을 밝게 비춰주었다. 아저씨가 끓여준 커피를 마시며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엘에이까지 총 닷새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횡단 중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출발해서 수요일인 오늘 오클라호마 주 서쪽에 도착한 것이다. 그의 아내는 지금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떠나려는 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50살이 다 되어 가는데 무슨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횡단을 하냐고 했단다. 그러나 자신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한다고. 그리고 그는 유기견, 그중에서도 제일 치료가 힘들고 아픈 아이들을 구조해서 치료하는 일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래브라도 레트리버 두 마리를 키우고 계신다.


아저씨가 있어 오늘밤 무섭지 않게 안심하고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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