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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Oct 18. 2023

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첫 펑크

Day39 세이어 – 에릭 25km


어제 시티공원 찾아오는 길에 뒷바퀴에서 쉬이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손을 가져다 대보니 바람이 새 나오고 있었다. 첫 펑크다. 아침에 일어나 펑크 때울 준비를 했다. 집에서 영상을 보며 한 번 정도 연습해 보긴 했지만 실전에서는 처음이었다. 집에서 해봤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차근차근 시작했다. 타이어를 빼내는 것도 처음보다 수월했다. 한창 혼자 애쓰고 있는데 캠핑카에 있던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물었다. 


"자전거 펑크 수리하는 거예요?"

"네, 혹시 자전거 잘 아시나요?" 펑크를 때우며 내가 냉큼 물었고,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뒷바퀴를 끼워 넣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타이어가 엉망이었다. 당장이라도 교체를 해야 할 정도인데 주변에 자전거 가게는 없었다.


"내가 엘크시티까지 태워줄 테니 거기 가서 자전거 가게에 갈래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엘크시티에서 세이어까지 어제 왔던 길을 자전거 타고 또 와야 하는 게 싫어서 일단 가던 길로 계속 가보겠다고 했다. 펑크 수리하느라 11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그런데 3킬로미터도 채 못 가 결국 펑-하고 타이어가 터져버렸다. 아까 울퉁불퉁 불안해 보이던 부분이 결국 터진 것이다. 예비 타이어는 가지고 있지 않고, 히치하이킹을 한다 해도 가까운 거리에 자전거 가게가 없어서 최소 120마일(192킬로미터)은 가야 했다.

 그때 문득 어제 촬영팀 마이클 부인이 명함을 주며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곧 이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촬영팀 일부가 왔고, 마이클과 나머지 사람들이 마저 다 올 때까지 타이어 분리를 하면서 기다렸다. 그들은 다큐멘터리에 에피소드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면서 내가 마이크의 도움을 받아 타이어를 교체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본드가 필요했는데 마이클도 어디다 놨는지 못 찾겠다고 해서 마이클 부인, 여자 스태프 한 명과 함께 엘크시티로 본드를 사러 갔다. 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았다. 월마트에 갔는데 내 자전거에 맞는 튜브가 없어서 펑크패치밖에 사지 못했다. 차를 타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또 꾸벅꾸벅 졸았다. 펑크만 우선 때우고 터진 타이어에는 임시로 고무를 덧댄 뒤, 마침내 다시 출발하려 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그들이 내가 문제없이 잘 출발하는지 보고 나서 출발하겠다고 해서 내가 먼저 길을 나섰다. 안녕. 

 혹여나 타이어가 또 터질까 봐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며 자전거를 탔다. 뒤늦게 출발한 촬영팀이 잠시 후 내 옆을 따라오며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뒤, 정말로 그들과 헤어졌다.

 배가 몹시 고팠다. 일단 에릭이라는 도시까지 가서 식당을 가야겠다 생각하며 열심히 페달을 밟아 겨우 도착했는데 식당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배고픈데..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오는 길에 소방서가 있긴 했는데... 오늘 바람도 너무 세고... 모텔로 가볼까?’하고 고민하다 결국 모텔로 향했다. 자꾸 편한 것을 찾으려는 하는 것 같아서 자책했다. ‘아니야 그냥 털어버리고 지금의 행복만 생각하자. 오늘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잖아. 모텔에서 자기 참 잘했지. 잘했어. 포키도 침대에서 편하게 자고 나도 짐 늘어놓고 정리도 하고, 바람이나 벌레, 어둠 신경 쓸 필요 없이 편하게 요리도 하고, 냉장고가 있으니 콜라가 미지근해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내일 조식도 나오고, 춥지도 않고, 바람 소리도 안 들리고 얼마나 좋아?’

 모텔은 66달러쯤 했다. 정말 돈이 좋긴 좋구나. 좋아. 저녁으로 마트에서 파는 일본라면에 토마토 통조림과 치즈를 넣어 먹었다. 



