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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K Nov 18. 2024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나의 20대 이야기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란 뜻이다.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인생 시계로 나이를 하루 중 몇 시 인지로 환산하는 대목이 나온다. 24시간을 평균수명 100년으로 나누어보면 14분이다. 10년에 2시간 24분씩 가는 것으로 계산하면 20세는 새벽 4시 48분이다. 누군가에겐 조금 이른 아침이지만, 또 누군가는 미라클 모닝으로 활기찬 하루를 준비하는 소중한 이 시간에 난 무엇을 했을까?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 너무 아깝다’라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난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대학교에서 캠퍼스를 샤방 샤방하게 누비는 상상을 하며 러닝머신을 독하게 달려 고3 겨울 방학 동안 10킬로그램 감량에 성공했다. ‘화장발’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화장품 정보와 화장하는 법에 대해 파고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얼굴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다소 낯설었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꾸준한 노력으로 화장술은 나날이 발전해 갔다.


  “너 1학년 때는 솔직히 아이라이너 되게 웃기게 그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잘 그린다. 어떻게 하는 거야?”


  친구들의 숱한 격려를 받으며 틈틈이 방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은 고스란히 화장품을 사는데 들어갔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우는 줄 모른다더니 뒤늦게 멋 부리기에 심취하여 아침에 화장하는 데만 기본 2시간씩은 걸렸다. 어쩌다가 중,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친구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을 어느 순간 즐기고 있었다. 화장이 아니라 변장 수준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학교에는 누빌 캠퍼스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 학교는 캠퍼스가 넓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도 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교정을 누비며 낭만도 쌓는다는데……. 공주교대는 그야말로 단지 조금 큰 고등학교에 불과했다. 강의실은 거의 다 본동에 몰려 있었고 어쩌다가 미술, 실과, 체육 등의 실기 과목 수업을 듣는 다른 건물의 강의실은 몇 발짝만 떼면 바로 도착하는 아기자기한 규모였다. 과학관 앞에 유일하게 있는 중앙 정원인 ‘민주 광장’은 광장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의 빈터에 아름드리나무 한그루가 전부였다. 또 캠퍼스가 작은 만큼 남학생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학교의 낭만을 만들어보자는 일념 하나로 동아리에 가입했다. 학업 때문에 중단해야 했던 무술을 계속 연마하고 싶었다. 유일하게 남자가 많았던 ‘일락 합기도’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같이 운동하고 술 마시고 또 운동하고 술 마시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정해진 루틴대로만 살아온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탈이었다.


  교대는 학과를 정해서 들어가는데 초등학교 과목처럼 국어과, 수학과, 사회과, 과학과, 음악과, 미술과, 체육과, 실과, 윤리과, 영어과로 나뉜다.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과목인 체육과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나보다 체육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영어과에서 체육을 잘하면 더 돋보이지 않겠느냔 얼토당토않은 생각으로 영어과에 지원했다. 영어과는 모래알 같았다. 각자 자기의 공부에만 치열할 뿐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영어과에서 체육으로 돋보이는 일은 결코 없었다.


  점점 학업은 등한시하고 동아리 활동, 술자리만 찾기 시작했다. 하루에 꼭 한 번씩은 술자리가 있었고 많으면 하루에 두세 건의 술 약속이 잡히기도 했다. 흥청망청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도 늘 옆 테이블에 내가 또 낄 수 있는 술자리가 없는가 찾아보곤 했다. 매일 밤 웃고 떠들며 마셔대도 늘 허전하고 외로웠다. 드디어 꿈꿔왔던 대학 생활을 누리고 있었지만 그 헛헛함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화장하고 잔뜩 꾸미고 다녀도 난 멋 부리는 아이였지 예쁜 아이가 될 수 없었다.


  하는 일 없이 시간만 흘러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영어과 부학생회장이 되었다. 술자리는 더욱 많아졌다. 동아리 활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새벽에 따로 태권도 도장을 등록해 운동을 다녔다. 밤에는 술을 마셨다. 학과 공부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러던 차에 학생회에서 홍보하는 국토대장정에 도전하게 되었다. 뭔가 인생의 전환점이 간절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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