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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기 Aug 07. 2022

일리노이강을 건너 미주리주로

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Day16~19


Day16

페레 마르케테 주립공원 - 체스터필드

59km



아침에 일어나 보니 체스터필드 웜샤워 호스트에게서 오늘 와도 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날이 흐리고 가끔씩 빗방울도 떨어졌던 오늘은 일리노이주가 끝나고 미주리주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미주리주로 가기 위해서는 페리를 타고 일리노이 강을 건너야 한다.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 미주리주에서의 첫 라이딩을 시작하였는데…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는 한갓진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갓길에 서 있던 차 안에서 벌거벗은 남자가 나왔을 때, 나는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무리 자신의 필요에 의해 그런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속도를 높여 쫓기듯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았을 때,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푯말이 있는 가게를 발견하고는 '이런 데는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하며 바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내가 왜 페달을 빨리 밟고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은 채.


복숭아 맛, 시나몬 맛, 초콜릿 맛, 호박맛 아이스크림 중에 무얼 먹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호박맛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호박 버터 스프레드가 들려 있었다. 그 밖에도 가게에는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과일잼 같은 것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언덕이 참 많았던 날이었다.

길이 한적해서 서서 타는 연습을 했다.

날씨까지 우중충해서 더욱 쓸쓸해 보이는 이름 모를 길들을

모든 순간 포키가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

너무 대견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구글맵이 알려준 길만 믿고 가다 보면 자전거로 지나기 힘든 길이 종종 나온다. 오늘 역시 좁은 숲길로 안내해 주어서 겨우겨우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려고 포키를 내려주었다. 그래도 가다 보면 곧 좋은 길이 나오겠지 하고 끝까지 가봤더니만 긴 계단이 나왔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포키는 신나서 계단을 껑충껑충 뛰어 올라갔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그대로 나와 큰길로 돌아서 갔는데 이번엔 엄청난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언덕길을 지나온 끝에 도착한 오늘 머물 호스트의 집이 너무 좋았다. 갈색 벽돌의 커다란 2층 집의 지하에는 게스트를 위한 방과 샤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씻고 1층으로 올라가 보니 호스트인 탈룰라가 딸, 아들과 함께 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피자를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고 했는데, 반죽이 판에서 떨어지지 않자 셋이 힘을 합쳐 이리저리 해보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였다.





Day17

체스터필드

휴식



이날은 탈룰라가 그림에 관심이 있는 나를 위해 차로 2~30분 정도 거리의 도시인 세인트 찰스에 있는 아트 뮤지엄을 구경시켜주었다. 구경을 다 한 다음에는 미국식 중식 프랜차이즈인 판다 익스프레스에 가서 밥을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감사의 표시로 그녀의 강아지 그림을 그려 선물로 주었다.







Day18

체스터필드 - 마사스 빌

55km



다음날 아침 일어나 1층으로 가보니 탈룰라가 내 물병에 물을 담고 있었다. 아침으로 오렌지주스와 시나몬롤 두 개를 먹었다. 탈룰라는 끝까지 뭐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어 했다. 자전거 탈 때 끼는 장갑이 작아서 불편했는데, 마침 탈룰라에게는 커서 잘 맞지 않는 장갑이 있어서 서로 장갑을 교환하였다.



By Kbh3rd - Own work,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469109



미주리주에는 주 대부분을 관통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인 케이티 트레일(Katy trail)이 있어서 비교적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케이티 트레일은 240 miles(390km) 길이로, 절반 이상이 미주리강을 따라 길이 형성되어 있다. 미국에서 하이킹, 라이딩으로 인기 있는 코스로 케이티 트레일을 며칠간 즐기기 위해 먼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도 많다.




탈룰라 집에서 나와 케이티 트레일을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트레일헤드가 있는데 그곳에서 어린 여자아이와, 혼자 휴가 중인 여성 라이더를 만났다. 홀로 휴가 중인 여성 라이더의 이름은 엘렌. 그녀는 뉴욕에 사는 변호사인데 휴가로 이곳에 와 케이티 트레일을 자전거로 일주 중이었다. 그녀와 페이스북을 교환하였고 그녀는 내게 뉴욕에 오면 꼭 연락하라면서 자기 집에서 머물다 가라고 했다.



마사스 빌에 도착해 주민에게 물어보니 시티파크에 텐트를 쳐도 되고 안전할 거라고 해서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Day19

마사스 빌 - 허먼

(katy trail)

44km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에 개미떼가 있었다. 어제저녁에 후식으로 먹은 감자칩 때문인 듯하다. 대체 어디로 들어왔나 봤더니만 텐트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다. 하필이면 어제는 그라운드시트를 깔지 않았다. 다행히 불개미는 아니었고, 텐트 구멍에 테이프를 붙여 보수했다.






계속 비가 내려서 그런지 힘도 안 나고 해서 비도 피할 겸 가림막이 있는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잤다.


알고 보니 탈룰라 집에서 내가 머문 다음날 또 다른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가 왔었다고 한다. 20대 초반인 그는 자전거로 뉴욕에서 출발해 엘에이로 가는 중이었다. 나보다 훨씬 빨라서 하루 이틀 정도 차이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기에 탈룰라 집에서 나보다 늦게 출발한 그를 오늘 길에서 만났다. 공감할 사람이 생겨서 기뻤고 너무 반가워서 며칠간 케이티 트레일을 동행하기로 했다.


또 다시 비가 쏟아져서 트레일 헤드에서 쉬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노래를 좋아한다는 그가 가방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냈다. 같이 비를 피하고 있던 외국인 라이더들이 마이크를 보더니 노래를 요청했고, 비 오는 트레일 헤드는 순식간에 작은 콘서트장으로 변신했다. 모두가 즐거워했다.


오늘 연락해두었던 웜샤워 호스트인 '리'와 허먼 시내에서 마주쳤다. 그의 아내의 안내를 받아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쾌활한 성격의 리 부인은 냉장고에서 알아서 먹고 싶은 재료를 꺼내서 먹으라고 쿨하게 이야기했고, 우리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리네 집은 에어비앤비도 하고 웜샤워와 카우치서핑도 하고 트리하우스도 몇 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저녁을 먹은 뒤 산책 겸 트리하우스를 구경하러 나갔다. 너무 잘 어울리고 닮고 싶은 부부였다.




집에 돌아와 한국인 여행자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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