Day40 에릭 – 섐록 38km


바람이 너무 세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장갑이든 뭐든 손으로 잡고 있지 않으면 날아가버리니까 이거 잡느라 저거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저기까지만 가서 모텔에서 잘까? 바람이 너무 심하고 내일 아침은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던데...' 자꾸만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도 오늘은 2,000킬로미터를 찍은 날이다. ‘잘’하는 사람이 이루기도 하지만, 그냥 하는 사람도 이룰 수 있다. 기념으로 사진은 찍어야겠는데 쓰러진 자전거를 세울 힘은 없어 엎어진 자전거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결국 오늘도 또 모텔에 왔다. 일단 가격이라도 물어볼까 하고 들어왔는데 흘러나오고 있는 인도음악을 듣는 순간 여기서 자기로 결정했다. 인도 가족이 운영하는 모텔이었는데, 반가워서 가물가물한 힌디어를 기억에서 쥐어 짜내어 '나는 인도를 좋아해요'라고 말해보았지만 주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주인 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잠시나마 인도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 인도에 있었지. 가격을 듣고 내가 잠시 주저하자 인도에서처럼 바로 디스카운트를 해주었다. 강아지 요금 5달러와 세금을 포함해 40달러로 합의를 보고 방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방에서 조금 쉬다가 저녁을 사러 서브웨이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보통 15cm가 6달러 정도인데, 30cm가 4.99달러라고? 세금 포함 5.39달러에 샌드위치를 사며 행복한 기분에 젖었다. 모텔방 안에서 샌드위치와 함께 어제 사둔 아이스티(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종일 가방 속에 있었어도 냉장고에 있던 것처럼 시원할 것이 틀림없는), 그리고 감자칩을 먹을 생각을 하니 행복감이 몰려왔다. 아까 서브웨이에서 소스 고를 때 '마요네즈'라고 하는 내 발음을 점원이 못 알아듣고 무시하듯 재차 '뭐라고?' 묻다가 '아~ 매요니즈?'라고 해서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행복 뭐 별 거 없잖아?



Day41 섐록 – 그룸 47km


 오늘 그룸이라는 곳에 웜샤워를 구해서 90킬로미터 넘게 가야 한다. 게다가 날씨까지 너무 추웠다. 아침부터 계속 '할 수 있을까?', '히치하이킹은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가보는 거지 뭐, 해보자고!

 35킬로미터 정도를 달리고야 처음으로 마을이 나타났다. 텍사스에 온 만큼, 스테이크를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주유소 편의점으로 갔다. 비록 편의점일지라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하다. 미국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에는 화장실이 꼭 있어서 볼 일도 해결할 수 있다. 핫도그 두 개에 2달러, 거기에 음료랑 사이드디시 추가가 1.5달러밖에 안 했는데 사이드디시로 나온 웨지감자는 패스트푸드점 감자튀김보다도 더 나은 듯했다. 포키가 밖에서 계속 짖어서 포키를 안고 편의점 앞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다가, 포키한테 케첩을 흘렸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햇살이 내리쬐고 있어서 괜찮았다. 핫도그 두 개째를 거의 다 먹고 웨지감자를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전거 타고 어디로 가는 중이에요?"


"서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요? 오늘은 어디까지 가요?" 남자가 물었다.

"그룸이요."

"아 그럼 내일은 에머릴로까지 가나요? 저는 에머릴로 자전거샵에서 일해요."

"진짜요??? 저 자전거샵 가야 하거든요!!!" 내가 흥분해서 말하며 내 타이어를 보여주었다. 


어제 임시방편으로 터진 타이어에 고무를 덧대어 볼록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고무 대신 지폐를 덧대면 낫다고 말해준 뒤, 그룸에 자기 친구가 사는데 내 자전거랑 똑같은 거 가지고 있다면서 여분의 타이어가 있는지 물어봐주겠다고 했다. 잠시 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물었다.


"오늘 어디서 자요? 혹시 핫샤워? 그 웹사이트요."


"네 웜샤워 말하는 거예요?"

"네 오늘 당신이 머물 집 호스트가 바로 내 친구예요. 여분의 타이어도 있대요."

"헐 진짜요?? 세상에!"


그들은 내게 자전거를 타고 먼저 가고 있으면 볼 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를 픽업하여 그룸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10킬로미터 남짓 갔을 때 그들이 다시 나타났고, 차를 타고 금세 그룸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호스트 저스틴은 아직 집에 오지 않았고 아내 셰리만 있었다. 셰리는 내게 강아지 목욕 필요하냐고 먼저 물어보며 강아지 샴푸와 수건을 준비해 주었다. 목욕하고 나와 조금 있으니 저스틴이 도착했다. 그는 타이어 교체뿐 아니라 체인 청소, 오일링, 볼트 점검, 핸들바 조절 등 자전거를 전체적으로 손봐주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90킬로미터를 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지쳐 있었는데, 어떻게든 앞으로 가지는구나. 오늘 또 사람들 덕분에 힘이 나는 하루다. 서부로 갈수록 웜샤워도 없고 점점 날은 추워져서 앞으로의 날들이 걱정되지만 오늘만큼은 행복하다. 따뜻한 집에서 포키가 편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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