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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K Nov 04. 2024

아무튼, 친구

소중한 인연

  나는 프로 잠수러다. 인생에 있어서 두 번 갑자기 연락을 두절하고 잠수, 즉 잠적한 적이 있었다. 바로 임용고시 사수 시절과 번아웃으로 우울증이 왔을 때였다. 연애하느라 친구들을 내팽개친 적도 있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도 답답하리만큼 답을 안 하는 편이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피하고 싶은,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진상 친구다. ‘진짜 친구’는 한밤중이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자다가도 뛰쳐나간다는 데 나에겐 그런 친구가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런 친구가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삼천만의 호구’가 되지 않는 것을 유독 강조하셨다. 친구에게는 잘해주면서 동생이나 부모에게 못하는 것을 ‘쪼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을 때도 그 아이와 우리 집의 중간 지점을 정확히 계산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그 아이 집 가까운 곳에서 만난다면 난 바로 부모님께 ‘친구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 영향이었을까? 그 뒤로 항상 친구를 만날 때마다 누가 더 이익이고 손해인지 계산부터 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학교 선생님들은 평생 동안 ‘베스트 프랜드’가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 하시며 인생에 있어서 친구의 필요성을 피력하셨다. 여럿일 필요도 없고 단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그래서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나와 운동신경도 비슷하고 노는 취향도 비슷한 다영이와 베스트 프랜드가 되기로 했다. 6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어서도 종종 만나서 놀곤 했다. 누군가 서로에게 베스트 프랜드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꼭 상대방의 이름을 대기로 굳은 약속을 했다. 일종의 보험이었던 셈이다. 베스트 프랜드끼리 한다는 비밀일기장도 주고받았는데 중학교를 다르게 배정받고 서로 연락 없이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간 걸 보면 베스트 프랜드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나도 친구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끼리 스스럼없이 비속어도 섞어가며 대화하는 그런 친한 사이가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한 번도 친구에게 함부로 말해본 적이 없다. 물론 친구 관계에도 어느 정도 예의를 지켜가며 선을 지켜야겠지만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처럼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는,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을 목말라했다.


  나름 대학교 때는 학과 생활도 열심히 하고, 동아리, 학생회 활동까지 하면서 인맥을 넓혔다고 생각했으나 임용고시에 떨어지면서 대학교 졸업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수생의 길을 걷는 동안 거의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해 버렸다. 심지어 재수생 시절엔 핸드폰도 정지하고 중국으로 나가 1년 동안 기간제를 해서 친구들은 나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번에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연락 창구를 열어두자 진짜 내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던 사람들한테서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일종의 인간관계를 한번 거른 셈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군가 상처받았을지도 몰라 감히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지금 나는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거의 없다. 그나마 최근에 다시 만나서 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대학교 친구 몇 명과 동네 어린이집에서 아들 친구 엄마로 만나서 몇 년째 함께 등•하원시키면서 따로 만남을 이어왔던 친구가 전부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번아웃이 와서 핸드폰을 끄고 집에서 몇 개월간 잠수 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인간관계를 한번 정리해 둔 탓이었던지 직장동료들 몇몇이 연락이 온 것 빼곤 따로 부재중으로 떠 있는 친구들도 없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따르면, 그들은 소수의 사람과 특별히 깊은 유대관계는 추구하지만 남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고독한 혼자만의 생활을 즐긴다. 어쩌면 나는 친구를 위해 희생하고 시간을 소모하고 삶의 많은 균형을 잃어가기보다는 나 자신의 자아실현이나 자존감의 향상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을 선택하여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서로를 아끼고 성장시키고 빛나게 만들 수 있는 관계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남편이 있었다. 육아라는 전투 속에서 전우로 그간 고군분투해 왔다. 그리고 아직도 최전방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버티고 있다. 힘든 하루를 보낸 저녁에 맥주 한 캔을 기울이며 아이들 이야기로, 직장 일을 안주 삼아 이야기한다. 주말마다 여행도 다니고 종종 아이들이 학원이나 교회에 가서 시간이 생길 때 둘만의 데이트도 한다. 고민이 생기면 바로 상의할 수 있는 존재 역시 남편이다.  


  지난 세월 함께했던 추억 속의 친구들이 가끔 떠오른다. 아직도 주변에서 몇 년 지기 절친과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나에겐 남편이 있다. 또 굳이 옛날부터 지켜온 우정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만난 사람들과 차곡차곡 인연을 쌓아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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